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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양희 시인 / 새 달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4.
이양희 시인 / 새 달력

이양희 시인 / 새 달력

 

 

새 해가 도착했어요

열두 개의 밝은 달을 데리고

둥근 하늘과 함께 왔어요

세월의 길목에서 꼬박 육십 년을 기다려

나를 찾아왔어요, 특별한 손님을

나는 매일 아침 새 손님으로 맞이해야겠어요

날마다 새 마음을

새 마음에 닿으려 움 틔우겠어요

새 마음에 닮으려 첫발을 떼겠어요

한 걸음에 한 걸음만 더하겠어요

손끝 하나 발끝 하나도 소중히 놓겠어요

하루를 마디게 건너가면

보여요, 파도에 닳은 조약돌 말이 내 안에 굴러다녀요

아껴둔 말을 걸겠어요

첫말처럼 한 마음 한 마음에게 걸겠어요

새 날이 공염불로 지나가더라도 곱게 접어 보내겠어요

새 하루에서 새 하루로 넘어가겠어요

세상을 한 바퀴 돌아

선물처럼 갑자*에 닿았으니까요

새 해가 도착했어요

세상 한 바퀴 돌아온 마음에 첫마음을 올려

첫장을 넘겨요

 

​* 60갑자는 10간(干)과 12지(支)를 결합하여 만든 60개의 간지(干支), 그 첫해가 갑자(甲子)

-시집 <마음을 걸다> Bookin,

 

 


 

 

이양희 시인 / 수처작주隨處作主 1

 

 

와공들은 휴식 시간에도 가파른 지붕 위에서 내려 오지 않는다

지붕 위에서 새벽부터 굽혀온 허리를 편다

지붕 위에서 커피를 마시고 지붕 위에서 간식을 먹는다

지붕 위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붕 위에서 먼 하늘을 본다

지진이 훑고 간 지붕 위가 궁금해 나는

온종일 마당에서 지붕 위를 쳐다본다

땅의 일은 땅의 일이란 듯

파란 가을 하늘은 높고 깊고 무심하다

지붕 위의 일이 땅의 일인 듯

와공들은 지붕 위에서 손발이 척척 맞다

며칠째 지붕 위를 쳐다보느라 나는 뒷목이 뻣뻣하다

- 시집 <마음을 걸다> bookin.

 

 


 

이양희 시인

1958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철학과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과 졸업. 199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과향기가 만드는 길』 『잘 익은 생각의 집』 『비스듬히 서 있는 당신』 『마음을 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