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극래 시인 / 모래여자
모래여자가 목덜미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몹쓸 그리움이 밀려들 거예요
그녀의 이목구비가 흘러내리고 한순간 불어본 하모니카 노래라며 일기장을 불살랐는데 내 말투에는 여전히 모래 알갱이가 묻어있다
백사장 건너편에는 스쳐 간 연인을 조문하는 우체국이 있고 사서함에는 한때의 파도 소리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버스 뒷좌석 여자가 사탕처럼 빨아먹던 통화음 단골이라며 꽃물 들던 민박집 아주머니는 우체국이 폐국된 건 이십 년도 더 지났을 거라고 한다
옛터는 사라져도 집요하게 속을 긁어오는 몸살이 있어서 늙은 배롱나무는 땡볕에 제 몸을 널어 말리고
어쩌면 그녀는 내가 짜 놓은 무대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 싹이 튼 의심은 무럭무럭 자란다
저만치 여자가 파도에 허물어지며 실성한 듯 웃는다 공중에 울음을 휘젓던 남자 무릎이 망가지고 구름이 연주하던 악기를 부러뜨려도 비가 자라는 밤 창문은 열려 있다 아기 새가 되어 주둥이를 벌리고 어미 새를 기다리는 것처럼
비가 꿈에 물을 부어준다 모래여자가 내 볼을 만지고 있는 장면을 내가 훔쳐보고
파도 소리가 꿈의 뼈를 잘게 부순다 백사장에 서식하던 발자국 떼가 무수히 날아오른다
조극래 시인 / 구부러진 웃음
내 꽃무늬 파자마는 앙다문 울음에 천박한 웃음을 박음질한 것이다
안간힘을 써도 씻가시지 않는 일곱 살, 장롱문을 연 아버지는 오도카니 앉은 나를 술김에 볼기짝 때렸다는데
팔월의 오후를 다 태우고도 서러운 울음은 꿈 밖으로 뛰쳐나와 빗소리로 변주되고 그리하여
미운털이 한 뼘씩 웃자라던 감정은 아무나 씨에게 연분홍 인사를 건네는 고마리꽃으로 피어나고
그래도 가끔
거울 속 나를 눈돌림질 하며 아침 독백을 저녁 방백으로 줍는 날로 덩굴지지만
딱딱한 액자 속에서 뜬눈으로 썩지 않는 통증을 씻고 계실 아버지 꽃잎도 없이 핀 고마리꽃이나마 한 다발 건네나 줄 걸 그랬네 -시집 <오늘은 빈둥거림이 수북하고>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양소은 시인 / 안반데기 외 1편 (0) | 2026.02.25 |
|---|---|
| 이은심 시인 / 추억의 연장전 외 1편 (0) | 2026.02.25 |
| 이양희 시인 / 새 달력 외 1편 (0) | 2026.02.24 |
| 강운자 시인 / 진검승부 외 2편 (0) | 2026.02.24 |
| 박시하 시인 / 진료실에서 외 1편 (0) | 202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