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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옥 시인 / 걷다
산이 걷고 물이 걷고
새는 날갯짓으로 걷고 물고기는 꼬리로 걷고 꽃은 향기로 걷는다
걷다가 지친 구름은 때로 울기도 하고
나무는 푸르름을 안고 걷고 또 걷고
숲은 열매의 시간을 향해 말없이 걷는다
내가 걷고 네가 걷고 우리는 저마다의 보폭만큼 걷고 있는데 속도를 놓아버린 세월은 뛰고 있다
이진옥 시인 / 신발에서 벗어나는 일
울창하지만 텅 빈 밤 불빛에 이끌려 맨발로 나섰어요 어느새 난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맡기죠 내 말 좀 들어봐요 들어보라니까요 외면하는 섬과 섬 사이로 떨어진 말이 떠다니고 쏟아지는 빛의 비명이 몸을 찔러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그림자 무성해요
평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신발에 갇힌 발뒤꿈치의 비명이 굳어 화석이 되어가는 걸 외면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면 신파라고 화를 낼테죠 알아요 섬과 섬 사이를 떠돌며 할 말은 아니죠 어무렴 어떤가요 난 이미 두려움 없이 비 오는 거리를 맨발로 걸으며 불빛이 차갑게 발을 더듬어도 시린 내 발을 연민하지 않아요 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물끄러미 물끄러미 물끄러미가 어느새 새벽을 몰고 오네요 맨발의 새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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