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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41

송준영 시인 / 습득 외 3편 송준영 시인 / 습득 1호선 지하철 분실물센터에 있는 건 하얀 차를 두어 개와 나를 따라온 청태 사이로 비치는 오대산 맨가슴 그리고 가부좌 틀고 있는 청량선원이네 그곳엔 내가 주워온 금빛 옷을 걸친 늙은 부처 아니 법당 왼쪽에 단정히 앉아 있던 이마 말간 문수동자가 있네 아니 이날 툇마루에 졸고 있는 하늘 한 자락과 푸른 솔잎 입에 문 물총새 한 마리 그리고 솔바람이 있네 아니 지하철 분실물쎈터 알림판엔 깔깔 웃던 습득물이 붙어 있네 동굴속으로 고함지르며 사라진 습득이 붙어있네 습득이 보이네 송준영 시인 / 임제록 청명한 한 낮 쓸데없이 생사해탈이니 견성성불이니 요따위 것 가르치고 있나? 임제한테 와서 보화는 늘 이렇게 씨부렁거린다 임제에게 제자들이 보화가 도가 있는 중이냐 없는 소냐? 하는데, 보화가 .. 2022. 9. 1.
윤중목 시인 / 오만원 외 1편 윤중목 시인 / 오만원 오랜만에 서울 올라와 만난 친구가 이거 한번 읽어보라며 옆구리에 푹 찔러준 책. 헤어져 내려가는 고속버스 밤차 안에서 앞뒤로 뒤적뒤적 넘겨 보다 발견한,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구깃한 편지봉투 하나. 그 속에 빳빳한 만 원짜리 신권 다섯 장. 문디 자슥, 지도 어렵다 안 했나! 차창 밖 어둠을 말아대며 버스는 성을 내듯 사납게 내달리고, 얼비치는 뿌우연 독서등 아래 책장 글씨들 그렁그렁 눈망울에 맺히고. 윤중목 시인 / 사람 사람들,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하루의 수고가 가파를수록 눈길 부디 나직한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문득 해 떨어져 골목골목 담벼락 외등 켜질 때면 그네들 얼굴도 하나둘씩 켜진다 밥 냄새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그네들 말소리 귀를 두드린다 사람들 그리움이 갈근갈근 마른 .. 2022. 9. 1.
이인자 시인 / 인연 외 1편 이인자 시인 / 인연 사랑하는 사람아! 살랑이는 바람타고 배시시 얼굴 붉히며 간질어하는 어린웃음으로 내 품에 들어오는가? 태고의 인연이 아닌, 천상의 연으로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를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정열적 뜨거운 사랑으로 내 품에 들어오는가 거침없는 소낙비처럼 굳을 돌처럼 천상의연으로 사랑하는 사람아! 지난시간 아쉬워 그리며 홀로 선 나무처럼 아픔도 화려함도 뒤로 한 채 내 품에 들어오는가 바람 타고 흙으로 돌아갈 마음으로 천상의 연으로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는 겨울아이처럼 눈송이 날리며 내품에 들어오는가 흐트러짐에 불같은 정열도 다 사위어 버린 채 지친 둘이 아닌 하나가 되고픈 천상의 연으로 이인자 시인 / 봄날의 일기예보 내일의 일기예보에서 봄비가 내린다 매일 일기예보를 듣는다는 것은 늙어가고 .. 2022. 9. 1.
[영화의 향기 with CaFF] (176) 메이의 새빨간 비밀 [영화의 향기 with CaFF] (176) 메이의 새빨간 비밀 사춘기 소녀의 유쾌한 성장통 가톨릭평화신문 2022.08.28 발행 [1676호] ‘자기 자녀의 진짜 모습을 가장 모르는 사람은 정작 부모 자신일 수 있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은 특히 한창 사춘기를 지나는 자녀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감춰진 곳의 점 위치까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부모로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13세 소녀 메이와 가족의 ‘성장통’을 다룬 디즈니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소개한다. 메이의 부모님은 중국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이민 1세대이다. 이들은 대대로 자신들의 가문과 멸종위기 동물 레서판다를 수호해온 ‘선 이’라는 신령을 모시는 사원을 운영한다. 메이는 모든 과.. 2022. 9. 1.
김진희 시인(여주) / 미연靡然 외 3편 김진희 시인(여주) / 미연靡然 철로변 꽃제비 한 무리 납작 엎드려 있다 흙먼지 뒤집어쓰고 바닥에 떨어진 것들 주워 먹으며 한뎃잠을 잔다 기차가 지날 때마다 으스러지지 않으려 엎드리곤 하는 일들이 습관처럼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내게 허용된 세상은 바닥에 엎드려 흔들리는 일뿐 철로변 아슬아슬한 삶의 무리가 이리저리 바람에 쏠리고 있다 -시집 『상처에 대응하는 방식』 중에서 김진희 시인(여주) / 월식 헛손질을 하다 짓찧은 손톱 검은 피가 손톱의 반달을 가리웠다 지금이라는 한때가 느닷없이 자지러지고 있다 나 혼자 앓는 동안 너는 안부도 없고 헛손질 한방에 세상이 고꾸라질 듯해도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 그때까지 잠시 안녕 김진희 시인(여주) / 고슴도치 상처는 제일 아픈 곳으로 파고든다지 눈에 보이지.. 2022.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