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근대)937 박인환 시인 / 일곱 개의 층계 외 2편 박인환 시인 / 일곱 개의 층계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하니 지난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무엇이나 거리낌없이 말했고 아무에게도 협의해본 일이 없던 불행한 연대였다. 비가 줄줄 내리는 새벽 바로 그때이다 죽어간 청춘이 땅속에서 솟아나오는 것이…… 그러나 나는 뛰어들어 서슴없이 어.. 2019. 11. 13. 이용악 시인 / 제비 같은 소녀야 외 5편 이용악 시인 / 제비 같은 소녀야 어디서 호개 짖는 소리 서리 한 갈밭처럼 어수선타 깊어 가는 대륙의 밤― 손톱을 물어뜯다도 살그마니 눈을 감는 제비 같은 소녀야 소녀야 눈감은 양볼에 울정이 돋힌다 그럴 때마다 네 머리에 떠돌 비극의 군상(群像)을 알고 싶다 지금 오가는 네 마음이.. 2019. 11. 13. 김수영 시인 / 하루살이 외 3편 김수영 시인 / 하루살이 나는 일손을 멈추고 잠시 무엇을 생각하게 된다 ―살아있는 보람이란 이것뿐이라고― 하루살이의 광무(狂舞)여 하루살이는 지금 나의 일을 방해(妨害)한다 ―나는 확실히 하루살이에게 졌다고 생각한다― 하루살이의 유희(遊戱)여 너의 모습과 너의 몸짓은 어쩌.. 2019. 11. 13. 박인환 시인 / 어느 날 외 2편 박인환 시인 / 어느 날 사월 십일의 부활제를 위하여 포도주 한 병을 산 흑인과 빌딩의 숲속을 지나 에이브라함 링컨의 이야기를 하며 영화관의 스틸 광고를 본다. ……카아멘 죤스…… 미스터 몬은 트럭을 끌고 그의 아내는 쿡과 입을 맞추고 나는 `지렛' 회사의 텔레비전을 본다. 한국에.. 2019. 11. 12. 이용악 시인 / 영(嶺) 외 5편 이용악 시인 / 영(嶺) 너는 나를 믿고 나도 너를 믿으나 영(嶺)은 높다 구름보다도 영(嶺)은 높다 바람은 병든 암사슴의 숨결인 양 풀이 죽고 태양이 보이느냐 이제 숲속은 치떨리는 신화를 부르려니 온몸에 쏟아지는 찬 땀 마음은 공허(空虛)와의 지경을 맴돈다 너의 입술이 파르르으 떨고.. 2019. 11. 12. 김수영 시인 / 폭포(瀑布) 외 3편 김수영 시인 / 폭포(瀑布) 폭포(瀑布)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 2019. 11. 12. 박인환 시인 / 불행한 샹송 외 2편 박인환 시인 / 불행한 샹송 산업은행 유리창 밑으로 대륙의 시민이 푸롬나아드하던 지난해 겨울 전쟁을 피해온 여인은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과거로 수태하며 뛰어다녔다. 폭풍의 뮤즈는 등화관제 속에 고요히 잠들고 이 밤 대륙은 한 개 과실처럼 대리석 위에 떨어졌다. 짓밟힌 나의 우.. 2019. 11. 11. 이용악 시인 / 쌍두마차 외 5편 이용악 시인 / 쌍두마차 나는 나의 조국을 모른다 내게는 정계비 세운 영토란 것이 없다 ―그것을 소원하지 않는다 나의 조국은 내가 태어난 시간이고 나의 영토는 나의 쌍두마차가 굴러갈 그 구원한 시간이다 나의 쌍두마차가 지나는 우거진 풀 속에서 나는 푸르른 진리의 놀라운 진화.. 2019. 11. 11. 김수영 시인 / 참음은 외 4편 김수영 시인 / 참음은 참음은 어제를 생각하게 하고 어제의 얼음을 생각하게 하고 새로 확장된 서울특별시 동남단 논두렁에 어는 막막한 얼음을 생각하게 하고 그리로 전근을 한 국민학교 선생을 생각하게 하고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주막거리에서 쉬는 십(十) 분 동안의 지루한 정차를 .. 2019. 11. 11. 박인환 시인 / 무도회 외 2편 박인환 시인 / 무도회 연기와 여자들 틈에 끼어 나는 무도회에 나갔다. 밤이 새도록 나는 광란의 춤을 추었다. 어떤 시체를 안고. 황제는 불안한 샹들리에와 함께 있었고 모든 물체는 회전하였다. 눈을 뜨니 운하는 흘렀다. 술보다 더욱 진한 피가 흘렀다. 이 시간 전쟁은 나와 관련이 없다.. 2019. 11. 10. 이용악 시인 / 병(病) 외 5편 이용악 시인 / 병(病) 말 아닌 말로 병실의 전설을 주받는 흰 벽과 하아얀 하얀 벽 화병에 시들은 다알리아가 날개 부러진 두루미로밖에 그렇게밖에 안 뵈는 슬픔― 무너질 성싶은 가슴에 숨어드는 차군 입김을 막아 다오 실끝처럼 여윈 사념은 회색 문지방에 알 길 없는 손톱 그림을 새겼.. 2019. 11. 10. 김수영 시인 / 적(敵) 1 외 4편 김수영 시인 / 적(敵) 1 우리는 무슨 적(敵)이든 적(敵)을 가지고 있다 적(敵)에는 가벼운 적(敵)도 무거운 적(敵)도 없다 지금의 적(敵)이 제일 무거운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지만 이 적(敵)이 없으면 또다른 적(敵)- 내일(來日) 내일(來日)의 적은 오늘의 적(敵)보다 약(弱)할지 몰라도 오늘의 .. 2019. 11. 10. 이전 1 ··· 31 32 33 34 35 36 37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