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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274

천수호 시인 / 회귀선 외 1 천수호 시인 / 회귀선 모래 위에 그려진 정교한 꺾은선 그래프 파도의 망설임은 침엽수 산 능선처럼 가파르다. 저토록 수위 조절이 힘든 사랑의 한 시절이 있었지만 어떤 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는 갔다. 무릎을 꺾었다가 새로 일어서는 저 파도소리처럼 그 사랑은 또 다른 사랑에게 .. 2019. 3. 9.
이영춘 시인 / 수평의 힘 이영춘 시인 / 수평의 힘 나는 수면 속에 물고기처럼 잠겨서 나를 건져 올리지 못하네 빗방울 속으로 흐르는 여린 풀잎들이 슬픈 레퀴엠의 악보처럼 뛰어오르는데 요만큼만 차 오른 물결처럼 내가 허공 속으로 자꾸 점프를 해도 내 그릇은 요만한 크기의 빈 공기 내 창밖에서 유리창을 두.. 2019. 3. 9.
김신혜 시인 / 누에고치 누에고치 김신혜 시인 비료를 먹고 환해지고 있다 더부룩한 기분에 휩싸여 움직일 수 없다 자기 몸집만한 상자에서 웅크린 채 자고 있는 개 한 마리 일인분의 기분 이 광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탈피를 부추긴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라붙은 번데기들처럼 껍질.. 2019. 3. 9.
류인서 시인 / 거미줄 2 류인서 시인 / 거미줄 2 골목을 공기우물이라 부르는 마을이었다 골목을 무한꽃차례라 부르는 창문이었다 이슬을 모으는 사유지의 우편낭 나무가 없는 들판으로 도착하는 나비들 골목은 골목에서 간신히 놀고 있네 소실점을 얼굴에 둔 그림처럼 눈동자 안으로 흔들리며 걸어가는 골목들.. 2019. 3. 8.
김려원 시인 / 식물성 단어 식물성 단어 김려원 시인 한 권 노트에 식물성 단어를 가리지 않고 심었다 제목을 ‘풀밭’ 이라고 세웠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식물성 단어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어제 들은 말이 저만치 자라있으니 내가 한 대답에서는 빨갛거나 노란 변명이 피어있을 거다. 모든 대화는 과정일 .. 2019. 3. 8.
권순해 시인 / 개심사 개심사 권순해 시인 계곡이 소리를 닫고 칩거에 드네 새들도 날개를 접고 묵언 중이네 해우소 옆 단풍나무 잎은 제 마지막을 태우며 불온한 문장들 지우고 있네 옷을 벗은 배롱나무는 연못에 비친 저를 깊이 들여다보네 나무에 걸린 구름을 배경으로 쑥스러운 웃음을 주고받으며 잠깐 붉.. 2019. 3. 8.
이규리 시인 / 모래시계 이규리 시인 / 모래시계 뒤집어지지 않으면 나는 그를 읽을 수 없어. 뒤집어지지 않으면 노을은 수평선을 그을 수 없어. 그리고 무덤은 이름들을 몰라. 폭우가 유리창을 딛고 지나가면 장면들은 뒤집어지지 편견은 다시 뒤집어지지 간절히 간곡히 전심으로, 이런 건 더욱 더 뒤집어지지 .. 2019. 3. 7.
강현미 시인 / 오래된 기도 오래된 기도 강현미 시인 전철역 사거리 분식집 칠 년째 김밥만 싸는 중년 여인 우르르 몰려드는 발걸음에 손길이 바빠지는데 덜컹, 열차 소리도 함께 넣는다 김밥을 마는 시간은 아들을 생각하는 시간 달걀 오이 단무지 햄 우엉 툭, 도드라지지 말고 어우러져 살아가라고 둥글게 만다 김.. 2019. 3. 7.
황려시 시인 / 모월, 모시 모월, 모시 황려시 시인 다급해진 수수밭엔 앉을 치마가 없어 스르륵 오줌 맛을 본 뱀, 수숫대가 달다고 소문을 낸다네 제 살을 다 먹어치운 안개는 헛웃음만 드러내지 빨간 다리를 든 뱀파이어는 바닥을 보이며 짠 하고 웃어라 트윈인지 싱글인지 내 침대를 건드려봐 급소를 알아내면 안.. 2019. 3. 7.
김은옥 시인 / 죽음으로 향하는 말도 있다 외 5편 김은옥 시인 / 죽음으로 향하는 말도 있다 습관처럼 질주하던 말이 오늘도 이십 사 시간 불 밝히는 식당을 기웃거린다. 말끼리 한 잔 또 한 잔에 속내를 트림하는 말 위장의 쉰내는 우리들의 말을 서로 반복하게 한다 서로의 냄새에 무척 민감한 어미 다른 말들 뒷발에 걷어차인 소리로 언.. 2019. 3. 6.
려원 시인 / 프렉탈, 프렉탈 프렉탈, 프렉탈 려원 시인 한 걸음 뒤로 한 걸음만 더 그런 다음 똑바로 정교하게 짜인 시간의 단면들 세포 하나가 구름 한 다발씩 피워 올린다 과거ㆍ현재ㆍ미래가 한 떨기의 별 은하계라면 뇌는 우주다 유성우는 찬란한 눈물 같아, 눈망울에 고이는 밤바다와 은하수 우주정거장으로 퍼.. 2019. 3. 6.
김은옥 시인 / 끝나지 않는 질문 끝나지 않는 질문 김은옥 시인 저 몸은 누구의 몸인가 꿈속의 꿈속까지 따라 들어와 누워있는 저 아가리에서 살모사가 꼿꼿이 고개를 들고 배밀이 하며 나온다 번뜩이는 살기 두 줄기 어둠 같은 혀가 독기를 품고 오래된 질문을 날름거린다 저 꽃은 누구의 독인가 누가 뱉어놓은 독설인.. 2019.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