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15225 한성희 시인 / 몽상가의 발굴 몽상가의 발굴 한성희 시인 지층은 몽유와 사색에 닿아있다 새의 그림자가 굳은 세상 잎사귀를 닮은 날개는 시간과 싸움이다 나는 눈꺼풀을 반쯤 닿은 상태에서 층위의 세계를 들쳐본다 삽날같이 한줄기 빛이 부리 끝에 닿는다 시간의 날개를 흉내 낸 빛으로 물 한 방울 젖지 않은 표정.. 2019. 3. 1. 한보경 시인 / 간절의 틈새에 손가락이 끼다 간절의 틈새에 손가락이 끼다 한보경 시인 이미 와 있는 이미의 이마를 보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아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간절과 간절의 벌어진 틈새에 손가락이 끼었다 열손가락을 기어이 뭉개고 마는 일 아직 피지 않았거나 이미 지고만 꽃들처럼 세상의 모든 약속들이 핏빛임.. 2019. 3. 1. 황주은 시인 / 무화과의 순간 황주은 시인 / 무화과의 순간 생일에 가을비가 내렸다. 당신이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 당신은 나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11월의 약속은 빗방울처럼 튀었다. 당신은 펼쳐진 우산을 돌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빗방울은 먼 곳으로 둥글게 떨어졌다.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 당신이 둥글어.. 2019. 2. 28. 조민 시인 / 그 밖의 모든 것 그 밖의 모든 것 조민 시인 속을 다 드러내면 폐에 뿌려진 흰 점이 눈보라처럼 빛났다 눈을 감으면 노란 불티가 날아다녔다 멀고 먼 옛날에 아주 가까워졌다 머릿속은 반은 희고 반은 빛났다 검은 싹 같은 것이 간과 폐와 혀끝에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새 무덤 같았다 그 밖의 모든 것은.. 2019. 2. 28. 안명옥 시인 / 고비 고비 안명옥 시인 한고비가 남았다고 했다 그 한고비 잘 넘기고 나면 괜찮다 했다 그리고 겨울이 방문했다 온통 얼음인데 녹이는 방법을 모르고 고비가 오면 고비를 모른 척하나 고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조율 안 된 기타 6줄을 연주하다가 생활이 박자를 놓쳐버린다 인생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거라고 텅 빈 하루를 위로하는 저녁 고비사막을 건너갈 때 힘겨운 시간 곁에 있어준 건 바람과 허공이었다 한 곡 제대로 완주하기 위해 다시 집어든 기타 자꾸 왼손가락이 아프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안명옥 시인 2002년 《시와 시학》 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서사시 『소서노』와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칼』과, 창작동화로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금방울전』 등이 있음... 2019. 2. 28. 한영숙 시인 /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 한영숙 시인 /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 아웅산 묘소 옆 17명 명단 앞에 우리는 시계를 거꾸로 감았다. 알 수 없는 폭발음이 들리고 수류탄 파편들이 순간 멍게 여드름으로 벌겋게 박혀있다. 마하무니불탑 개금 붙이듯 싯누런 시간들은 이국땅에서 겹겹이 수십 년, 개금(改金)과 사이를 해독.. 2019. 2. 27. 나고음 시인 / 상강 이후 상강 이후 나고음 시인 서리 맞아 달고 부드러운 대봉감이 당도한 날 온 집에 불을 켠 것 같았다 한 알 한 알 햇볕에 잘 익기를 기다리며 거실 장 위에 두 줄로 세워 놓고 4박5일, 그 많은 불들을 끄지도 않고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빈 집에 감들의 온기가 가득하다 심줄 박힌 단단하던 속내.. 2019. 2. 27. 권경애 시인 / 장마 - 62병동 장마 - 62병동 권경애 시인 온몸이 무릎인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무릎으로 말한다 무릎밖에 모르는 입으로 무릎의 말을 하고 무릎의 아픔을 무릅쓰고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주룩주룩 무릎으로 내려온다 온몸이 무릎인 사람들의 곁에는 늘 온몸이 손인 사람이 머물며 무릎으로 쏟아지는 빗.. 2019. 2. 27. 전순영 시인 / 젖소 젖소 전순영 시인 짜낸 젖이 지구를 몇 바퀴 돌고 돌면서 달려드는 길과 결투를 하면서 어둠의 아가리 속에서 어둠과 싸워야 했다 어떤 이는 젖소가 욕심이 많으니 쏴 죽여야 한다고 어떤 이는 우유를 짜낼 수 있으니 살려두어야 한다고 어떤 이는 수레를 끌려야 한다고 주인이 젖소 첫 .. 2019. 2. 26. 강병길 시인 / 것 것 강병길 시인 시를 짓다가 것이라는 말을 바라보니 제법 낭비한 말이 것이었다 독자가 적절한 의미를 대비시켜 알아서 읽어주겠지라며 떠넘긴 말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부적인 양 척 붙여놓으면 은연중 힘이 실리던 말 고것 참 신통방통하게 써놓으면 만능열쇠처럼 척척 들.. 2019. 2. 26. 김재홍 시인 / 공포는, 무의식적인 외 2편 김재홍 시인 / 공포는, 무의식적인 공포의 밤들아 공포를 부르는 꿈들아 공포를 옮기는 말들아 공포는 의식적이지 않고 또한 스피노자적이지 않고 공포의 대립을 희망이라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희망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봄은 봄이 아니며 밤은 밤이 아닐지 모르지 피부는 물집과.. 2019. 2. 25. 이재연 시인 /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이재연 시인 /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오늘 내가 믿는 것은 밤의 솜털에 성냥불을 붙인 사람들의 아침. 조용히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은 날개를 접고 주위를 주시한다.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새들도 습관적으로 줄을 지어 날아간다. 높이가 다른 냉담한 건물들과 함께 아무 일도 일.. 2019. 2. 25. 이전 1 ··· 1262 1263 1264 1265 1266 1267 1268 126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