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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9

김상미 시인 / 파리에서 김상미 시인 / 파리에서 파리에서 닷새를 보냈다. 너무나 보고 싶고, 너무나 맡고 싶고, 너무나 느껴보고 싶었던 파리에서 말도로르의 노래처럼 취해서, 엄청나게 취해서 밤새도록 드럼통 세 개 분량의 피를 빤 빈대처럼 취해서 격한 파리의 숨결, 파리의 공기, 파리의 이름들에 취해서 오.. 2019. 2. 20.
이지아 시인 / P도시 P도시 이지아 시인 새로운 도시가 발견되고 인류가 생명을 연장한다면, 그녀는 구석에서 노끈을 자른다. 김이 나가고 차가워진 일이다 이를테면 스프링이 나타나고, 그녀는 아픈 국가를 잊어버린 채 탕을 끓인다. 손님들이 먹다 남긴 뼈를 우려내면서 회전문은 두통을 모르고 냉동차는 .. 2019. 2. 20.
이난희 시인 / 서궐도안(西闕圖案)에 들다 서궐도안(西闕圖案)에 들다 이난희 시인 나는 낮에는 마음을 졸이고 밤에는 방안을 맴돌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조, 『존현각 일기』 이제 괜찮아? 살아 본 적 없는 존현각 주변을 살피며 여덟 살 소년에게, 성년이 된 청년에게 묻고 싶어진다 살수(殺手)들의 칼끝은 집요하게 검은 지.. 2019. 2. 20.
우원호(禹原浩) 시인 / Kiss 1 외 1 우원호(禹原浩) 시인 / Kiss 1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했던 인류 최초의 Ero*! 당신은 내 갈비뼈요 내 몸임을 서로 승인하는 허가증 마피아처럼 더 이상 한 몸이 아님을 선언하는 마지막 키스도 있지만 여자가 아기를 낳고 자신의 분신을 들여다보는 나르시스의 키스도 있지 서로의 .. 2019. 2. 19.
한경용 시인 / 메리 앤 모의 비창ㅡ여성 시인보 100년 메리 앤 모의 비창 ㅡ여성 시인보 100년 한경용 시인 시몬 바람소리 낙엽 우수수 100년을 적습니다. 아프리카 숲 속에서 홀로 우는 새, 렌(ren)은 기도를 합니다. 국권침탈 된 해 탄생한 아기는 이미 운명교향곡을 들었으리오. 만주로 가면 조선말을 가르칠 수 있다기에 희망자가 없는 용정, .. 2019. 2. 19.
권여원 시인 / 렌즈구름 렌즈구름 권여원 시인 렌즈는 내 생각을 보고 있다 하루의 그림자가 본을 뜨면 렌즈구름이 판독한다 살아온 날들을 한 컷으로 압축하는 신의 안목은 숨 가쁘게 달려가는 사람들을 뒤돌아보게 했다 아침의 잘못을 저녁에 기록하는 건 돌이킬 시간을 얻기 위해서다 심장의 세포까지 줌으.. 2019. 2. 19.
함태숙 시인 / 눈다랑어 이야기 눈다랑어 이야기 함태숙 시인 개업한 사장은 사무라이처럼 무릎을 꿇고 꽃모양으로 올린 고기를 한 점씩 가리켰다. 정수리와 볼이며 수정체를 감싼 근육까지 알아보게 색과 무늬가 다르다. 입천장 살 이라는 게 있다는데 그건 귀해 잘 나오지 않는다한다. 나는 혀를 딱딱히 세워 꺼끌한 .. 2019. 2. 18.
김학중 시인 / 벽화 벽화 김학중 시인 1 눈먼자가 처음 그 벽에 부딪쳤을 때 벽이 거기 있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벽을 발견하게 된 것은 눈먼자가 자신의 몸을 뜯어 그린 벽화를 보고 나서였다. 2 벽화는 아름다웠다. 거친 손놀림이 지나간 자리는 벽의 안과 밖을 꿰매놓은 듯했고 .. 2019. 2. 18.
조원 시인 / 지구 관리인 지구 관리인 조원 시인 사막에는 밤마다 시를 쓰고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사람 하나가 살고 있다. 모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사람은 모래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아주 멀고 높은 곳에서만 지표를 관찰한다. 구두를 구겨 신고 넘어진 것은 사람일까. 모래일까. 사막개미들이 열심히 행진하.. 2019. 2. 17.
최순섭 시인 / 플라스틱 인간 플라스틱 인간 최순섭 시인 어렴풋이 몇 대째인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유전자 몸속에는 플라스틱 피가 흐르고 있어 플라스틱 자궁에서 플라스틱 탯줄을 달고 태어나 플라스틱 인간으로 살아왔어 눈물도 모르는 플라스틱 여자 차가운 성질의 플라스틱 남자 열받으면 녹아내리는 플라스.. 2019. 2. 17.
최대남 시인 / 맨발의 무희 맨발의 무희 최대남 시인 나는 무희다 언제나 무대는 거대했다 막이 오르기 전 나는 늘 빨간 드레스를 입었다 스스로 빨갛게 피어 빨강에 갇힌 푸른 여자였다 몸이 뜨거워 살이 환히 비치는 적삼을 입고 아침부터 새벽까지 살풀이를 추었다 홀로 캉캉춤을 추다가 홀로 탱고를 추다가 그.. 2019. 2. 16.
김신용 시인 / 滴―떨켜 2 김신용 시인 / 滴―떨켜 2 겨울 숲에 들면 보이지, 발가벗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나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어서 도리어 쳐다보는 눈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눈 맞으며 비 맞으며 겨울 삭풍에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번번이 연민에 젖는 것은, 그.. 2019.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