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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9

나고음 시인 / 상강 이후 상강 이후 나고음 시인 서리 맞아 달고 부드러운 대봉감이 당도한 날 온 집에 불을 켠 것 같았다 한 알 한 알 햇볕에 잘 익기를 기다리며 거실 장 위에 두 줄로 세워 놓고 4박5일, 그 많은 불들을 끄지도 않고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빈 집에 감들의 온기가 가득하다 심줄 박힌 단단하던 속내.. 2019. 2. 27.
권경애 시인 / 장마 - 62병동 장마 - 62병동 권경애 시인 온몸이 무릎인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무릎으로 말한다 무릎밖에 모르는 입으로 무릎의 말을 하고 무릎의 아픔을 무릅쓰고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주룩주룩 무릎으로 내려온다 온몸이 무릎인 사람들의 곁에는 늘 온몸이 손인 사람이 머물며 무릎으로 쏟아지는 빗.. 2019. 2. 27.
전순영 시인 / 젖소 젖소 전순영 시인 짜낸 젖이 지구를 몇 바퀴 돌고 돌면서 달려드는 길과 결투를 하면서 어둠의 아가리 속에서 어둠과 싸워야 했다 어떤 이는 젖소가 욕심이 많으니 쏴 죽여야 한다고 어떤 이는 우유를 짜낼 수 있으니 살려두어야 한다고 어떤 이는 수레를 끌려야 한다고 주인이 젖소 첫 .. 2019. 2. 26.
강병길 시인 / 것 것 강병길 시인 시를 짓다가 것이라는 말을 바라보니 제법 낭비한 말이 것이었다 독자가 적절한 의미를 대비시켜 알아서 읽어주겠지라며 떠넘긴 말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부적인 양 척 붙여놓으면 은연중 힘이 실리던 말 고것 참 신통방통하게 써놓으면 만능열쇠처럼 척척 들.. 2019. 2. 26.
김재홍 시인 / 공포는, 무의식적인 외 2편 김재홍 시인 / 공포는, 무의식적인 공포의 밤들아 공포를 부르는 꿈들아 공포를 옮기는 말들아 공포는 의식적이지 않고 또한 스피노자적이지 않고 공포의 대립을 희망이라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희망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봄은 봄이 아니며 밤은 밤이 아닐지 모르지 피부는 물집과.. 2019. 2. 25.
이재연 시인 /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이재연 시인 /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오늘 내가 믿는 것은 밤의 솜털에 성냥불을 붙인 사람들의 아침. 조용히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은 날개를 접고 주위를 주시한다.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새들도 습관적으로 줄을 지어 날아간다. 높이가 다른 냉담한 건물들과 함께 아무 일도 일.. 2019. 2. 25.
한정원 시인 / 내포, 메타포 내포, 메타포 한정원 시인 숨어있는 도시를 찾았다 포구인 줄 알았는데 사막이었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은빛 우주선 창가였다 방향을 알고 호수로 스며드는 벌판 오후 한 시에 내리꽂히는 태양만이 수직의 기호였다 내륙의 색깔은 소의 오줌에서 추출했다는 인디언 옐로, 가 맞다 도청 건.. 2019. 2. 25.
송시월 시인 / 회전문 회전문 송시월 시인 회전문의 행간에서 툭 불거지는 돌연변이 ‘장염’, ‘여자’라는 기호가 빙글빙글 공회전을 하며 ‘구토’를 난사한다 온갖 사물들이 포위해오다가 투명한 벽에 부딪쳐 깨지고, 언듯언듯 어지럽게 스치다 쓰러지는 한 챕터의 병원이 희멀겋게 쓰러지며 흰죽으로 .. 2019. 2. 25.
강재남 시인 / 잠의 현상학 강재남 시인 / 잠의 현상학 그러니까 해부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버리겠다는 말, 섬세한 살과 부드러운 뼈, 꽃양배추를 닮은 뇌를 잠에 감추었다 누군가 깨워주길 바라면서 그리하여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시시로 걸어오는 이상론자, 꼭 깨어있어야 허물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으므로 해결.. 2019. 2. 24.
김영찬 시인 / 모든 유추(類推) 가능한 문맥만이 좋은 시가 된다. 모든 유추(類推) 가능한 문맥만이 좋은 시가 된다. 김영찬(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주간主幹) 일각수 유니콘(unicorn)은 일각의 뿔을 신봉할 수밖에 없다. 일각(一角)의 뿔이란 하나의 신앙, 하나의 표상이자 토템, 토탈상징(total symbol)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일생을 뿔 하나로 버티며 현.. 2019. 2. 24.
강기원 시인 / 혀 혀 강기원 시인 무슨 비밀 품고 있었기에 끓는 물 속에서도 입 다물고 죽은 가막조개 어떤 고문에도 입 열지 않았던 투사처럼 불 위에서도 굳게 다물었을 단단한 입술 속의 혀 온몸 혀뿐인,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강기원 시인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7년 〈요.. 2019. 2. 24.
문보영 시인 / 배틀 그라운드 문보영 시인 / 배틀 그라운드 원을 향해 뛴다. 우리는 긴 나무다리를 건넌다. 꿈 바깥에서 모기에 물렸으므로 꿈 안에서 발바닥을 긁었다. 길고 좁은 나무다리를 건너며 발바닥을 긁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너는 뒤돌아본다. 무서워하지 마, 네가 말한다. 너와 나는 같은 편이지만 너는 .. 2019.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