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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9

안영희 시인 / 수를 놓는 처녀들이 있었네 수를 놓는 처녀들이 있었네 안영희 시인 앞가슴에 장미 줄기 벋어 오른 검은 색 스웨터 한 장 샀네 대륙의 민족 대모임엔 모자며 옷 자수로 장식한 소수민족 여인들이 그중 여왕처럼 돋보였네 나락 논 깊숙한 만灣처럼 앞마당까지 파고든 마을에 밤이 오면 어느 집 등잔불 아랜 모여앉아 .. 2019. 2. 23.
김명원 시인 / 시 빵을 굽다 외 시 빵을 굽다 김명원 시인 2급 시조리사 자격증을 수여받은 날, 시 빵을 구워냈다 삼년이라는 맵고 시큼한 시간들이 소요되었고 간질처럼 열병을 앓게 했던 도깨비불이 불쏘시개였으며 간헐적인 말더듬, 흐릿한 시력, 하얀 불면, 죽을 듯 호흡곤란, 그런 것들이 시 빵 재료로 쓰였다 상한 .. 2019. 2. 23.
장우덕 시인 / 입속의 흰 상어 입속의 흰 상어 장우덕 시인 멋대로 이가 돋아나 교정기를 씌웠다 빈자리를 만들기 위해 뽑아낸 생니가 쟁반 위에 놓여 펄떡거렸다 잇몸 속의 단도 지느러미처럼 휘어져 있었다 백상아리에게 물렸다가 살아난 다이버는 평생 옆구리에 기계장치를 달고 살아야 한다나, 그는 전 세계를 돌.. 2019. 2. 23.
함기석 시인 / 평행선 연인 함기석 시인 / 평행선 연인 어떤 문장은 가스덩어리다.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핵이 없다. 내가 라이터 불을 대면 그 즉시 폭발하여 내 얼굴을 태워버린다. 눈을 태우고 귀를 태워버린다. 그런 밤. 어떤 문장은 촛불이다. 타오르는 파도고 노래하는 풍랑이다. 어떤 문장은 청색 멀.. 2019. 2. 22.
홍계숙 시인 / 바닥이 바닥을 치다 바닥이 바닥을 치다 홍계숙 시인 바닥의 몸부림은 둥글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다 생각될 때 바닥은 제 몸을 치고 일어선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놓고 기다릴 때 불기운에 인내심이 바닥이 날 때 바닥은 자신을 짓누르던 수심을 둥글게 말아 수면 위로 힘껏 밀어올린다 물방울.. 2019. 2. 22.
김경숙 시인 / 신전의 기둥 외 신전의 기둥 김경숙 시인 치욕을 앙다물 때 이빨들은 각오를 다져 기둥이 된다 견칫돌 하나를 쌓으면 탑이 되고 대웅전 앞에 앉히면 부처가 되고 무덤가에 세우면 묘비가 되고 모아놓으면 돌담이 되어 돌 하나가 무력의 방향을 돌려세우기도 하고 오해로 막혀버린 벽을 허물기도 하며 때.. 2019. 2. 22.
서영처 시인 / 털실꾸러미, 고양이, 겨울 해 서영처 시인 / 털실꾸러미, 고양이, 겨울 해 겨울 해는 보푸라기가 많다 털실꾸러미처럼 천천히 굴러간다 누렇게 바랜 해가 실을 풀어낸다 폴폴 먼지 이는 실로 목도리를 짠다 새끼고양이가 털실꾸러미를 굴리며 장난을 친다. 쥐를 잡았다 놓았다 놀리는 것처럼 털실꾸러미를 쫓아다닌다.. 2019. 2. 21.
김왕노 시인 / 사랑학 개론 김왕노 시인 / 사랑학 개론 쿠페아, 어디 있는가. 묻지 마 살인과 자살테러의 시간이라도 그리움은 숙명과 같은 것이라 적에게 노출되더라도 쿠페아, 너를 부르다가 무자비하게 죽어도 그것이 그리움의 길이다. 그리움은 부동의 재산이라고, 그리움이 화폐로 금으로 은으로 축적도 하지.. 2019. 2. 21.
최휘 시인 / 우리 집 구도 외 우리 집 구도 최휘 시인 우리는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갔어 나는 벤치에 앉아 이 생을 생각하고 있었지 우리 집 개 이름은 인생이야 늘 생을 뛰어다니고 냄새를 맡고 말도 잘 안 듣고 꿈속에서까지 짖어대고 꼭 사람처럼 인생을 다 안다는 듯 킁킁대고 지랄이야 그래도 한 식구니까 간식을 .. 2019. 2. 21.
송과니 시인 / 낡은 고막과 기계톱 외 1편 낡은 고막과 기계톱 송과니 시인 은밀 정원이 울창해지게, 초록 수풀 병풍 두른 자발적 난청이 이래도 되는 건가. 우주는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지구는 자전공전 몇 바퀴 더 굴러먹은 후에야 우주의 맏이가 되는 것인지, 도무지 궁금해서 꺼둔 안테나 다시 켠다. 딸꾹거리는 주파수 타고.. 2019. 2. 21.
성향숙 시인 / 리듬0* 성향숙 시인 / 리듬0* 나는 무방비 상태로 전시되었다 주어진 시간은 6시간 긴 테이블엔 꽃, 칼, 와인, 빵, 금속 막대기, 면도날, 총알이 장전된 권총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은 신비의 눈빛으로 나를 탐색한다 한차례 격랑으로 어지럽힌 방을 나가 꽃을 사들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순해진 뒤.. 2019. 2. 20.
이령 시인 / 움트다 이령 시인 / 움트다 ㅡ즉시현금(卽時現金) 갱무시절(更無時節) 네 등 뒤에 꽃을 두는 일은 서사적이다 밤보다 깊은 새벽을 밝히는 현재의 일이다 가고 올 시간의 흔적을 보듬는 일 이별의 비수와 비가를 숨기기엔 이 계절이 너무 짧다 너를 품어 꽃을 피웠지만 자리마다 물컹하다 모든 서.. 2019.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