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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성녀 제르트루다

by 파스칼바이런 2009. 11. 5.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성녀 제르트루다

 

 

제르트루다는 하느님의 모습을 신비적으로 보거나 삼위일체로부터 오는 입맞춤을 체험했고, 미사 도중에 탈혼과 계시적 조명 그리고 사랑의 상처를 경험했다.

 

예수성심을 공경한 첫 인물

 

영적인 깊이 평가 '위대한' 칭호 부여

기도가 신앙인의 삶임을 보여준 표지

 

'위대한 제르트루다'로 불리는 성녀이자 신비가인 독일 헬프타(Helfta)의 시토회 수녀. 그녀에게 '위대한'이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그 신학적 섬세함과 신비적인 감수성, 그리고 지성과 감성이 조화된 영적 균형에서 비롯된다.

 

13세기 위대한 신비가

 

13세기 가장 위대한 신비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녀는 1256년 1월 6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5살이 되던 1261년 아이슬레벤에 있는 헬프타 시토회 수녀원 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개방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지적 열망과 타고난 지능으로 일찍부터 학문의 길을 걸었다.

 

특히 15세 때, 학교 교육을 마치고 수녀회에 입회한 뒤 그녀는 베네딕토와 베르나르도 성인의 영성 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 등에 능통했고, 특히 라틴어에 정통했다. 이러한 지적 재능으로 그녀는 모든 것을 지성에 의존했고, 결국 세속 학문과 지성에 매달린 정신은 영적 생활에 대해 소원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면서 그녀는 1280년 극도의 영적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한다.

예수님은 지성에 매몰된 그녀의 영적 상태를 책망하면서도 위로를 줌으로써, 그녀는 마침내 영적 평온을 되찾게 되고, 이후 제르트루다 성녀는 예수님과의 일치 체험을 통해 심오한 내적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녀는 예수님을 신적인 신랑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이 영적 결합은 평화와 삼위일체의 삶을 경험하게 했다.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여기게 된 성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심에 깊은 일치를 이루며 자신을 삼위일체의 생명 그 자체 안으로 이끌어갔다.

 

제르트루다의 영성 생활은 그러나 개인적인 신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비주의적 삶에 대한 경험은 성서와 영적 독서, 공동기도, 시간 전례, 미사를 통해서 성숙됐다.

시간 전례 중에 하느님의 모습을 신비적으로 보거나 삼위일체로부터 오는 입맞춤을 체험했고, 미사 도중에 탈혼과 계시적 조명 그리고 사랑의 상처를 경험했다.

 

전례의 리듬에 따라 살았으며 거기서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전례와 성서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신심을 표현하고 풍요롭게 하는 주제와 표상을 발견했으며, 그녀의 개인적인 기도와 전례 사이에는 아무런 충돌이 없었다.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으며, 전례가 그리스도와 합일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그녀는 굳게 믿었다.

 

그녀는 종종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감정과 열정, 상상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대신덕의 실천을 통한 그분과의 친교를 주장했다.

내적 경험을 항상 성서에 비추어 해석했고, 인간 현실을 무시하는 과장된 감정이나 상상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그리스도와의 혼례적 관계의 경험 역시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대신덕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수 성심의 신학자’

 

제르트루다 신심의 특징은 예수 성심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체험과 헌신이었다.

사실 그녀는 '예수 성심의 신학자'로 불렸고, 예수 성심의 공경을 시작한 첫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신비, 특히 상처에 집중했는데, 이 상처는 피 흘리는 고통에 집중된 슬픈 것이 아니라 정화되고 밝고 변형된 그리스도의 마음이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성덕 중 하나는 순명이었다. 하지만 이 순명은 단지 규율을 지키고 장상에 복종하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고 일상 안에서 순교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완전한 순명은 완전한 헌신이었고, 그것은 또한 자신이 하느님을 비추는 촛불에 불과하다고 하는 완전한 겸손이었다.

 

이러한 겸손은 자연스럽게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으로 연결된다.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완전한 순명의 모범을 보인 성모 마리아와의 일치를 통해 그녀는 죽음으로까지 하느님께 순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명과 일치로 이끌려진다.

결국 그녀는 하느님 앞에서의 순명, 끝없는 헌신을 동반해 자기 자신이 완전히 없어지기까지 순명의 삶을 살았다.

 

"아! 신랑이 오신다"

 

1288년 제르트루다 성녀는 중병을 앓게 되고, 합병증으로 치유가 불가능하게 된다.

건강이 안좋아 오랫 동안 병상에 누워 지냈던 그녀는 투병 생활을 하다가 1302년 11월 16일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녀는 부르짖기를 "아! 신랑이 오신다"라고 했다.

신적인 신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된 그녀의 삶과 영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45세였다.

비록 그녀는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시성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1738년 그녀를 다른 제르트루다와 구분해 그녀의 영적인 깊이를 재평가하면서 '위대한'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그에 앞서 1606년 교황청은 공식 전례의 기도, 독서, 찬가에서 그녀를 공경할 수 있도록 공인했다.

 

그녀의 생애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기도 자체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개인적인 기도, 전례적 기도, 일상적인 것이든 신비적인 것이든 언제나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기도는 그 자체가 곧 그리스도인의 생활임을 성녀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축일 11월 16일 성녀 제르트루다(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