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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생태 영성] 생태 영성의 모범 프란치스코

by 파스칼바이런 2009. 11. 9.

 

[생태 영성] 생태 영성의 모범 프란치스코

이동훈

 

 

미국의 역사학자 린 화이트는 1967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환경 위기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논문에서 서양 정신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리스도교가 생태위기에 막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피조물을 지배하고 정복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창세 1,28 참조).

 

화이트는 그리스도교를 인간만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대상이며, 자연은 어떠한 도덕적 권리도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인간에게 봉사하고자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는 가장 인간중심적인 종교라고 비판한다.

화이트의 논리는 여러 문제점들을 지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넘어, 문제의 뿌리가 종교적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치유도 본질적으로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생태적인 삶을 살았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생태학자들을 위한 수호성인으로 제안하였다.

 

그 뒤 12년 만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마침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천상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교황교서 Inter Sanctos, AAS 71. 1979년).

교황은 이 교서에서 자연을 인류에게 주신 하느님의 훌륭한 선물로 존중했던 성인 가운데 프란치스코를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는 특별한 방법으로 창조주의 우주적 업적들을 깊이 자각하였고, 거룩한 영으로 충만했으며, 그 아름다운 ‘창조물의 찬가’를 노래했기 때문이다.

 

왕자병 인류와 생태정의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에 비해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도구를 사용하여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부르며 생태계 최고의 지위를 자처하였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나타내는 피라미드 모형은 각 계층의 개체수의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표식임에도 피라미드의 각 영역을 생물들의 계급(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로 성경을 해석하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창조의 정점이며, 창조물들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성의 사용 능력과 힘의 세기가 과연 모든 존재의 우수함을 결정짓고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적장애인과 노약자의 인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느님은 인간의 그러한 생각을 용인하실까?

 

하느님은 과연 수많은 창조물 가운데 인간만을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실까?

오히려 딱정벌레를 수십만 종이나 만드신 것을 보면 딱정벌레도 엄청나게 좋아하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이,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모든 창조물이 사랑스러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류는 지나친 왕자병 환자들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모든 창조물의 구원을 바라신다(창세 9장; 마르 16,15; 에페 1,10; 로마 8,19 등 참조).

올해 평화의 날 교황담화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에서처럼, 구약시대에서부터 꿈꾸어온 하느님 나라는 모든 창조물이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를 이루는 세상이다(이사 11,1-11).

 

안식일(안식년)에 사람만이 아니라 땅과 가축들도 쉬게 하였을 뿐 아니라(신명 5,14), 동물들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신명 25,4; 잠언 12,10)으로 보아서 인간은 다른 존재들을 대할 때에도 정의를 실천하도록 요구받는다.

더구나 성경에 나타나는 포괄적인 사랑의 영역에서 볼 때 정의를 인간만이 아닌 모든 창조물과의 관계로까지 확대 적용하는 생태정의는 정당하고 필요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인간의 필요를 위한 도구적 가치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재적(본질적)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신자들은 하느님 찬미를 지향하는 모든 피조물의 가장 깊은 본질과 가치와 목적을 인식하고 세속 활동을 통해서도 서로 더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교회헌장, 36항).

 

만물은 창조의 조건 자체에서 고유의 안정성과 진리와 선, 또 고유의 법칙과 질서를 갖추고 있으므로 인간은 이를 존중하여야 하고, 학문이나 기술의 각기 고유한 방법을 인정하여야 한다(사목헌장, 36항).

  

 

프란치스코의 생태정의

 

프란치스코의 많은 일화들은 그가 얼마나 하느님의 창조물들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해 주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씻고 난 물을 버릴 때에도 그 물이 사람들의 발에 밟히지 않도록 주의하여 버렸으며, 길을 걸을 때에도 작은 생물들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굽비오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을 죽였던 사나운 늑대에게도 그의 먹을 권리를 존중하며 설득하여 사람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프란치스코의 행동은 자신과 같이 모든 창조물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드리도록 불림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는 사랑 안에서 살았고, 다른 피조물들을 사랑하며 살았고, 그들과 존재 자체를 나누고 고유한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줌으로써 모든 존재가 평등한 생태정의를 실현하였다.

 

생태 영성의 모범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는 ‘창조물의 찬가’에서 잘 나타나듯이 모든 창조물을 형제자매라고 부름으로써 하느님을 모든 존재의 원천이며, 모든 창조물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보았다.

이러한 통찰은 세상을 하느님의 창조물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동의 집(Common Home)으로 인식하는 생태 영성의 핵심을 관통한다.

 

생태 영성은 생태계의 모든 존재 간의, 창조물과 창조주와의 상호연관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불가마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던 세 젊은이들처럼(다니 3,57-90) 창조물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찬미했다.

이는 자연을 하느님의 관대한 사랑이 드러나는 성사로 인식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모든 창조물을 형제와 자매라는 가족의 관계로 묶어준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삼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창조의 중심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그들의 형제로서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창조물과 하나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생태학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그가 단순히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창조물의 상호관계성을 핵심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 세계와 초자연적 세계, 성과 속 사이에 인위적인 벽을 만들지 않고, 창조물을 초월함으로써가 아니라 창조물들을 형제자매로 끌어안음으로써 그것을 사다리 삼아 하느님께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느님의 선한 창조물을 끌어안음으로써 아버지의 말씀이신 온전한 그리스도를 끌어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의 삶의 가치들

 

하느님을 천지의 창조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프란치스코처럼 자연을 단순한 자연(물질)이 아닌 하느님의 창조물, 가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겸손과 열린 마음, 감사의 마음으로 모든 것 안에서 거룩함을 자각하는 생태영성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한 지나치게 과장된 평가(왕자병)를 떨쳐버리고 생태계 안에서 인간의 올바른 위치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과 모든 창조물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살았던 가치들은 한마디로 ‘참회, 가난, 겸손, 연민’으로 정리된다.

그는 참회를 통해서 악에 물든 자신을 깨닫고 회심의 길로 돌아설 수 있었다.

가난을 통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음과 인간이 지닌 소유의 욕망을 깨닫게 되었다.

겸손을 통해 모든 창조물과 연대성을 깨달았다. 연민을 통해 가장 작은 것을 포함하여 땅에 있는 것에 대한 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도 프란치스코가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에게 배우는 생태 영성을 위한 생활의 성찰

 

참회 - 하느님의 창조물을 착취하여 편리함을 쫓아 사는 자만심가득 찬 삶을 참회합니다.

가난 - 생태계에 부담이 덜 되는 불편한 삶을 선택합니다.

겸손 - 이성이 없는 자연이 우리의 형제자매임을 상기하고, 탐욕이 아닌 감사, 착취가 아닌 신뢰의 삶을 살아갑니다.

연민 - 창조의 축복이 인간과 모든 생물체에 내려짐을 인정하고,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되어 가는 자연이 나의 일부임을 깨달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합니다.

 

이동훈 프란치스코 - 제천 남천동성당 주임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신학을 전공하였다. 생태영성연구원 공동대표이다.

 


 

  축일 10월 4일 성 프란치스코(Franc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