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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5월 1일 복자품에

by 파스칼바이런 2010. 3. 1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5월 1일 복자품에

  

불치병 치료 기적인증 칙령 반포, 교회 역사상 최단기간 확정 사례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자위에 오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4일,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를 통해 프랑스 수녀의 불치병이 치료된 기적을 승인하는 칙령을 반포하고 오는 5월 1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시복식을 거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와 저작들을 지난 5년 동안 검토한 바 있으며, 그의 전구로 이뤄진 기적 심사를 마무리한 후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칙령 발표 이틀 뒤인 16일 로마 성베드로광장에서 봉헌한 삼종기도 자리에서 “우리는 행복하다”며, “5월 1일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은 특히 엄정한 기적 심사가 이뤄졌다고 밝히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앓았던 것과 같은 파킨슨씨병에 걸린 한 프랑스 수녀가 그의 전구를 통해 의학적으로 완치됐으며, 이는 기적임을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기적 심사는 교황의 최종 승인에 앞서 의학·신학 전문가들을 포함한 세 단계의 교황청 위원회를 통해 인정됐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가 바티칸에서 직접 거행하는 시복식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 것을 예상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시복식이 거행되는 5월 1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며, “요한 바오로 2세는 부활절 일주일 뒤에 거행되는 이 날을 전 세계가 지내는 축제일로 기념하도록 했고, 2005년 자비 주일 전야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6년 동안 교황으로 재임하다 지난 2005년 4월 1일 선종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직후부터 시성 절차를 시작, 2009년 12월 19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웅적 덕행(Heroic virtues)’을 인정하고 ‘가경자(Venerable, 可敬者)’로 선포하는 칙령을 반포한 바 있다. 선종 6년 만에 이뤄지는 이번 시복식은 교회 역사상 가장 빠른 기간에 확정된 사례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복이 이뤄진 뒤 시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기적에 대한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시복의 기쁨, 전 세계가 기다렸다

  

유해, 지하묘지서 성 세바스찬 성당으로 옮길 준비

  

[바티칸 CNS]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 일정이 5월 1일로 정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황청 관리들과 전세계 가톨릭 지도자들, 그리고 신자들은 놀라기보다는 크게 기뻐하는 표정이다.

  

포르투갈 출신으로 교황청 시성성 장관을 지낸 호세 사라이바 마르틴 추기경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위한 기적 인정 칙령에 서명한 뒤 즉시 가진 회견에서 “전세계가 기다리던 일”이었다며 “더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복 추진을 시작할 당시 시성성 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그는 “촉박한 시복조사 시간에 비해 요한 바오로 2세 관련 자료가 매우 방대했다”며 “거룩함의 모범인 요한 바오로 2세를 따라 살아

갈 것”을 당부했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현재 교황청은 시복식을 거행할 때 요한 바오로 2세의 유해를 지하묘지에서 성베드로대성당 위층에 있는 성세바스찬경당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바로 뒤쪽의 오른편에 위치한 이 경당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공간이 넓어, 지속적으로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이 많아질 것을 고려할 때 큰 이점이 있다.

  

 

시복 조사 어떻게 진행됐나

  

5년 유예 규정 면제 … ‘영웅적 덕행’ 인정

  

  

대개 시복시성을 위한 조사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5년간의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 즉, 보다 엄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하기 위해서 최소한 5년 동안은 아예 시복 절차를 시작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후, 이 5년간의 유예 기간 규정을 면제했고, 이에 따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복 절차는 선종 후 바로 시작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교회 전문가들이 수많은 저술들과 연설들을 포함한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시복 조사는 로마교구에서부터 시작됐는데, 이 과정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잘 알고 있는 120명을 대상으로 그의 행동과 인품, 신앙 등에 대한 철저한 인터뷰가 이뤄졌다. 교황의 사목활동, 고통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는가 하는 점에까지 연구가 이어졌다.

  

2007년, 교황의 선종 2주기를 맞아 로마교구는 시작 단계의 조사가 마무리됐음을 발표했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담은 문헌들은 4개의 상자에 담겨졌다. 이 상자들은 자물쇠로 채워졌고, 빨간색 리본으로 묶여지고 역시 빨간색의 밀랍으로 봉해져 추후의 연구를 위해서 교황청 시성성에 전달됐다.

  

한 해 뒤인 2008년 11월, 시성성 신학 자문위원들로 이뤄진 조사팀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관련해, 2000쪽 분량의 성덕에 관한 의견서 「포시티오(positio, positio super virtutibus)」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뒤, 시성성은 2009년 말 모임을 갖고 시복시성의 지속적인 추진을 투표로 결정했다.

  

이어 2009년 12월 2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영웅적 덕행의 삶을 살았다”고 선언했다. 이는 곧 기적이 인정될 경우 시복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전구를 통해 불치병이 치유됐다는 보고는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매우 엄정하게 심사가 이뤄졌는데, 마침내 의학 전문가들은 이 병이 파킨슨씨병이고, 치유에 대한 아무런 과학적이고 의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적이 일어났던 프랑스 출신의 마리 시몬 피에르(Marie-Simon-Pierre)는 ‘가톨릭 모성의 작은 수녀회(Little Sisters of the Catholic Motherhoo)

’ 소속으로 2001년 40세의 나이로 파킨슨씨병 판정을 받았다. 교황이 선종하면서 그의 병세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프랑스와 세네갈에 있는 수녀회의 회원들은 요한 바오로 2세가 그의 치유를 위해 전구해 주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교황 선종 2개월 뒤인 6월 2일, 그는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날 밤 잠자리에 들고 이튿날 아침 완전히 다른 상태로 일찌감치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완전히 병이 나았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그는 완전히 병에서 회복됐다.

  

 

  

- 2005년 4월 9일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거행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서 추모객들이 ‘이제는 성인’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1년 1월 23일]

 


 

 

파킨슨병 앓던 수녀 기적적 치유 인정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어떻게 이뤄졌나

  

  

-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무덤.

교황청은 시복에 맞춰 교황의 유해를 베드로 대성전 지상 오른쪽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복이 가능하게 된 것은 파킨슨병을 앓던 한 수녀의 기적적 치유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로 인한 것으로 인정받음으로써였다.

가톨릭 모성의 작은 자매회 소속의 마리-시몽-피에르라는 이 프랑스 수녀는 40살 때인 2001년에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이 병을 앓고 있었다.

  

2005년 교황이 선종했을 때 마리 수녀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세네갈에 있는 수녀회의 모든 수녀들은 수녀를 치유해 주시도록 하느님께 전구해 줄 것을 요한 바오로 2세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교황 선종 후 두 달이 지난 6월 2일에 마리 수녀는 간신히 글씨를 쓰고 걷는 등 정상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수녀는 자신이 완전히 나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후 수녀는 완전히 회복해 수녀회가 운영하는 파리의 병원으로 돌아와 사도직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이같은 기적적 치유 사실과 관련해 교황청 의학 전문가들은 그 과정을 꼼꼼하게 검토했다. 파킨슨병을 앓았다는 진단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자 1년 동안 엄격히 조사한 후 수녀가 앓았던 병이 파킨슨병이었고, 그 치유가 다른 과학적 설명으로는 밝힐 수 없는 기적적 치유라고 확인했다.

  

교황청 의학 전문가들과 법률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을 다시 검토한 신학 전문가들은 지난해 12월 14일 마리 수녀의 치유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를 통한 것임을 만장일치로 인정했다.

  

이같은 검토를 바탕으로 교황청 시성성은 지난 11일 정기회의를 열어 치유 기적을 인정한 후 관련 교령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제출했으며, 교황이 이를 승인함에 따라 시복이 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이에 앞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복 추진은 그가 선종한 2005년에 시작됐다.

이미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때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는 '즉시 시성을!'(Santo subito!)이란 현수막이 내걸렸고 함성이 울려퍼졌다.

이에 부응하듯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에 선출된 베네딕토 16세는 선임 교황에 대해 사후 5년이라는 유예기간의 적용을 받지 않고 즉시 시복 추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97년 마더 데레사 수녀 선종 직후에 내린 결정을 베네딕토 16세가 선임 교황에 대해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교황은 로마 주교이기에,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 추진은 로마 교구가 담당했다.

로마 교구는 2년 가까운 활동 끝에 교구 차원 조사를 마치고 관련 자료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했으며, 시성성은 이 자료를 다시 2년에 걸쳐 검토한 후 그 결과를 교황에게 제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12월 21일 요한 바오로 2세가 '영웅적 덕행'의 삶을 살았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기적 한 가지만 있으면 시복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마리-시몽-피에르 수녀의 기적적 치유에 대한 검토가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한편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과 때를 같이해 현재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안장돼 있은 교황의 유해를 지상으로 옮겨 성베드로 대성전 안 오른쪽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에 안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티칸 대성전에 들어가면 오른쪽 입구 쪽 미켈란젤로의 작품'피에타'상 근처에 있는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은 접근하기 쉽고 넓어서 많은 순례자들이 교황 유해를 참배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롬바르디 신부는 덧붙였다.

현재 이 경당에는 복자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의 무덤이 있는데, 이 교황의 무덤이 대성전 안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외신종합]

 


 

축일 10월 22일 복자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