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성 세바스띠아노 순교자

by 파스칼바이런 2010. 10. 14.

 

 

성 세바스띠아노 순교자

배문한 도미니꼬(수원 가톨릭 대학장 · 신부)

 

 

로마 제국 3백여 년의 박해를 통해 가장 잔인하고 가혹하게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학대한 황제는 디오클레시아노이다.

이 시대(284-305년)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세바스띠아노이다.

성 암브로시오에 의하면, 그는 밀라노 출신으로서 일찍부터 교회에서 공경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순교 사실 이외에 출생일을 비롯하여 출생지 등 확실히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그 당시는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금지되었고, 성당이 파괴되었으며, 성서 및 종교 서적을 압수하면서 신자들을 배교시키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명령을 거스르면 지위에 있는 자는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평민은 종으로 삼았다.

전설에 의하면 세바스띠아노는 박해받는 신자들을 돕기 위하여 로마 군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그는 모든 군인들의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뛰어난 용감성과 혁혁한 공로로 인해 황제의 근위병으로 발탁, 그 지휘까지 맡게 될 만큼 신임과 사랑을 받았다.

또한 근위병이므로 법정이나 감옥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박해받는 신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물질적으로 돕는 데 힘썼다.

 

때로는 신앙이 흔들리는 형제들을 얼마나 감동적인 말로 설득하였던지 옆에 있던 비신자마저도 신앙을 얻었다고 한다.

체포된 신자들은 그의 모습을 멀리서 보기만 하더라도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특히 그가 까따꼼바의 집회에 참석하였을 때의 그의 열심한 태도는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해는 날로 치열해지고 신자들을 돕고 보호해 주는 일이 남의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신변의 위험을 깨달았지만 형제를 위한 것이 바로 주님을 위하는 것이고 형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기에 목숨을 걸고 그 일을 계속하였다.

얼마 안 가 288년경 그의 행동이 발각되자, 이를 안 황제는 배은망덕이라며 노발대발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 외에 황제의 은혜를 배신한 것은 없으며 그 때문에 오히려 황제에게 성실하였으며 거짓이 아닌 참된 신에게 황제를 위해 기도했노라 했지만 황제의 분노를 풀길이 없어 그는 결국 사형 언도를 받았다.

 

그러나 순교야말로 그가 바라고 바랐던 것이기에 태연자약할 뿐이었다. 황제까지도 “훌륭한 용사다.

죽이기에는 애석한 군인이다”라고 탄복할 정도였다. 나무에 묶이어 처형 준비가 된 후 그의 몸은 비오듯 쏟아지는 수십 개의 화살에 꿰뚫렸다.

군인들은 이미 그가 죽은 줄 알고 버리고 갔다. 그날 밤 이레네라는 독실한 여교우가 그의 유해를 묻으려고 가보니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백방으로 간호하여 그를 소생시켰다.

되살아난 그는 순교의 영광을 얻지 못한 것을 섭섭히 생각하고 다시 황제 앞에 나타나 그리스도교 신자에 대한 박해의 부당성을 조리있게 설명하였다.

 

죽은 줄 알았던 세바스띠아노가 다시 나타났기에 황제는 유령인 줄 알고 매우 놀랐다.

그러나 그 놀람이 사라지자 매우 분노하며 원형극장에 끌고 가 곤봉으로 때려죽이라고 호령하였다.

형벌은 그대로 집행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소원대로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

하수구에 버려진 그의 시체는 루치나라는 부인에 의하여 거둬져 아삐아가에 있는 까따꼼바에 안장되고, 367년 그 위에 성당이 서니 이것이 바로 성 세바스띠아노 성당이다.

 

그의 영광스런 순교는 세계 각국에 전파되었으며 많은 그림들이 그의 행동을 찬양하고 있다.

682년경에 만들어진 모자이크는 화살 없이 수염을 기른 군인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르네상스 때의 그림은 화살을 맞고 있거나 화살을 손에 든 반나체의 젊은 청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나무에 결박되어 화살을 맞고 있는 그림은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페스트의 수호자로 알려졌다.

화살은 못을 상징하며 못은 모든 악운을 못박는다는 오랜 미신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680년 로마, 1575년 밀라노, 1591년 리스본에서 발병한 페스트는 그의 전구로 퇴치된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의 축일은 1월 20일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모든 신자들은 예외 없이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 하며 주님께서 친히 박해를 당하셨는데, 그 누가 예외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박해는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기도 한다. 어떠한 박해도, 설사 화살이 몸을 찌르고 몽둥이가 날아와도 일편단심 주님 사랑으로 극복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인을 본받아 진리와 정의 때문에 박해받고 투옥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생명을 무릅쓰고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자신도 진리와 정의와 신앙의 산 증인이 되어야겠다.

 


 

축일 1월 20일 성 세바스티아노(Sebast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