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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가장 수치스런 목자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13.
가장 수치스런 목자

가장 수치스런 목자

 

 

“너희의 생각은 어떠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냉정한 이성을 소유한 장사꾼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다니요? 그 한 마리를 찾으려다가 아흔 아홉 마리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합리적인 경영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목자는 머리가 돌았군요.”

 

“어느 날 그가 아들 삼형제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 너희의 생각은 어떠냐?”고 다시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목자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저도 얼마 동안은 잃어버린 자식의 모습 말고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아이에게만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저에겐 두 아들이 남아 있으니까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냉혹한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무정한 아비라고 비난 받아도 어쩔 수 없어요.”

 

어느 날 그가 깊은 산속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시나무 우거진 바위 벼랑에 매달려 그는 소리 질렀습니다.

“당신은 아흔 아홉 마리를 버려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겠다고 하셨지요? 당장, 이리로 와 주십시오. 결코 중도에 서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어리석은 목자, 무정한 아비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제발, 저를 버려지는 마십시오.” (이현주,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어떤 분이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 중 한 베두인 목자에게 물었습니다.

“왜 목자가 잃은 양을 꼭 찾아야 합니까?”

“목자의 명예가 달려있기 때문에 꼭 찾아야합니다. 양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목자의 수치 중의 수치거든요.”

 

오늘부터 저희 성당 판공성사가 시작됩니다. 부임해서 처음 하는 판공이라 가장 간단한 지역판공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즉 각 지역별로 날짜를 정해서 성당에 나와 저와 손님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읽어보니 이런 방식이 왠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듯이 느껴졌습니다. 성당에서 하는 지역판공은 왠지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길 잃은 양이 스스로 되돌아오도록 기다리는 모습 같아보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논문지도 교수 신부님도 자그마한 본당을 맡고 있는 본당 주임 신부님입니다. 그 성당은 말 그대로 백 명 정도의 신자가 주일미사에 참례하기 때문에 누가 나오는지 누가 안 나오는지 다 알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신부님이 한 형제가 몇 주 동안 안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그 집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형제는 지붕 위에서 지붕을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주일인데 왜 성당에 안 나오느냐고 소리쳤습니다. 그 형제가 뭐라 뭐라 대답했지만 잘 안 들려서 이번에는 신부님이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붕에 앉아서 사정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해성사까지 다 주고 내려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했지만, 막상 4천 명 가까이 되는 신자들의 목자가 된 지금 저의 모습은 아예 길 잃은 양을 찾아다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당에 잘 나오는 아흔아홉의 사람들에게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나오지 않는 한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이 오늘 복음에 맞는 것 같습니다.

길 잃은 양은 사제가 그런 어리석은 목자나 아버지가 되어 자신들을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내년부터라도 수치스런 목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한 해에 다 끝나지는 못할지라도 최대한 시간을 내어 꾸준히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