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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김대건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 관련 성지를 찾아서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2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 관련 성지를 찾아서

 

 

김대건 성인의 숨결 따라 아름다운 성지 따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김대건 성인이 태어나고, 죽고, 묻힌 성지를 소개한다.

곧 여름방학이자 여름휴가다.

사랑하는 아들 딸 손잡고 이곳 성지들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가족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성지를 찾아 성인의 숨결을 느껴보자.

   

솔뫼

 

- 솔뫼성지에 복원된 김대건 신부 생가.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은 솔뫼다.

주소는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114.

그러니까 성인은 충청도 사람이다.

솔뫼는 소나무 숲이 청청하다는 뜻을 지닌 송산(松山)의 우리말이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고 했던 솔뫼는 김대건 성인이 태어난 생가터일 뿐 아니라 증조부 김진후(비오, 1814년 순교)를 시작으로 4대에 걸쳐 순교자 11위를 낸 성지 중 성지다.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6호인 솔뫼성지 부지는 4만9587㎡. 성지는 2004년에 복원한 성인의 생가와 함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관, 소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 및 기념탑 등으로 조성됐다.

 

지상 2층, 연면적 1365㎡의 기념관은 성인이 탔던 라파엘호를 본떠 지은 것으로 눈길을 끈다.

외관은 라파엘호를, 기념관을 둘러싼 수반(水盤)은 서해를 상징한다.

외벽은 바깥 공기와 만나면 점차 적갈색으로 바뀌는 내후성 강판을 사용해 순교자의 피를 표현했다.

 

기념관은 성당을 비롯해 성인의 생애와 사목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김대건관, 대전교구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내포교회관, 기증 유품실, 소영상관 등으로 이뤄졌다.

김대건 성인의 삶과 신앙을 보고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최소 30명부터 최대 120명까지 단체로 피정을 할 수 있는 솔뫼 피정의 집도 있다.

한국교회사 전반을 기초로 성인의 일대기와 영성을 주제로 하는 위탁 피정도 가능하다.

순례미사는 성삼일을 제외하고는 1년 365일 내내 오전 7시와 11시에 봉헌된다.

야외 십자가의 길과 소나무 동산은 영혼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버릴 만큼 아름답다.

  

새남터

 

 

-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새남터 위에 세워진 새남터성당.

 

솔뫼에서 태어난 성인이 순교로 생을 마감한 곳은 서울 새남터(서울 용산구 이촌2동 199-1)다.

지금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시내 한복판이지만 성인이 순교할 당시만 해도 이곳은 중죄인을 처형하던 서울 변두리 한강 변 모래언덕이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이는 김 신부뿐만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낳은 순교 성직자 14명 가운데 11명이 이곳에서 망나니의 칼을 받았다.

그리고 11명 가운데 8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앵베르 주교와 성 모방ㆍ샤스탕 신부 등이 그들이다. 새남터에는 현재 이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전통 한옥 양식으로 세워진 새남터성당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은 2006년 문을 연 '새남터 기념관'(337㎡)이다.

모두 4개 공간으로 이뤄진 기념관에서 '도입공간'(입구)은 새남터성지 역사와 103위 성인 성화를, '전시공간'은 천주교 수용과 창설, 박해 및 순교과정 유물들을 전시했다.

또 '추모의 장'은 김대건 신부 등 성직자 14인의 흉상과 부조 및 추모대로, '체험 및 교육공간'은 김대건 성인 유해를 모신 조배실과 영상물 상영실, 박해 체험 공간 등으로 꾸며졌다.

 

기차 다니는 소리 요란한 철길 옆에 있는 성지이지만 성지 안에 들어서면 모든 잡음이 고요하게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을 성스러운 준다.

성지와 이어져 있는 한강 고수부지로 나와 탁 트인 한강가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

  

 미리내

 

- 미리내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 경당. 경당 바로 앞에 김 신부 묘가 있다.

 

경기도 안성 산골짜기에 있는 미리내(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141)는 성인이 묻힌 곳이다.

충청도 출신인 성인은 무슨 연고로 고향도 아닌 이곳 안성 땅에 묻혔을까.

 

당시 대역죄로 처형당한 김 신부의 유해를 거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성인이 순교한 지 40일이 지난 후 목숨을 걸고 성인 유해를 거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민식(빈첸시오, 1829∼1921)이다.

미리내는 다름 아닌 이민식의 고향.

성인이 미리내에 묻힌 사연이다.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는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신자들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달빛 아래 냇물과 어우러져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리내성지는 넓고 아름답다.

성지 입구에서 성인의 묘소가 있는 성인 경당까지는 걸어서 20여 분 걸린다.

경당 앞에 있는 소나무 숲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자연 공원이다.

1928년에 완공된 경당은 또 얼마나 아담하고 예쁜지 모른다.

 

경당 앞에 있는 네 개의 묘 가운데 성인의 묘는 왼쪽에서 두 번째다.

성인의 왼쪽은 강도영 신부, 오른쪽은 차례대로 페레올 주교ㆍ최문식 신부의 묘다.

 

사실 성인의 묘는 빈 무덤이다.

이곳에 묻혔던 성인 유해는 1901년 서울 용산에 있는 예수성심신학교를 거쳐 1960년 다시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성인의 하악골(아래턱뼈)만 분리해 미리내성당에 안치했다.

어쨌거나 성인이 처음 묻혔고, 성인의 넋이 깃든 곳이 바로 미리내다. 

 

나바위와 용수리 포구

 

성인이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붙잡힐 때까지 활동한 기간은 반년 남짓이다.

짧았던 만큼 성인의 자취가 남은 곳은 많지 않다.

나바위와 용수리 포구는 성인의 조선 입국과 관련된 성지다.

 

- 나바위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

 

나바위(전북 익산군 망성면 화산리 1158)는 성인이 1845년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함께 서해를 통해 귀국하면서 첫발을 디딘 곳이다.

이곳에는 성인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해 세운 나바위성당이 있다.

 

일행은 나바위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다.

표류하던 일행이 도착한 곳이 바로 제주도 용수리 포구(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4266)다.

일행은 이곳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배를 수리하고 먹을 것을 구한 뒤 다시 뱃길에 올랐다.

제주교구는 이를 기념해 용수리 해안에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기념 성당을 세웠고, 성인 일행이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0년 7월 4일,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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