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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수도꼭지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27.

수도꼭지

 

 

어느 날 파우스티나 성녀는 어떤 영혼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즉시 주님께 9일기도를 바치기로 결심하고, 미사시간에 양쪽 다리에 고행용 쇠사슬을 착용하고 기도와 함께 고행을 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고해성사 때가 되어 영적 지도자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보러갔습니다.

영적 지도자에게는 숨기는 것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고행을 말하려고 했고 영적 지도자도 그것을 당연히 허락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 신부님은 허락도 없이 그런 고행을 하는 것에 크게 놀라고 건강 때문이라도 그런 고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행하는 대신 예수님께서 왜 당신을 낮추셔서 세례를 받으셨는지 묵상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녀에게는 하느님에 대해서 묵상하는 것은 고행이 아니라 즐거움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것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고해신부님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희생 같지도 않은 것으로 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수녀님은 고해신부의 말에 순종하여 고행용 쇠사슬을 풀고 묵상을 하기 위해 성당에 앉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은총을 주라고 청한 그 영혼에게 그 은총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네가 스스로 선택한 고행 때문에 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네가 나의 대리자에게 완전히 순명했기 때문에, 네가 전구하고 자비를 청한 그 영혼에게 은총을 주었다. 네가 네 자신의 의지를 접을 때에, 나의 뜻이 네 안에서 군림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들의 뜻을 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순명을 해야만 하기 시작하면서, 특별히 논문을 쓰면서 그런 것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학생의 생각이 교수님의 생각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논문은 교수님이 통과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 교수님이 바꾸라고 하는 것은 바꾸어야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공부를 하여 머리가 커질 대로 커진 저로서는 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박사 논문 첫 째 장을 제출하고는 교수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걱정하여 음식을 먹고 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꾸라면 다 바꾸어주겠다.’라고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는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즈카르야도 처음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천사의 말대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랬더니 입이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저는 이제는 즈카리야도 파우스티나 성녀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감수해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자신의 뜻을 접는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일인데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접고 윗분의 뜻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은총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합니다.

파우스티나 성녀가 고해사제의 뜻을 따름으로써 한 영혼이 구원되었고, 즈카리야가 자신의 뜻을 접음으로써 입이 풀려 찬미가 솟아나왔으며, 저 또한 제 뜻을 굽히고 교수님의 뜻을 따라줌으로써 학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당신의 은총을 쏟아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자아가, 나의 교만이, 나의 뜻이, 나의 아집이 그 통로를 막고 있습니다. 나의 뜻을 죽이면 그 통로가 열려 은총이 쏟아져 내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수도꼭지를 여는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이것이 당신 뜻입니다.

그러나 당신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랬더니 그 분 옆구리에서 피와 물, 구원의 은총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교만 때문에 닫혔던 은총의 통로가 성모님과 그리스도의 Amen으로 다시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파우스티나에게 노트 한 쪽 페이지에 엑스 표를 하고 그 위에 “오늘부터 나 자신의 뜻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쓰게 하시고, 그 뒷면에는 “오늘부터,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고 모든 것에 있어 나는 하느님의 의지를 행한다.”라고 쓰게 하십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를 통해서도 주님의 은총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고 우리 자신도 그분의 은총으로 가득찰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