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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버려진 돌이 머릿돌이 되었네!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27.

버려진 돌이 머릿돌이 되었네!

 

 

도자기를 배우겠다는 한 청년이 도자기를 잘 굽기로 유명한 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 도자기 장인은 젊은이를 잘 맞이해 주었고 공장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좋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가 거실에 있는 유리 상자 안에 든 꽃병을 보며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저 작품은 정말 귀한 것이겠군요. 선생님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저에게 파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얼마면 되겠습니까?”

 

도자기 장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젊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나에게 얼마를 준다고 해도 저것은 팔 수 없는 물건이라네. 내가 자네와 같은 젊은 시절 하는 일은 잘되지 않고 그래서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우연찮게 다른 도자기 공장에서 쓰고 남아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흙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주어다가 저 꽃병을 만들고 구운 것일세. 나도 처음엔 저렇게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그러나 버려진 흙으로도 저 정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고, 그 때부터 술과 도박을 끊고 열심히 정진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네. 내가 남이 버린 아무 쓸데없는 흙을 가지고 저런 작품을 만들었지만, 또한 저 작품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네. 그런데 어찌 돈을 받고 팔수 있겠나.”

 

대학생 때 돈을 벌어보겠다고 용역회사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이 용역회사에서 사람들을 불러다가 쓰는데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 데려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불려가지 않는 사람들의 심정은 그야말로 ‘나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사람이구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 하느님은 일꾼들을 부르는 포도밭 주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도 가장 나중에 불리는 이들이 주인에게 칭찬받는 가장 첫 째가 되고, 첫 째로 불렸던 이들은 가장 늦게 온 사람들과 자신들을 똑같이 대우한다고 주인에게 불만을 토로하여 꼴찌가 되고 맙니다.

 

사실 가장 나중에 불린 이들은 누구도 데려가지 않던 세상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도밭 주인은 그 사람들을 가장 쓸모 있는 일꾼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실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었다가 좋은 주인을 만나 첫 째가 되었다면 그 사람들은 주인에 대해 너무 고마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주인도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으로 가장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자기 자신도 만족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표현할 때,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라는 시편은 인용하십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가장 천대받고 가장 큰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지만 하느님은 그 천대받는 돌로 당신 나라 건설을 위한 주춧돌로 삼으신 것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비천한 당신 자신의 처지를 굽어보시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 능력도 쓸모도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인간 구원을 위한 가장 귀한 도구가 되게 하신 하느님을 어떻게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와는 모든 것을 다 가졌었지만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했기에 불만스럽고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엘리사벳을 방문하면서 당신 자신을 통해 이루시는 하느님의 일을 보고는 비천한 자신을 통해 앞으로 세워질 교회에 은총을 전달해주는 중재자로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저절로 찬미가 흘러나온 것입니다.

 

하느님은 또한 이렇게 비천하게 자신을 낮추는 한 시골 여인을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여인으로 만듦으로써 그 작품에 대해 얼마나 또 감사한 마음을 지니겠습니까?

마치 도자기공이 버려진 흙으로 위대한 작품을 만들고 기뻐하는 것처럼 하느님 또한 가장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시는 것을 가장 행복해하십니다.

그리고 그 비천한 이로 만든 작품은 누구에게도 넘길 수 없는 하느님의 가장 고귀한 보물이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성덕에 다다랐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모두가 열심히 영성의 계단을 오를 때 자신은 한 계단도 오를 힘이 없는 불쌍한 존재라고 합니다.

그렇게 불쌍하게 한 계단도 오르지 못하고 있으면 하느님께서 보기 불쌍하여 그녀를 집어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나게 하여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자신 또한 아무 쓸모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자신을 써 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성모찬송처럼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으로 살고 싶다면 성모님처럼 자신을 아무 쓸모도 없는 비천한 존재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버려진 돌을 머릿돌로 만드는 것을 즐기십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성모찬송을 듣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