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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례 & 미사

[전례상식] (10) 주님의 현존에 관한 말씀 ③

by 파스칼바이런 2013. 5. 21.

 

 

(10) 주님의 현존에 관한 말씀 ③

 

 

우리는 이제까지 여러 가지로 하느님의 현존을 묘사하고 있는 성서 구절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을 다음과 같이 다른 관점에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당신의 거룩한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우리는 공동체적이고 교회적인 현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으로 그들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로써 이스라엘 공동체는 주님 현존의 ‘성사적’ 표징이 되었다.

 

- 모든 경우에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는 주님의 현존은 활동적인 현존이다. 이것은 단순히 학적으로 ‘어디에나’ 있는 어떤 실재로 그 범주를 분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살아계시고 그들을 위해 일하시는 분으로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세우시고 이끄셨으며 땅을 유산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하느님께서는 백성이 충실하지 않을 때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과 예물을 바치는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시고 그들과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 불붙는 떨기로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것(출애 3,14)은 그분께서 정적인 분이 아니시고 이스라엘을 위해 그들 가까이 계시는 분이심을 뜻하는 것이다.

 

- 구세사에 나타나는 하느님께서는 인간 역사에 언제나 개입하시는 분으로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신다. 이 말은 주님께서 영원으로부터 마음에 품고 계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당신을 나타내 보이신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역사의 주인공은 하느님 자신이시다. 이러한 현존을 우리는 역사 · 구원적 현존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이스라엘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은 여러 가지 표징으로 나타난다. 주님께서는 꿈에도 나타나시고 어떤 영상으로도 나타나시며 신비로운 일이나 구름, 불기둥으로도 나타나신다. 그 하느님께서는 성전에도 계시고 예배에도 계시며 예언자가 선포하는 말씀 안에도 현존하신다. 그리고 이 현존은 언제나 인격적인 현존이다. 다른 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는 분은 바로 주님 자신이시다. ‘너’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는 바로 ‘나’이다. 주님의 현존을 신화적으로 해석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나) 신약성서

 

1) 당신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은 나자렛의 예수님 안에서 절정에 이른다. 사람이 되신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성사’이시다. 옛날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현존하신다. 옛 계약을 맺으시고 족장들에게 하신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2고린 1,20 참조).

 

새로운 백성을 해방하고 구원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현존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희생적 봉헌 안에서 실현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골로 1,19-20).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고난받는 종의 사명을 성취하시는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하신다(마르 1,10.12 참조).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와 맺으신 하느님의 새로운 계약은 성자 예수님의 희생으로 맺어지고 확인되었다.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루가 22,20).

 

예수께서는 천상 성전을 향한 순례의 길에 앞장서 가신다. 성부께서는 성자를 통하여 교회를 이끄시고 교회에 안식과 땅과 유산을 주신다(히브 3-4장 참조).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 안에 하느님의 심판이 현존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3,18-19).

 

사람에게 복을 내리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현존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에페 1,3).

 

사람들 가운데에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새 성전은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2,19-21).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강생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에 당신의 거처를 정하셨다(요한 1,14 참조).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라는 뜻을 지닌 임마누엘은 바로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이시다.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2-23).

 

구약의 예식과 제사는 새로운 계약의 대사제이신 예수께서 단 한 번 완전하게 봉헌하신 참 제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께서 드리신 제사가 ‘실재’라면 구약의 여러 예식과 제사는 ‘예표’일 뿐이다. “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해마다 계속해서 같은 희생제물을 드려도 그것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 사제가 날마다 성전에서 예배의식을 거행하며 같은 희생제물을 자주 드리더라도 그 제물들이 결코 죄를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오직 한 번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죄를 없애주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효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 아래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거룩하게 만드신 사람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해주셨습니다”(히브 10,1.11-14). 예배를 드림으로써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우리의 만남이 이제 그리스도의 거룩한 봉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것은 성찬기도의 마침 영광송에서도 확인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전능하선 천주 성부 온갖 영예와 영광을 세세에 영원히 받으시나이다.” <계속>

 

[경향잡지, 1996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