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주님의 현존에 관한 말씀 ⑤
‘나의 말’(‘나의 복음’)이라든지 ‘우리의 말’(‘우리의 복음’)이라는 표현도 바오로에게서 찾아볼 수 있지만(1코린 2,4; 로마 2,16; 16,25; 2코린 4,3; 2테살 2,14; 2티모 2,8 등), 분명히 이 표현도 다른 자리에서 주님 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복음으로 부르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복음 선포와 같은 것이다. 그가 전하는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성령의 힘찬 활동의 뒷받침을 받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우리의 복음’)이 그저 말만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굳은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1테살 1,5). 여기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고 있는 ‘우리의 복음’은 곧 ‘주님의 말씀’(1테살 1,7)과 똑같은 뜻을 지닌 말씀이다. 같은 편지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바오로 사도의 말이 같은 말씀으로 이해된다. “우리가 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2,13). 주님께서는 사도가 선포하는 말씀 안에 현존하신다. 사도가 선포하고 회중이 듣는 말씀의 표징 안에 주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
사도가 선포하는 인간의 말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 선포의 사명에서 나온 것이다. 사도의 권위는 주님께서 그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신 데서 나오는 것이다. 사도들은 주님 ‘말씀의 봉사자들’이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 또는 복음의 봉사자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을 받고 내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이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에페 3,6-7).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소식을 전하는 일꾼입니다”(콜로 1,23). 또 복음의 ‘종’이라는 표현도 쓴다(로마 1,9).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복음을 전한다고도 한다(2코린 5,20). 바오로 사도는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가 전하는 복음과 자기의 사도직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더욱 분명하게 밝힌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 둡니다. 이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1,11-12).
주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봉사’를 통하여 교회 안에 말씀하시는 분으로 현존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 있는 복음 선포자들이 전하는 인간적인 말은 구원사업을 계속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성사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표징이 된다. 주님께서는 그 표징을 통하여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과 아버지를 계시하신다. 이 말은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말씀의 봉사직을 수행하는 공동체, 곧 교회라는 표징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주님의 현존을 우리는 공동체적이고 교회적인 특성을 지닌 현존이라고 말한다.
ㄷ) 그리스도께서는 성찬례를 거행하는 회중 안에 현존하신다. 성찬례에 관한 성서 구절은 많다(마태 26,26-29; 마르 14,22-25; 루카 22,15-20; 요한 6,51-59; 1코린 11,23-26; 1코린 10,16-22). 그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은 성체와 성혈을 이루시는 말씀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루카 22,19; 1코린 11,24 참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루카 22,20; 1코린 11,25 참조). 이 거룩한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곧 십자가 위에서 바치실 몸과 피를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 현존하게 하였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명령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이 몸과 이 피는 교회 공동체가 거행하는 성찬례 안에 다시 현존하게 된다. 성찬례는 주님의 죽음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선포하고 실현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성찬례 거행을 통하여 주님의 죽음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선포하라고 말한다(1코린 11,26). 그리스도의 피로써 맺은 새로운 계약을 재현하는 제사는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여’ 거행하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성찬례 안에서 계속된다.
요한 복음 6장은 주님의 살과 피의 현존을 강조한다. 이 주님의 살과 피가 그리스도인들의 성찬의 식탁에 그대로 현존한다(1코린 10,21; 11,27).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당신의 살을 먹으라고 주시고,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당신의 피를 마시라고 주신다. 주님의 살은 참된 음식이고, 주님의 피는 참된 음료이다. 이제 이러한 주님의 현존은 교회가 성찬례를 거행하며 마시는 잔과 ‘쪼개는’ 빵 안에 계속된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의 성찬의 식탁에서 계속되는 주님의 현존을 다음과 같이 반문하며 확인시키고 있다.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1코린 10,16). 요한 복음은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되어 현존함을 강조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6,56). 이 말씀은 빵과 포도주로 거행하는 성찬례 안에 주님께서 현존하시며 그것을 먹고 마서는 사람들과 함께 사시고 통교를 나누신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주님의 이러한 성사적 현존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된다. 그래서 성찬례는 과거만을 회고하지도 않고 현재에만 머물지도 않으며 미래를 향한 종말론적인 전망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성찬례는 천상잔치를 기다리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거행하는 지상의 잔치이다. “잘 들어두어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마르 14,25과 병행구). 성찬례는 주님을 직접 눈으로 뵈오며 나눌 통교(1테살 4,16-17 참조)를 준비하는 성사적 통교이다. 이러한 성사적 통교는 마지막 날에 있을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십시오.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1고린 11,26). 이러한 뜻에서 주님의 성찬례의 현존은 ‘종말론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성찬례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은 탁월한 교회적 특징을 지닌다. 바오로 사도는 한 몸인 교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한 빵에 대해 말한다.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코린 10,17). 우리는 여기에서 “성찬례가 교회를 이룬다.”라는 전통적인 정의를 이해할 수 있다. 성사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이 주님을 믿는 이들을 한데 모아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빵을 먹음으로써 한 몸이 된다. 믿음으로 모인 공동체는 빵을 쪼개는 예식으로 주님의 죽음을 기념한다. 교회는 이 성사 예식으로 주님을 현존하시게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 예식 안에 현존하심으로써 존재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성사를 거행하는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현존하신다.
결론적으로, 거룩한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관한 신약성서의 기록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백성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찬례를 거행하며 말씀을 듣고 선포하고 기도하고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교 회중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이 회중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구약과 그 방식은 다를지라도 아버지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당신의 백성 안에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주님의 현존은 여러 가지 표징들로 드러난다. 그러나 주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여러 표징들 가운데 보편적인 표징은 바로 교회, 세상 안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 공동체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아버지 하느님과 우리의 전체적인 만남은 바로 이 교회 공동체라는 보편적인 표징 안에서 이루어진다.
[경향잡지, 1996년 10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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