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전례주년 :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거행 ①
이번 호부터는 ‘전례주년’에 관한 글을 싣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A. Adam. Das Kirchenjahr mitfeiern, Herder, Freiburg im B. 1979의 이탈리아 번역판 L’Anno Liturgico Celebrazione del Mistero di Cristo, elle di ci(Torino) 1984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래의 저서를 충실히 번역하되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은 역자의 판단에 따라 적절히 가감할 것입니다.
머리말
전례주년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의 업적을 일년의 주기 안에서 기념하여 거행하는 것이다. 교회 문헌은 전례주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교회는 일년의 주기 안에서 탄생에서부터 성령강림, 그리고 주님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를 거행한다”(전례주년과 전례력 총지침, 17항, 참조, 전례헌장, 102항).
전례주년은 일반 달력을 교회가 사용하려고 적당히 변형시킨 것이 아니다. 일년이라는 ‘세속’의 시간도 그리스도인에게 내리시는 창조주의 은총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여러 차례 이 역사적인 시간 안에 들어오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러한 구원의 뜻을 분명히 보여주심으로써 모든 시간은 구원의 시간이요 하느님의 시간이 되게 하셨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이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업적을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사를 거행하며, 신자들을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이끌고 은총 안에 성장하게 하는 길을 준비하는 여러 가지 사목활동을 통하여 그 과업을 수행한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축제를 거행하는 것은 끊임없이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고 구원을 다시 이루는 것이다. 여기에 일년이라는 주기적인 시간을 이용한다. 이 일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주기적으로 반복할 수 있도록 일정한 날에 각각의 기념일이 정해진다. 그런데 어떤 기념일은 성서에 따라, 역사적 상황에 따라 정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기념일의 날짜는 필요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전례주년의 거행은 과거에 일어나 구원사건을 돌이켜 회상하는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례를 받아 구원된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위기에 놓이는 자기 자신의 구원을 확고히 하기 위해 민첩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전례 거행 안에서 또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길을 증언하고 준비하기 때문이다.
전례주년은 일년이라는 주기 안에 하나의 고정된 자리를 찾은 모든 전례 거행의 총체로 이해된다. 이러한 전례가 거행될 때 새로운 계약의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을 구원하시고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공동체 안에서 전례를 거행하는 회중과 하나가 되신다(전례헌장, 7항 참조).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전례 거행을 통하여 실현되고 구체화된다. 그렇게 해서 전례주년은 교회 자신의 표현이 되고 그리스도인 삶의 기초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 기초 위에서 삶을 구체적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전례주년에 대한 깨달음은 매우 긴급한 일로 보인다.
그것은 바른 이해와 실천을 통하여 이룩해야 할 일이다. 전례주년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세속화되고 신앙의 내용과 그리스도인 삶의 가치를 무시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주년에 대한 이 글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전례주년이 어떤 양식으로 거행되었고 또 그 신학적 영성적 내용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신자들이 전례주년의 거행을 통해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사실 올바로 이해하고 또 믿음을 가지고 전례주년을 거행하는 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총체적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고 또 실제로 구원하시는 주님과 나날이 새로워지는 만남을 체험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방대한 분야를 다 다루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한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역사적인 부분과 기념 미사의 양식들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데에 머무를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전례의 중요한 한부분인 시간전례에 대해서도 그 역사와 의미 그리고 양식에 관해 따로 한 장으로 기술할 것이다.
제1장 시간과 인간의 삶
인간의 삶은 우주의 질서에 따라 이루어진 조건을 따르게 되어 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지정된 지구는 우주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에 비하면 큰 바위산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태양을 따라 도는 지구의 움직임은 일년이라는 시간의 주기를 갖게 한다. 지구를 따라 도는 달(luna)은 약 29일 반이라는 시간의 단위를 이루고 있는 달(mese)을 갖게 한다. 여기에서 모든 달은 29일 또는 30일의 길이를 갖게 되었다. 또 자기 축을 따라 도는(자전하는) 지구는 24시간으로 나누어진 하루를 낳았다. 더 나아가 각기 자기 규칙을 가지고 있는 항성의 조화는 빛과 어둠, 더위와 추위가 교차되는 시간의 구분을 낳아 유기적인 삶을 살게 한다.
사람은 빛과 어둠의 시간으로 되어있는 하루라는 시간 안에서 살아간다. 그 사람은 또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으로 구분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계절에 따라 기후가 변하는 일년의 주기를 체험한다. 지구를 따라 도는 달은 초생달, 상현달, 보름달과 하현달의 변화를 보여 또 다른 시간의 구분을 사람에게 체험하게 한다. 어부, 농부, 목자, 사냥꾼과 천문학자를 제의하고는 오늘과 같은 산업화 시대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별로 느끼지 못할지라도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동 지방과 지중해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음에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달의 네 가지 변화는 7일로 이루어진 주간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
같은 시간에 각 민족에게 지정된 지구 공간에 적응해 살아야 하는 인류는 하루, 주간, 달과 일년이라고 하는 시간의 단위를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 시간들의 규칙적인 순환은 사람에게 각자의 삶과 그 지속되는 시간을 재게 하고, 그에 따라 처신과 활동을 결정하게 한다. 옛 사람들 가운데 아주 종교적이었던 사람은 시간의 이러한 흐름을 초자연적인 우주의 선물 또는 그 힘의 현시로 보았다. 그 사람은 어떤 시간을 구원의 시간으로, 또 다른 시간을 위협과 불행을 가져오는 시간으로 보았다. 그래서 창조의 실체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종교적 태도를 갖게 하고, 기도와 단식, 행렬, 또는 파공으로 이루어지는 감사와 보속의 희생 제사를 바치는, 일년을 주기로 하는 종교력(ca1endario re1igioso annuale)을 갖게 했다.
옛 사람들이 사용했던 이러한 종교력에 대해 기술하자면 엄청난 양이 될 것이다. 유목 민족과 농경민, 사냥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던 민족들의 축제와 예식에 관해서 보더라도 서로 다른 많은 예식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리적인 차이나 역사의 변천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땅의 경작과 초원을 양떼가 따라 이동하는 것과 관련된 봄 축제, 그리고 여러 가지 추수와 사는 지역으로 양떼가 귀환하는 시기로 특징지어지는 가을 축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모든 백성들에게는 이른바 ‘통과 의례’라는 특별한 의식이 있었다. 이 축제들은 살아가면서 일정한 순간들에 거행되는 것이다. 출생과 이유기, 사춘기, 혼인과 죽음과 관련된 종교 예식들이 있다. 이러한 생애의 사건들은 개인적인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민족, 한 공동체의 삶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애의 사건들은 여러 시기에 걸쳐 공개적으로 거행되었다. 이러한 예식말고도 자연적인 재앙이나 전쟁의 승리와 패배, 땅의 정복, 유명한 통치자들의 탄생과 대관 그리고 ‘공현(epifanie, 장엄한 의식으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방문)’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도 한 민족을 특징지어 주고 그것은 제도화되어 기념적인 축제나 기념일의 기원이 된다.
옛 사람들은 공적 또는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사건들 안에서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과 현시를 보았다. 그래서 옛 시대의 축제들은 모두 종교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옛 사람들, 특히 지중해 연안의 민족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신비 축제들’은 자연적인 사건에 어떤 신적인 힘을 연결시켜, 그것을 예식으로 거행함으로써 신적인 생명을 받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했다.
이스라엘의 선조들도 그들이 본래 살았던 땅의 관습과 종교적, 문화적 이해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것들을 수정하거나 배척하였다.
[경향잡지, 1997년 5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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