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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례 & 미사

[전례상식] (14) 전례주년 :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거행 ②

by 파스칼바이런 2013. 5. 25.

 

 

(14) 전례주년 :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거행 ②

 

제2장 히브리 축제력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그 뿌리를 구약에 가지고 있지만 구약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전례력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한 해의 히브리 축제들이 어떻게 갈마드는지, 그 주기를 잘 알아야 한다. 이 축제들이 역사적인 발전 과정에서 수적으로 늘어나고, 그 뜻의 강조점도 달라졌더라도 우리는 예수님 시대의 축제들에 대해서만 살펴보게 될 것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파견은 히브리 축제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축제들은 히브리 축제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충만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히브리 축제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태음 태양력을 기준으로 할 것이다. 이 태음 태양력에서는 달의 운행에 기준을 두면서 태양의 변화에 따라 계절을 구분한다. 그러므로 초생달과 보름달의 변화는 중요하다. 이 달력에서는 한 달이 29.5일이므로 일년 열두 달을 날짜로 계산하면 354일이었다. 히브리 달력의 한 달은 한 달 건너 29일과 30일의 주기로 계산하였다.

 

시간의 구분은 분명히 바빌론의 영향을 받았다. 이 점에서는 그리스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러한 일년의 구분이 365일 5시간 49분으로 이루어지는 태양년과 맞지 않음을 곧 알게 되어 윤달을 두어 그 차이를 메웠다. 이스라엘에서는 2년 또는 3년마다 춘분 바로 전달인 아다르(Adar) 달 다음에 베아다르(Veadar)라고 하는 두 번째 아다르 달을 끼워넣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본래 추분이 지난 다음 새로운 달(luna nuova)이 가까워지는 가을에 새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빌론의 영향을 받아 새해의 시작을 춘분이 지난 다음에 오는 보름으로 옮겼다. 그리고 니산(Nisan)이라고 하는 이 달을 첫 달로 삼았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오늘날까지 종교적으로는 옛 관습대로 일곱 번째 달(Tishri달)의 첫날에 새해를 시작하였다.

 

모든 축일은 그 전날 저녁에 시작하고 다음날 저녁에 마친다.

 

 

1. 안식일

 

일년 중 안식일은 가장 중요한 날이다. 이날은 7일로 된 한 주간의 끝날이고 완성이다. 이 안식일은 히브리 백성의 근원적 축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은 휴식의 날이지만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날이기도 하다.

 

안식일을 의무일로 제정한 것은 유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이전에 안식일이 제정되었다고 보지는 않더라도 오늘날에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고대 근동의 종교들에서 “나쁜 날들”로 간주된 날들 안에 오늘날의 주간과 안식일의 전례(前例)를 보게 하는 기록들이 있다. “일곱으로 나눌 수 있는 날들, 곧 7일, 14일, 21일, 28일 그리고 19일이 있다. 거의 모든 이들에게 이날들에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의무로 되어있었다. … 처음에는 나쁜 날들의 일곱이라는 수는 아직 시간을 재는 단위로 쓰이지 않았다. 시간의 리듬을 말하는 데에 달 외에 ‘주간’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다. 다음에 더 정확하게 지적할 일련의 발전 과정을 통하여 히브리인들의 안식일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변화는 이방인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라가쉬(Lagash)에서 발견된 기원전 2500년경의 비문에 따르면 제사를 바쳐 이날들을 이미 거룩하게 하였다”(Th. Maertens, Heidnisch-judische Wurzeln der christlichen Feste, Mainz 1965. 19).

 

이러한 일련의 날들은 각각 초생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등의 달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19라는 수는 7 곱하기 7에서 한 달의 30일을 뺀 것으로 해석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본래 살던 땅에서 사용하던 이러한 관습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그들의 종교관에 적절히 변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십계명의 하나는 특별히 일을 하지 말고 쉴 것을 강조한다. ‘안식일(sabato)’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말의 shabbat(=그치다, 쉬다)에서 나온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은 안식일을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다음날 쉬셨다는 사실과 밀접히 연결시키고 있다(출애 20,8-11).

 

구약성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 안식일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기능을 특별히 강조한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어라. 그래야 너희 소와 나귀도 쉴 수가 있고, 계집종의 자식과 몸붙여 사는 사람도 숨을 돌릴 것이 아니냐?”(출애 23,12) 또 안식일은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 계약 이행의 표징이다(신명 5,15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여 축제를 지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대대로 지킬 영원한 계약으로 삼아야 한다. 야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은 쉬며 숨을 돌렸으니,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가 된다”(출애 31,16-17).

 

안식일이 지닌 이러한 깊은 의미와 안식일을 지키라는 강력한 권고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에게 커다란 벌을 내리게 한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이날을 범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은 야훼를 섬기는 거룩한 날이니 철저하게 쉬어야 한다”(탈출 31,14-15).

 

신약성서도 그 시대 유다교가 얼마나 엄격하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강요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마르 2,27).

 

히브리인들의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쉬셨다는 ‘하느님의 휴식’을 본뜬, 일하지 않고 쉬는 휴식의 날일 뿐만 아니라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쉬는 ‘거룩한 집회의 날’(레위 23,3)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안식일의 특별한 제사가 봉헌되었다(민수 28,9-10 참조). 성전을 갖지 못했던 유배 시절과 그보다 뒷 시대의 예루살렘 밖의 히브리 공동체들은 성서 봉독과 기도로 이루어지는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였다.

 

히브리인들은 각 가정에서도 안식일을 거행하였다. 그들은 회당 전례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가정 전례도 거행하였다. 이 가정 전례는 깊은 신앙과 참된 신심의 표현이지만 또한 그것들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항구히 반복되는 안식일에서 안식일로 이어지는 리듬 없이는 히브리 백성은 시간과 계속해서 그들을 찾아오고 또 그들을 거슬러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R.R. Geis. Vom unbekannten Judentum, Freiburg, 1977, 62).

 

 [경향잡지, 1997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