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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례 & 미사

[전례상식] (11) 주님의 현존에 관한 말씀 ④

by 파스칼바이런 2013. 5. 22.

 

 

(11) 주님의 현존에 관한 말씀 ④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던 구약의 역사는 끝나고, 이제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분명하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히브 1,1-2). 예수께서는 우리가 감각할 수 있게 인격으로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이시다. 성부께서는 나자렛 예수님이라는 인격화된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현존하신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2) 신약성서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도 증언한다. 예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도 교회라는 ‘성사적’ 표징 안에서 계속해서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넘겨지시던’ 밤에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의 주제였다. 스승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고아로 버려두시지 않고 다시 그들에게 돌아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한 14,18). 그분께서는 지금은 떠나시지만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요한 14,28). 뿐만 아니라 스승의 떠남은 제자들에게 기쁨의 동기가 된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6,5 이하).

 

그러므로 헤어짐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예수께서는 얼마 안가서 제자들을 보러 다시 오실 것이다(요한 16,16 이하).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 교회 안에 계속해서 현존하신다.

 

예수께서는 여러 가지 표징들을 통하여 교회 안에 계속해서 현존하실 것이다.

 

ㄱ) 그리스도께서는 믿음과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며 기도하는 회중 안에 현존하신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이 말씀은 교회가 바치는 기도의 공동체성과 기도하는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덕으로 교회가 오류에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회중의 특정은 주님의 이름으로(‘내 이름으로’) 모였다는 데에 있다 ‘내 이름으로’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 고백하며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님의 현존은 제자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데에서 드러난다. 그러한 공동체가 곧 주님 현존의 표징이다.

 

형제적 사랑은 마태오 복음 18장 전체의 주제이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그들을 죄짓게 하는 데에 대한 책임,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사목적 배려, 형제적인 충고와 교정, 나에게 해를 끼친 형제에 대한 용서, 무자비한 빚쟁이의 비유는 모두 형제적 사랑이라는 주제를 여러 가지로 묘사한 것이다. 예수께서 현존하시는 제자들의 공동체는 분명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이며 ‘형제들’의 공동체이다.

 

요한의 첫째 편지는 빛으로 나아가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데에 꼭 필요한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은 모두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으로 모아진다.

 

“빛 속에서 산다고 말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자입니다. 자기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2,9-10).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있는 것입니다”(3,14). “우리가 명령받은 대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3,24-25). “하느님의 아들이 오셔서 참 하느님을 알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5,20).

 

예수께서는 이 주제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써 이미 강조하셨다. 또한 이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 안에 계시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상호 통교와 현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요한 15,9-10.17).

 

이렇게 주 예수께서는 믿음과 형제적 사랑을 설천하며 기도하는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며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계심을 보여주신다. 그 공동체는 바로 주님 현존의 표징이다.

 

ㄴ)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을 선포하고 듣는 회중 안에 현존하신다. 주님께서는 복음이 선포되는 바로 그곳에 계신다. 그곳에 현존하시며 회중에게 말씀을 선포하신다. 그러므로 말씀을 선포하고 듣는 교회는 주님 현존의 표징이 된다.

 

바오로 사도는 누구보다도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편지에서 ‘주님(그리스도)의 말씀’ 또는 ‘주님(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1테살 1,8: 2테살 3,1; 콜로 3,16; 1테살 3,2; 2테살 1,8; 로마 15,19).

 

여기에서 말하는 ‘말씀’ 또는 ‘복음’은 주님(그리스도)께서 직접 선포하시는 말씀을 뜻한다.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에 말씀하시는 분은 곧 예수님 자신이시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현존하신다.

 

이러한 이해는 바오로의 펀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이번에 다시 가면 그런 자들을 단 한 사람도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증거를 찾고 있던 여러분이 그 증거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대하실 때 결코 약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력하신 분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나십니다”(2코린 13,2-3). “여러분은 우리가 주 예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1테살 4,2).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1테살 1,6; 콜로 4,3; 2티모 4,2; 티도 3,8 등)이라든지 ‘복음’(로마 1,16; 10,16; 1코린 4,15; 15,1; 갈라 2,5. 14; 에페 3,6; 필립 2,22 등)이라는 표현을 자주 완전히 독특한 의미로 쓰고 있다. <계속>

 

[경향잡지, 1996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