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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리 & 영성

그리스도인의 생활(Ⅰ) 1 규범(법)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24.

 

 

I. 규범(법)

 

1. 규범(=법)의 필요성

 

인간이 사는 곳에 규범이 있다. 국가, 지역사회, 단체 등에는 규범이 있기 마련이다. 그 규범은 소속된 사람의 행동을 제한하기 보다는 소속된 곳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한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규범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규범이 필요하다. 복잡한 도심에 신호등이 있는 이유가 차들이, 사람들이 잘 다닐 수 있게끔 설치되어 있는 것과 같이, 신호등을 올바로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하듯이 우리가 규범을 잘 지키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는 길에서 멀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규범을 알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2. 규범의 실천은 왜

 

하느님은 당신의 모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또한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법을 주셨다.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법은 당신의 나라를 향해 가는 이 세상의 순례의 길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의 법을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호하고 완성하는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하느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사랑에서 멀어지는 것이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멸망에로 이끄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에 대하여 말들을 많이 한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면 좋은 것이고, 자기에게 불리하면 나쁜 것이 된다. 일반적으로 법은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생각들 한다. 그러나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우리는 하느님의 법을 실천할 때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법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며,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법에 속박되어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진다(로마 6,16). 또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구약에서 하느님은 법과 정의로써 백성을 다스렸지만, 신약에서는 사랑과 성신으로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기에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왜냐하면 죄에서 해방되고 생명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 한다. 하느님의 법은 구원을 위한, 영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죄, 율법, 죽음에서 해방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순종하고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자유인이 된다. 하느님이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면서 살 때 진정 자유인이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법은 악에로 기우는 경향에 있는 우리에게 선을 명하고 악을 피하려는 의욕을 주며, 그것에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된다.

 

3. 죄와 양심에 대한 규범(=법)

 

1) 규범의 종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인간이 잘 살도록 하는 생활의 규범을 주셨다. 이 규범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객관적 규범으로서의 도덕률과 주관적 규범으로서의 양심이다.

 

가) 객관적 규범:   하느님의 법은 모든 법의 원천이 되고 모든 교회법과 국법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하느님의 법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창조와 함께 인간에게 주어진 법으로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자연 도덕률과 계시를 통해 공포된 신적 실정법(사랑의 법)을 '신법'이라고 하며, 인간들이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공동선 때문에 공동체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한 것을 ‘인정법’이라고 한다. 인정법은 신법을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으로서 시민법, 교회법 등이 이에 속한다.

 

인정법이 공동선을 위한 올바른 법률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즉 신법에 위배되지 않고, 공동선에 분명히 기여하며, 평범한 인간이라면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규범은 법을 지키는 사람의 양심을 구속하며 윤리적 의무를 지운다. 윤리적 의무는 법을 준수할 의무와 법을 위반했을 때 벌을 받아야 할 책임이 따른다. 결국 이 규범은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하며 살도록 주어진 것이다.

 

나) 주관적 규범:   양심은 법을 준수하는 자에게만 소속된다. 그리고 인간이 행한 행위나 행하려는 행위 중 어떤 것이 자신에게 선이 되고 악이 되는지 혹은 선이었는지 악이었는지를 실제적으로 판가름하는 힘을 말한다. 이러한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방이며, 하느님과 함께 있는 지성소(최고의 거룩한 곳: 하느님의 처소라고 함)이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다. 인간은 자기 양심을 통해서 하느님의 법을 깨닫고 인정하며 자기 양심을 따라 삶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된다.

 

양심은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라고 했다. 하느님의 음성은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행하며 악을 피하라고 인간을 타이른다.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양심에 순종해야 하며 남에게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양심과 인정법이 상충될 경우에는 ‘양심’이 우선해야 한다(예, 양심선언). 남을 이기기는 쉬워도 나를 이기기는 어렵다는 말은 '양심' 때문일 것이다.

"자기 양심이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일 지언정, 하느님만은 속이지 못함을 명심해야 한다." -양심의 가책이 생기는 이유는?

 

다) 죄:   죄란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과 욕심으로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여 하느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잊고 죄를 범한다. 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분의 계명과 질서와 조화를 깨뜨리며 그분과 같아지려는 것이다(창세기의 아담과 에와의 행동). 그래서 하느님이 아닌 피조물이나 그 이외의 것에 자신을 맡기게 되고 이웃과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 따라서 하느님께 대한 마음의 자세(내적 의향)와 그분의 뜻을 따르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선택(외적 행동)이 죄에 있어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죄는 하느님의 법을 거스르는 행위가 그릇된 줄 알면서도 자유로이 의도적으로 행하는 경우에 성립된다.

 

죄는 원죄와 본죄로 나눈다. 원죄는 원조 아담에 의한 죄로서 인간 개개인에게 전해 내려온다. 세례성사로써 이 원죄는 사해진다. 본죄는 본성의 결함으로 많은 악한 행위가 흘러나와 스스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보통 죄라고 하는 것). 본죄는 소죄와 대죄로 구분된다. 소죄는 하느님을 등지지는 않지만 은총을 더럽히는 죄이다. 소죄는 용서받을 만한 죄로서 고해성사 없이 참회나 영성체로 사해진다. 그러나 하느님의 더 큰 자비를 받기 위해서는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 좋다. 대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거슬러 내려진 선택으로서 생명의 은총을 막는, 즉 죽음에 이르는 죄이다. 이 죄는 하느님과 관계를 끊는 것이기 때문에 영생을 얻는 데 장애가 된다. 이 죄는 하느님을 등지고 은총을 파괴하기에 기필코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죄의 근원은 대죄의 주 원인이 된다. 그것은 '칠죄종'이라고 한다. 교만, 인색(탐욕), 음행, 탐식, 분노, 질투, 나태 등으로써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를 7가지로 요약해서 말한다.

죄의 결과는 생명의 은총을 막아 버리고,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고, 선행에 대한 공로가 없어지고 천국의 영복을 누릴 자격을 상실하고 벌을 받게 된다.

 

2) 요약 및 우리의 자세

하느님의 법은 영원하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인간 생활의 최고 규범이다. 이 하느님의 법은 양심을 통하여 알려지기에(양심이 하느님의 법은 아니다) 우리는 양심이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언제나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해 나가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돌보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당신의 나라와 평화가 이 세상에 세워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결함투성이다. 하느님 측에서는 아무 잘못이 없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는 하느님의 자유와는 다르다. 인간의 자유는 남용될 수 있는 자유이며,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 무시당할 수 있는 자유이다. 인간의 이러한 잘못된 자유, 즉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당신 자비로 축복을 주시고자 인간을 계속 부르신다. 죄의 결과로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잃었고 낙원에서 몰려났으며 인간은 거듭되는 죄에 빠졌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드님까지 보내 주셔서 세상의 죄를 없애고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셨다.

 

이로써 인간은 영생의 길을 확보하게 되었다. 죄가 자유에서 나온 것처럼 하느님의 거듭되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도 자유에서 나온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결단의 표시로는 회개가 필요하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골고루 미쳐 있다. 하느님과의 사랑을 유지하는 길은 하느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는 데 있다.  이것은 바로 규범이 있는 이유가 된다고 하겠다.

 

"유혹 자체는 죄가 되지 않지만, 유혹에 빠지면 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죄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와 성사 생활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죄의 기회는 '유혹'에서 비롯된다."

 

죄의 근원이요 근본인 '칠죄종'에 대하여

 

1 )교만

교만은 남을 무시하고 절대 진리를 거부하는 것. 교만한 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불신의 근원이 된다. 겸손과 반대됨.

2) 탐욕

  (인색)

재물에 대한 지나친 애착, 재물에 대한 낭비 등을 말하며 관대함과 아량에 반대된다.

3) 음행

성적 쾌락의 무질서에서 오는 죄이다. 모든 비합법적인 이성 관계를 말한다. 순결에 반대된다.

4) 분노

복수 하고 자하는 무질서한 욕망이다. 지나친 감정 폭발에서 오는 죄이다. 온유와 인내에 반대된다.

5) 질투

남이 잘 되는 것을 자신의 손상으로 착각해서 싫어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남이 잘 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것인 양 기뻐하는 것도 질투의 일종이다. 관대함과 반대된다.

6) 탐식

음식에 대한 무절제를 말하는데, 과음과 과식으로 건강에 해를 주는 경우이다. 절제와 반대된다.

7) 나태

  (태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싫어하는 게으름을 뜻한다. 근면과 반대된다. 교회의 사명을 게을리 하면 죄가 성립된다.

 

죄의 유혹

 

1) 외적 요인

마귀와 세속 (마귀는 인간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방해한다. 성서 상에서는 악의 세력으로 나타난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이기에 인간에게 직접 적으러 나타나지 않고 인간의 오관과 상상으로 유혹한다. 그래서 실제적인 유혹자는 세상이다.)

2) 내적 요인

육신(정신과 구분하는 의미에서의 육신이 아니라 정신과 반대되는 육신으로서의 나약성 및 한계성을 말한다.)

 

 죄의 극복 - 회개인데, 회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준다. 회개는 고해성사가 중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