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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리 & 영성

그리스도인의 생활(Ⅰ) 2 덕행에 대하여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24.

 

 

II. 덕행에 대하여

 

1. 덕이란

 

우리는 덕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덕을 쌓아라, 덕을 닦아라, 덕이 있다, 덕망이 있다 등의 말을 한다. 그러나 덕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덕은 버릇, 습관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반대는 악습이다. 따라서 덕행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습관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습관적으로 선행을 계속하는 사람을 덕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습관은 같은 행동을 계속해서 함으로써 생긴다. 그래서 습관을 제2의 천성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덕은 악습을 고치고 좋은 습관을 닦는 것이다. 이러한 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느님을 위해 덕을 행하는 ‘향주덕’과 사람을 위해 덕을 행하는 ‘윤리덕’이 있다.

 

2. 향주덕 - 향주삼덕

 

이 덕은 하느님을 위해 무엇이나 선을 행해 보려는 덕으로써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덕이라고 해서 '향주덕'이라고 한다. 이 덕은 사람의 본능으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되는 덕행이므로 '초성 덕행'이라고도 한다. 초성 덕행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께 순종하는 뜻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생활하는 덕행이다. 사람의 본성을 초월한다고 해서 ‘초성이라 한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3가지 덕, 즉 신덕, 망덕, 애덕이 있는데, 이를 ‘향주삼덕’이라고 한다(가톨릭 기도서, 저녁기도에 들어 있음).이 삼덕을 대신덕, 초자연적 덕이라고도 한다. 윤리 도덕을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이라고 한다면 이 삼덕은 신자로서  가져야 할 덕이라고 하겠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덕을 닦을 의무가 있다.

 

◈ 자연덕과 초자연덕은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자연덕은 초자연덕의 기초가 되며 자연덕을 소홀히 하면 초자연덕을 닦을 수가 없다.

 

1) 신. 망. 애의 생활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상으로 은총을 주시고,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서 믿음, 희망,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 삼덕은 세례성사로써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다. 이 덕을 한번 받음으로 영구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기에 계속해서 닦아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삼덕을 자주 바침으로써(삼덕송) 내 안에 믿음, 희망, 사랑의 덕이 깊어 갈 것이다.

 

2) 신덕(송)

이 덕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믿음'인 것이다. 교회가 선포하는 믿을 교리를 믿는 것이다. 믿지 않을 때는 이단으로 단정된다. 믿음의 덕을 '신덕'이라고 한다. 신덕에 어긋나는 행위는 의심, 불신, 배교하는 행위이다. 신덕의 핵심은 '사도신경'이다.

 

믿음이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다하는 응답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일상생활의 신용거래, 우정 간의 믿음과는 전혀 다르다. 그 믿음은 결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에게 전 인생을 걸듯이 우리가 하느님께 전 인생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전생애, 사후의 삶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을 통틀어 바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의 근거는 하느님은 진리자체이시고 진실하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인간을 사랑하셨고, 또 사랑하기에 인간을 구원하시며, 약속하신 바를 이루어 주시는 진실하시고 성실하심에 우리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행하기 위해서는 성사생활, 기도, 성서공부, 신심 생활 등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신덕은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아는 지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동으로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선물인 신앙은 우리의 노력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희망과 사랑이 함께 해야 한다(지적, 의지, 사랑의 행위). 히브리서 11,1-3을 낭독.

 

향주삼덕 중에서 제일 필요한 덕은 믿음 즉 신덕이다. 믿음의 대상은 하느님께서 성서와 성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것을 축소한 것이 '사도신경'이다.  믿음의 3요소는 기도, 봉사, 공부이다.

 

3) 망덕(송)

망덕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바라고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 속에서 살아간다. 현실이 아무리 암담해도 인간은 막연하나마 어떤 바램을 갖는다. 그러한 바램, 기대가 없다면 인간은 자포자기에 빠지게 된다. 끝내 아무 희망 없는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희망이 없는 삶에는 보람도 가치도 없다. 우리의 희망은 무엇인가 ? 만일 희망이 없다면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믿는다고 함은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우리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 희망은 믿음 즉 신앙에서 나온다. 우리에게는 신앙이 있기에 인간적인 실패에서 오는 패망과는 다르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희망은 추상적이고 공허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 영생, 영복, 현세 안에서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구체적인 것이다. 우리 신앙인은 영원한 행복의 나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대한 기대를 희망으로 살아간다.

 

망덕은 신덕이 제시하는 영생의 결과이다. 하느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이다. 그러므로 신덕이 있으면 자연히 망덕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망덕이 없는 신덕은 아무 의미가 없는 신앙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이다. 그래서 신앙인은 희망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천국은 우리의 유일한 삶의 희망이다. 지옥은 절망의 세계이다. 망덕을 거스르는 행위는 실망하는 것이고 자신의 노력 없이 지나치게 바라는 과망이다.

 

실망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속단을 내리는 것이고, 과망은 자신의 노력 없이 구원을 얻으려는 방종하는 행위이다. 로마 8,24-25; 마태오 24,36-25,45의 말씀을 낭독.

 

신덕과 망덕은 천국에 가면 자연히 없어진다. 천국에서 하느님과의 상봉으로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로지 남는 것은 '애덕'만이 남는다. 삼덕 중에서 제일 귀중하고 중요한 덕은 '애덕'이다.  망덕은 특히 죄로 인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앞에 두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구원의 필수 조건이다.

 

4) 애덕(송)

애덕은 하느님을 최대로 사랑하고 또 남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애덕은 신덕과 망덕의 결과이며 모든 덕의 중심이고 완성이다. 신덕과 망덕은 나그네살이에서 필요한 덕이고 애덕은 본고향의 덕으로 영원히 남아 있다. 삼덕의 종착역이 애덕이다. 애덕이 없다면 신덕도 망덕도 죽은 것에 불과하다(1고린토 13장).

 

사랑은 그리스도의 기본 사상이다. 사랑의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남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사랑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을 말한다.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참여하는 인간의 완성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마태오 22,37-40).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은 좋아하는 사람끼리만 사랑하는 그런 평범한 사랑이 아니라 원까지도 사랑하는 초월적인 사랑이다(마태오 7장).

 

하느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그 극치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외아들의 목숨까지 내놓으셨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과거에 우리를 사랑하셨던 분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자녀답게 늘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생활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해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하겠다는 말은 모순이 아닌가.  애덕의 실천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고 자선 행위를 하고(애긍시사) 형제들이 잘못했을 때 형제적인 충고를 해야 하는 등이다. 애덕을 거스르는 행위는 남을 미워하고, 악한 표양을 주며(마태오 18,6-7),범죄로 유도하며, 범죄의 협력 등이다. 우리 신자들은 나쁜 영화나 나쁜 서적을 만들 수 없고 윤리 도덕에 어긋나는 모든 사회사업에 참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5) 종합 및 우리의 생활

이상과 같은 삼덕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근본적인 태도이며 생활 자세이다. 인간의 삶이란 신의(믿음), 바램(희망),그리고 사랑함으로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인간 사회에 믿음, 소망, 사랑이 없다면 그 사회는 암흑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한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불신하고 있다면 그 가정은 이미 가정이 아니라 불신의 집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서로가 믿는 가운데 앞날의 희망이 있고 사랑으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망애는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믿음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희망은 참사랑을 낳는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의 반려자로 부르셨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함으로써 진실하신 하느님의 약속하신 구원의 은총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신망애 삼덕은 우리 신앙인의 길이요 행동이다. 믿음을 뿌리로 하고 희망의 줄기와 가지로 그리스도와 한 나무  가 되어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바로 우리의 생활인 것이다.

 

신덕 < 망덕 < 애덕 < 하느님

 

3. 윤리덕 - 본성 덕행

 

윤리덕은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기에 본성 덕행이라고 한다. 본성 덕행은 사람의 본성으로 양심에 따라 선을 행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본능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본성 덕행은 신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많이 볼 수 있는 덕행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옳게 살도록 이끌어 주는 윤리 도덕의 기본적인 4가지 덕이 있는데, 이를  '사추덕' 이라고 한다.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이 그것이다.

 

◆ 지덕 :  매사에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인간이 윤리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선과 악을 식별하고 행동의 동기를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 의덕 :  윤리 행위의 기본이 된다. 모든 것을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의덕은 하느님의 계명에도 윤리의 기본이고 성서도 가르친다(마태오 5, 23-24 ; 하느님은 불의한자의 제물은 받으시지 않는다는 가르침). 이 의덕에 속하는 것은 교환정의(공평한 교환), 법적 정의(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법에 순응: 국방의 의무 등), 분배 정의(편파적인 분배를 배제) 등이다.

◆ 용덕 :  사리에 맞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여 실천하는 습관을 말한다. 그 내용은 담대함, 관대함, 인내함, 항구심이다. 용덕에 반대되는 것은 만용이다. 그리고 대담하지 못한 담소이다.

◆ 절덕 :  윤리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릇된 욕망을 절제하는 좋은 습관이다. 식욕, 성욕, 명예욕 등을 절제하는 습관인 것이다. 무절제한 생활을 피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좋은 습관을 '절덕'이라고 한다. 이 절덕을 '덕재중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 신분과 지위에 맞는 지식과 덕망을  기르기 위해서 언제나 인간은 절제의 미덕을 닦아야 한다.

 

이상과 같은 윤리덕은 우리를 완덕에로 이끈다. 마태오 5,48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닮아 가는 것이 우리의 완덕이다.

 

4. 복음삼덕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실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데 있어 삼구(육신: 욕정, 세속: 그릇된 사상과 풍조, 악의 세력: 유혹과 마귀)가 온갖 유혹을 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 삼구를 이기는 최상의 방법은 청빈, 정결, 순명 즉 '복음삼덕'인 것이다(이 덕대로 살겠다고 서약한 사람을 수도자라 한다).

 

이 삼덕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실천하시고 가르쳐주셨기에 '복음적 권고'라고도 한다. 이 덕은 향주삼덕과 윤리덕을 초월하는 더 깊고 귀한 덕이다. 이 덕은 일반 신자가 아닌 특정한 사람들이 지킨다고 할 수 있겠다. 수도자들이 복음삼덕을 통해서 완덕을 닦는데 필요한 덕이다.

 

◆ 청빈(가난):  가난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재산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모든 앞날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리는 삶이다. 그래서 수도자는 개인적인 재산이나 사유권을 가지지 않는다. 마태오 5,3; 마르코 10,21; 10,23; 야고 2,5 등을 참조.

◆ 정결(정덕):  모든 육욕을 끊어 버리는 삶이다. 독신생활을 통해서 남녀의 성관계에서 오는 모든 쾌락을 포기하는 삶이다. 육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하느님을 위해 포기하는 귀한 삶이라는 뜻이다. 마태오 5,8; 5,28; 1고린토 6,13-20; 1 테살로니카 4,4-5 등을 참조.

◆ 순명(순종):  자신의 의사나 개인 주관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하느님에게 순종하는 삶은 곧 교회에 순종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수도장상들에게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요한 6,38; 4,34; 마르 14,36 등을 참조.

 

복음삼덕은 결과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소유권의 본능을 버리는 것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포기하는 것이고 자신의 자유의사마저 내어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자의 삶은 가장 거룩하고 하느님을 위해서 깡그리 봉헌된 고귀한 삶이다. 그래서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 닦는 덕이 아니고 특별히 선택된 수도자들이 닦는 덕이다.

 

수도자의 삶은 이 세상은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모든 세속적인 욕망이나 명예, 재산을 버리는 삶이다. 수도 생활은 포기를 위한 포기가 아니라 더 큰 가치를 위해서 상대적인 가치를 희생하는 것이다. 즉 영원한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서 지나가는 잠정적인 사랑은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 생활은 절대 가치의 삶이라고 할 수 있고 수도자는 절대적인 가치의 소유자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5. 기타 덕에로의 생활

 

1) 참된 행복(산상수훈: 마태오 5,3-12 ; 진복팔단이라고도 함)

마태오 복음서에 나타난 8가지 행복론은 하느님 나라의 법이요, 우리의 믿음이며 희망이다. 복음삼덕으로 하느님 나라의 법을 따르며 8가지 행복을 증거한 사람들이 '성인들'이다(에페 4,22-24). 이 행복론에 관해서는 초대받은 당신(교리서)과 참된 행복(크리스챤 출판사,정대식 신부 역)을 참조하라.

 

2) 성령칠은과 열매를 얻는 생활

◆ 칠은: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은혜를 얻는 생활.

◆ 열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의 생활(갈라 5,22).

 

3) 덕에로 나아가기 위한 실행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며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서 하느님의 사랑 가운데 살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우리가 항상 하느님의 은총 중에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고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며 그리스도를 닮기로 애쓰고 무엇이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을 실행해야 한다.

 

● 양심 성찰을 매일 할 것

잘된 것, 잘못된 것을 찾아 반성과 아울러 감사드린다.

● 극기 생활을 할 것

악습을 물리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 고해성사와 지도를

    받을 것

죄 사함과 죄의 악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필요하다.

● 성체를 자주 대해야 한다

성체성사와 성체조배

● 기도 생활을 할 것

입으로만, 기분으로만 기도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 신자가 해야 할 12기도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식사 전.후 기도, 사도신경, 통회의 기도, 삼종기도, 신덕송, 망덕송, 애덕송 등이다.

● 기도 모임에 나갈 것

신심 단체에 들어갈 것.

● 연수회, 피정을

    정기적으로 할 것

본당 공동체, 개인 피정이 있다.

● 이웃사랑을 실천할 것

애덕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