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의 큰 리듬 : 연중시기
공동체를 위한 구조로서 고유시기는 대림 - 성탄, 수난 - 부활의 두축으로 형성되어 있고, 이 두 축은 수난 - 부활을 중심축으로 하고 대림 - 성탄을 예비축으로 하여 성체의 신비를 공동체화시키고 있음을 밝혔다. 고유시기에서 그 지평이 드러난 공동체의 신비는 이제 연중시기에서 그 지평이 확대되어 역사화되고 인격화되고 있다.
이것이 제3단계이다. 3단계과정은 예비 - 중심 - 확대의 순서로 1년을 주기로 순환되며 같은 기준에서 가, 나, 다해로 변화된다. 연중시기 안에도 평일 독서를 같은 주제로 홀수해, 짝수해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6년을 긴주기로 , 1년을 짧은 주기로 하여 성체의 신비를 공동체의 신비로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신앙문화를 미사를 통해 이룩하는 셈이다.
이 제3단계에서 연중시기와 고유시기의 관계는 대림과 성탄의 관계나 수난과 부활의 관계와 같다. 즉 연중시기는 고유시기에 대하여 수난적 기능을 대림적 구조 속에서 수행한다.
고유시기의 큰 리듬은 대림에서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집중되어 있으나 연중 시기의 큰 리듬은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무수한 성인들의 삶에서 성취된 교회의 구원역사에로 확대되어 있다. 성체의 신비가 인격화되고 역사회되어 공동체의 신비로 성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미사에서 성인들의 통공을 신앙으로 고백한다. 여기서 성인은 반드시 시성된 성인들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확히 번역하자면 '성도들의 통공'이다. 즉 모든 신자들의 통공을 말하는 것이다. 성체의 신비를 공동체의 신비로 성취하는 데 참여하는 모든 믿는 이들은 성도들로서 시공을 초월하여 영적인 통공을 이루는 것이다.
고유시기의 리듬은 예수의 리듬이요 역사적 계시의 리듬이며 성체의 리듬이다. 이에 비해 연중시기의 리듬은 교회의 리듬이요 역사적 성취의 리듬이며 공동체의 리듬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연결고리는 성령 강림이다.
34개 주간에 이르는 연중시기의 큰 리듬은 그자체가 대림적 구조로 짜여져 있다. 리듬의 중간에는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24)이 있고 그 끝에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있다. 이같은 구조는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모든 대림적 인물의 대표적 요한 세례자의 그리스도 고백을 구원사적으로 해석하여 전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이 고백은 세상에 파견되어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모든 연중적 공동체의 자의식이다. 세상에 파견된 공동체의 어떠한 성취도 대림적 성격을 벗어날 수는 없다. 이는 또한 기존의 성취를 완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더 이상의 성숙을 포기하는 보수성향으로부터의 자유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에서 그 절정에 이르는 연중적 공동체의 자의식은 공동체 실천의 시각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는 현대의 시대적 징표들, 즉 자유와 진리, 정의와 평화를 인간 내적으로나 사회관계적으로 공동체가 성취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아버지께서 외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어 영원한 사제와 온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십자가 제대 위에서 티없는 평화의 제물로 당신을 봉헌하시어 인류 구원을 이룩하시고 만물을 아버지 친히 다스리게 하시어, 그 영원하고 보편된 나라를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께 바치셨나이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그리스도왕 대축일 감사송 본문). 대림적 처지에 있는 연중적 공동체의 목표는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이며 이는 성탄의 공동체적 성취를 의미한다.
이같은 대림적 구조 속에서 연중적 공동체의 자의식은 수난적 성격을 인격화시켜 표현한다. 성체의 신비가 공동체의 신비로 역사화되어 성취되기까지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무수한 성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랐던 수난적 삶이 있었다.
이들은 요한 세자와 마찬가지로 대림적 처지에서 그리스도를 성취한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인들의 대축일, 축일, 기념일을 지냄으로써 이들의 삶에서 내면화되고 인격화된 십자가의 수난을 수난 = 부활의 차원에서 선포한다.
성인들의 인격 안에 성취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교회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선포하는 이유는 이를 공동체화 시켜 하느님 나라의 신비로 성취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른 바 성인현상은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신비로 성취하고자 하는 데 현실적인 구원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회가 남녀 성인들의 축일에 이들의 전구(기도의 지향을 전달해 줌)를 바라는 의미이다. 이들은 교회가 성취해야 할 바를 앞당겨서 성취함으로써 교회에 살아있는 지표가 되고 있다. 교회는 성인현상의 영향력 하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저희는 이 위대한 증인에게서 힘을 얻고 악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갈 길을 끝까지 달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게 하시나이다."(성인 감사송(1) 본문).
교회의 수많은 남녀 성인들이 받은 카리스마(은사)는 참으로 다양하지만 예외없이 공통적인 현상은 성체의 신비를 중심으로 한 침묵과 공동체의 생활이다. 예수화의 인격적 친교를 이루지 않은 성인은 없으며, 세상을 향해 자기를 비우지 않은 성인은 없다.
성체의 신비를 내면화시키기 위한 침묵 없이 예수와의 인격적 친교는 맺을 수 없으며, 성체의 신비를 세상에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 없이 개인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세상을 향해 자기를 비울 수는 없는 법이다. 이는 예수의 삶에서 직접 연원하는 자기버허의 길이다.
성체의 신비를 중심으로 침묵과 공동체의 순환을 통한 수련은 자기비허의 도에 이르는 수도의 필수과정으로서 수난 - 부활의 신비가 내면화되고 공동체화되는 길이다. 공동체를 이루는 길은, 예수 자신이 제자 공동체를 이루는 공생활 과정에서 겪었듯이, 수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다.
침묵은, 예수 자신이 공생활 중에서도 새벽이건 반드시 제자들로 부터 떨어져 나와 혼자서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듯이, 이 수난의 길에서 부활의 영광을 감지하고 십자가의 길에서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은총을 깨닫는 수련방식이다.
침묵과 공동체의 순환을 통한 자기비허(卑虛: Kenosis)의 은사들은 성인들을 통해 교회의 2천년 역사 안에서 참으로 다양하게 나타났으므로 세밀하게 분류된 18개의 특별 감사송으로 모두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는 성인들의 축일에 대축일 - 축일 - 기념일의 3등급을 정하고 감사송 뿐만 아니라 입당송, 대영광송, 본기도, 독서, 화답송, 복음환호송(알렐루야), 복음, 신앙고백, 봉헌기도, 영성체송, 및 영성체 후 기도 등 미사의 작은 리듬들을 모두 동원하여 성인들의 삶에서 선취된 은사들을 교회 공동체들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은사의 등급에 따라 대영광송, 신앙고백은 그 유무가 결정되고 나머지 내용만 달라지며 특별한 경우에는 강론도 활용한다.
공동체를 위한 구조로서 미사의 큰 리듬은 삼박자 못지 않게 이토록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그러므로 미사는 한 시간짜리 구경거리가 아니라 짧게는 1년, 길게는 6년의 순환주기를 지니고 크고 작은 리듬들과 박자들로 이루어지는 정교한 신앙문화의 탁월한 표현양식이다. 미사는 '보는 구경거리' 가 아니라 '이룩하는 문화' 인 것이다.
미사 안에는 무엇보다도 성체의 신비가 공동체의 신비로 증폭되는 거룩한 변화가 있다. 공동체화하지 않는 거룩한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관객의 흥미조차 잃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미사의 리듬과 박자는 거룩한 변화의 리듬과 박자요 그것은 예수를 기준으로 한 인간의 리듬과 박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리듬과 박자는 살아있으며 살아있기 때문에 공동체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만 인간으로서 살 수 있다.
이를 우리는 교회라고 부른다. 미사는 교회를 교회답게 변화시키고 세상을 교회적으로 변화시키는 문화적 조건이며 따라서 가장 교회적인 실재인 것이다.
문제는 미사를 살아있게 하는 데 있다. 교회의 삶에서 미사의 리듬이 생동감있게 흐르고 미사의 박자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미사는 언제까지나 문화이기를 포기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미사를 살아있게 할 것인가? 그 관건은 미사의 큰 리듬인 고유시기와 연중시기의 연결고리인 성령강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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