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지혜
실상 우리는 죄의 세력 하에 있으며 이 죄는 우리 마음을 물들이고 사회 전체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에서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자신의 이러한 사랑을 계시하셨고 이 계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가져 온 십자가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자기비허(卑虛: Kenosis)에 이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믿음이 없이는 - 신비의 길이든 혁명의 길이든 -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로마 3,26), "온갖 신비를 꿰뚫어본다 하더라도"(1코린 13,2-3) 자기비허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 이다. 이 십자가의 믿음이 사람을 구원하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 믿음을 사는 이들의 성령의 힘으로 한데 모으시어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백성을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으로 새로이 창조하심으로써 사람들을 소외된 처지로부터 구원하고자 하신다. 십자가의 진리는 자기비허의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살아있는 진리로 세상에 계시된다.
따라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가 자기비허(卑虛: Kenosis)의 믿음을 저버리거나 소외된 처지에 놓은 세상이 이 자기비허의 교회를 저버린다면, 하느님의 자비로운 구원 은총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물론 교회까지 더욱 더 심한 소외에 빠지고 마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참조 : 로마 2,1-11).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온 삶이 자기비허의 믿음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삶이 호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가 자기비허의 경지를 향산 회심과 투신의 리듬으로서 이루어지는 삶의 호흡이 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란 기도가 영적 감각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지성과 의지로써 자기버허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에, 감성으로써는 이 자기비허적 삶의 현상의 배후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느끼고 보고는 안목과 감각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감각의 흐름 속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올바로 기도할 수 있게 된다. 즉 영적 감각은 삶의 호흡인 기도를 자연스럽게 한다. 회심과 투신의 균형과 그전환이 마치 들숨 - 날숨의 균형과 전환처럼 자연스러우면 이 감각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마음과 세상을 조정하는 죄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이 감각이 마비되어 있다면 우리의 삶은 부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말미암아 병들고 말 것이다. 요컨대 기도가 삶의 호흡으로서 자연스러우려면 영적 감각이 살아있어야 하며, 영적 감각이 살아있게 하려면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하고, 성신의 이끄심을 받으려면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철두철미한 바탕을 두어야 한다.
세속적인 동기를 벗어나서 오직 믿음으로 움직이는 삶은 "이웃을 위해서 모든 재산을 내놓은 심지어 불 속에까지 뛰어든다 하더라도" 이미 자기의 행동이 아니라 은총의 역사로 접어드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와 사도 바오로의 삶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참조 : 루카 1,38;1 코린 15,10).
그리스도를 둘러싼 마리아와 바오로의 면모는 매우 대조적이다. 결코 자신을 드러냄 없이 그러나 예수의 온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마리아의 침묵과, 박해자의 처지에서 극적으로 개종하여 지칠 줄 모르는 선교활동으로 교회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바오로의 정열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러나 인간적으로 뚜렷이 대조되는 면모에도 불구하고 실상 중요한 것은 두 경우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총의 삶이었다는 사실이다(참조 : 루카 1,28. 45; 로마 4,22;5,1-2). 오직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예수를 추종한 마리아와 바오로의 삶은 교회를 통하여 모든 신앙인의 사표로서 변함없이 공경받고 있다 - 바로 믿음의 삶 때문에.
마리아의 침묵과 바오로의 정열 사이에서 우리의 삶도 성령의 이끄심으로 은총의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기도할 때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영적 감각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영적 감각이 살아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의 전통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노력에도 일정한 과정과 단계가 있다. 기도의 과정은 크게 염경과 묵상으로 나누며 묵상은 그 경지가 명상과 관상으로 올라간다. 또한 준비과정 역시 일정한 단계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설명의 편의상 준비과정까지 포함시켜 기도가 수행되는 8단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제1단계는 수계로서 죄를 피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육체의 무질서에서 벗어나 우리 몸이 죄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자기비허의 믿음에 따른 애덕의 실천으로써 우리 몸이 '하느님의 의의 도구가 되도록' (로마 6,13) 하는 것이다.
제2단계는 수심으로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죄의 뿌리는마음에 있다(참조 : 마르 7,20-22; 로마 1,29-31). 마음의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자기 마음을 비우는 것이 수심이다.
제3단계는 좌법으로서 기도의 자세를 말한다. 무릎을 꿇거나 의자에 앉아서 혹은 일어서서도 기도할 수 있겠으나 통상의 자세는 바닥에 앉는 것이다. 경건한 자세에서 경건한 마음이 유지된다. 올바로 기도하기 위해 올바른 자세는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무릎을 움추린 편안한 자세가 좋다. 등을 기대지 말고 곧추 펴며 눈은 살며시 감고 두 손은 자연스럽게 합장을 하거나 무릎 위에 모은다.
제4단계는 조직으로서 호흡을 가다듬는 단계이다. 기도에 있어서 호흡은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기본 단위이다. 들숨과 날숨이 거칠지 않고 들이마시는 시간과 내쉬는 시간의 길이가 같도록 하고 가능한 이 길이가 길어지도록 해야 한다. 가슴이 아니라 아랫배를 이용하여 호흡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신을 집중하여 호흡을 최대한 안정시키려는 노력은 불필요한 잡념과 분심을 막아준다.
제5단계는 염경으로서 기도문의 의미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성을 기울여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함으로써 육체의 외적인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미각, 후각, 촉각)으로부터 벗어나 기도문의 의미가 지시하는 내적 감각에 대한 감을 잡는다. 내적 감각은 의미에 대한 1차적 감각이다. 분심과 잡념은 이 감을 놓치게 만든다.
제6단계는 묵상으로서 염경 단계에서 얻어진 감의 흐름에 집중하는 것이다. 눈을 완전히, 혹은 반쯤 감고 의식을 양 눈썹의 한가운데로 집중하면서 염경에서 얻을 수 있는 의미 중에 하나만을 선택하여 그 의미가 마음 안에서 일으키는 파동의 흐름을 본다.
제7단계는 명상의 단계로서 이 의미의 흐름 속에 마음을 내맡겨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이 경지에서는 마음이 걸러지고 깨끗해져서 때론 황홀감이나 경이감에 젖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미 육체의 긴장이 풀어져서 자신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제8단계는 관상인데 이는 명상의 깊이가 깊어져서 무아지경이 되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꿰뚫어보는 지복직관(至福直觀 라틴어: Visio beatifica 영어: beatific Vision)의 경지이다. 이는 의지로써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고 처음부터 7단계까지 오직 믿음으로 정성껏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은총으로써만 가능하다.
제1단계에서 얻어지는 애덕실천의 체험은 묵상 이후 단계의 소재가 된다. 제6 4단계에서는 자기버허의 십자가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의지적으로 생겨난다. 제7단계에서는 적어도 십자가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내적 죽음, 즉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수락이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제8단계의 경지에서는 십자가와 하나가 되어 내적 부활을 관조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8단계의 과정은 설명의 편이상 단계화시켰을 뿐 실제로는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으며 동시에 겹쳐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 과정은 회심의 영역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투신의 영역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은 외적 감각의 일방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내적 감각에 눈을 돌려 내외감각의 평형을 이룩한다. 그리고 이 균형 위에서 영적 감각에 따라 자기비허의 내적 죽음에로 집중한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자기비허의 십자가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관조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삶에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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