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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미술산책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8) 귀스타브 도레와 ‘카인과 아벨’

by 파스칼바이런 2014. 4. 30.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8) 귀스타브 도레와 ‘카인과 아벨’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모습 투영

정교한 선 세밀한 터치에서 비롯되는 ‘생생한 묘사력’

고흐가 ‘최고의 민중화가’로 극찬할 만큼 뛰어난 재능

카인-아벨 상반된 번제물 연기, ‘성경의 시각적 재해석’

 

 

폴 귀스타브 도레(Paul Gustave Dore, 1832~1883)는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한 프랑스의 화가이자 뛰어난 삽화가이다. 별다른 미술교육을 받지도 않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으며, 열 살에 이미 사회 풍속을 주제로 한 삽화를 그려낼 정도였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주간신문 <르 주르날 뿌르 리르(Le journal pour lire)>의 삽화가로 활동을 시작하며 미술계를 놀라게 했는데, 시인 테오필 고티에는 그를 천재소년이라 불렀다.

 

1854년에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삽화를 그리면서 도레는 큰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얻게 됐고, 이후 성경을 비롯해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Orlando Furioso)>,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 그리고 라블레, 바이런, 페로,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위고, 발자크, 에드가 포우 등 수많은 문학가들의 작품에 삽화를 그렸다. 그는 유화, 수채화, 판화, 조각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으며, 51년 동안 1만 점 이상이라는 방대한 양의 판화를 제작하였는데 그의 작품이 실린 책은 220권이 넘는다.

 

정교한 선과 세밀한 터치에서 비롯된 생생한 묘사력과 뛰어난 상상력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는 귀스타브 도레의 천재성은, 반 고흐로 하여금 그를 ‘최고의 민중화가’로 극찬하게 했으며, 피카소 역시 도레의 예술적 재능에 매혹됐다고 한다. 도레의 작품은 서양미술사의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상상력을 중시하는 현대 미술과 영화, 그리고 일러스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를 기념하는 최초의 회고전이 현재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도레는 1866년 장 자크 부라세(Jean-Jacques Bourasse) 신부가 새로 번역한 불가타 성경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맡았는데, <카인과 아벨>은 여기에 수록된 265개의 작품 중 하나이다. 삽화가 든 이 성경은 유럽 각지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미국에서도 발행되기에 이르러, 도레의 유명세는 전 세계적인 것이 됐고, 그의 이름은 그리스도교 미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확고한 위치를 얻게 됐다.

 

<카인과 아벨>은 양치기가 된 아벨과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된 카인이 주님께 제물을 바치는 이야기(창세 4.1-8)를 그리고 있다. 동생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그리고 형 카인은 땅의 소출을 각각 제물로 불사르는 장면인데, 화면에 크게 그려진 카인은 어찌된 일인지 제물을 바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그의 동생을 바라보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모습이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아벨의 번제물 연기와는 대조적으로 땅 아래로 스멀스멀 흘러내리는 카인의 번제물 연기는, 주님께서 카인의 제물을 굽어보지 않으셨다는 성경 내용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 양치기가 된 아벨과 농부가 된 카인이 주님께 제물을 바치는 이야기

(창세 4.1-8)를 그린 ‘카인과 아벨’.

 

 

이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카인이 어서 정신을 차리고 번제물 바치는 일에 다시 정성을 기울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남과의 쓸데없는 비교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카인은 불끈 주먹 쥔 손으로 무언가 어두운 계획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쳐다보는 아벨과 달리, 카인의 벌거벗은 몸은 육신과 현세의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주님의 준엄한 꾸짖음에 카인은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행위로 대답하고 만다.

 

도레는 <아벨의 죽음>도 판화로 제작했는데, 어스름한 달밤, 황량한 벌판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 정확한 소묘력과 작품의 극적인 구도, 그리고 빛과 어두움의 대비는 성경의 의미가 뚜렷이 드러나게 하는 조명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두고두고 간직하고픈 성화가 되어있다.

 

▲ 아벨의 죽음.

 

 

 

조수정 교수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