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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미술산책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1) 피에트로 안니고니와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

by 파스칼바이런 2014. 6. 20.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피에트로 안니고니와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 (11)

 

 

세상 어둠에서 인류 구해낸 영웅적 모습의 성모

산업화된 세상 비상하는 비둘기 등 ‘불안’ ‘희망’ 혼재

성모에 안겨 잠든 어린 아기, 인간을 대표하는 종족 상징

‘타임’지에 국제적 인물들 그린 작가… 종교미술계서도 거장

 

발행일 : 2014-06-15 [제2899호, 14면]

 

 

▲ 피에트로 안니고니.

 

1970년 2월 27일 <동아일보> 4면에는 젊은 엘리자베스 2세(Queen Elizabeth II) 영국 여왕의 초상을 그렸던 안니고니의 기사가 실려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피에트로 안니고니(Pietro Annigoni, 1910~1988)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들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타임(TIME)지(誌)의 제안을 받아 겉표지에 교황 요한 23세(Pope John XXIII)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Kennedy)의 초상을 제작하기도 했던 그는 영국 왕족들과 이태리 신발장인(匠人)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여주인공 줄리 앤드류스(Julie Andrews)와 독일 경제학자이자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룬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수상(首相) 등 국제적인 인물들을 그린 초상화가로 기억된다.

 

▲ 헤이스에 소재한 성모성심 성당.

 

하지만 르네상스 거장들의 영향을 받은 이태리 출신 작가와 관련해 종교미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초상화 이외에도 파도바(Padova)의 성 안토니오 대성당(Basilica of San Antonio) 중앙제대 벽화 같은 다수의 종교미술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몬테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monastery)의 주출입문 위에 그려진 <성 베네딕토의 영광 Glory of St Benedict>(1979)은 그가 제작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었다. 현재 그의 작품 다수는 바티칸 뿐 아니라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는 이탈리아 ‘현대 사실주의 화가들’(Modern Realist Painters) 선언에 참여해 추상미술에 반대했고 20세기 중후반 포스트모던 미술과도 대조되는 작업을 했었다.

 

안니고니는 국제적 명성만큼이나 기존의 틀을 깨는 작품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시도는 영국에 남아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런던 외곽지역인 헤이스(Hayes Middlesex)에 소재한 성모성심 성당의 성모의 그림이다.

 

1961년 새롭게 재건된 이 현대적인 가톨릭 성당에는 주 제단 동쪽 벽에 예수님의 십자고상이 배치되는 대신, 가로 3m 세로 5.5m의 규모로 성모가 그려져 있다. 성모성심 성당인 만큼 이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1962)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성모의 일곱 가지 기쁨과 고통을 상징하는 색유리가 함께 배치돼 있다.

 

▲ 피에트로 안니고니,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The Immaculate Heart of Mary)

1962, 유화, 미들섹스, 런던.

 

복되신 마리아를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여겨지는 이 성모는 성당이 소재한 지역의 이름을 따라서 ‘미들섹스의 마돈나’(Middlesex Madonna)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전형적인 성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 건장한 체구의 성모는 한손으로 어린 아기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자신의 왼쪽 심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화면 하단 왼쪽으로는 공장과 굴뚝, 송전탑 같은 산업화된 세상이 보이고, 성모는 전통적인 그림에서처럼 악의 상징인 뱀을 밟고 있다. 성모의 발아래에는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잘려진 나무, 거기에 간간히 돋아난 싹과 비상하려는 듯 날개 짓하는 하얀 비둘기를 볼 수 있다. 뭔가 불안해 보이는 전조와 희망적인 모티브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작품 안에 가장 평화롭게 감상자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은 바로 성모와 함께 있는 어린 아이이다. 성모에게 얼굴을 묻고 기대어 흠뻑 잠에 취해 있는 이 아이는 누구인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아이는 아기예수가 아니라 인간을 대표하는 종족으로서의 상징적인 아이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수수께끼 같은 이 퍼즐 조각을 맞추면 어떤 드라마틱한 줄거리가 완성될까?

 

우리는 작가의 의도에 가까이 가기 위해 다시 성모에게 집중해야 한다. 폭발하듯 퍼져나간 황금색과 낮은 지평선을 뒤로하고 우뚝 선 성모는 세상의 악과 어둠 속에서 인류를 구해낸 영웅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 영웅적인 성모성심께 무엇을 의탁할 것인가? 누군가는 바다에서 잃어버린 아이들이 저 성모님 품에 있기를, 또 누군가는 몹시도 아픈 이 나라의 치유와 희망을 성모성심께 전구(轉求)할 것이다. “오! 티없이 맑으신 성모 성심이여, 당신의 불타는 사랑 저희에게 보여주소서. 오! 마리아님, 온 인류에게 당신 성심의 불타오름을 내려주소서.”

 

 

최정선 선생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대에 출강 중이며,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