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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124위 순교성지

124위 순교지를 가다 (01) 서소문순교성지

by 파스칼바이런 2014. 7. 19.
124위 순교지를 가자 (01) 서소문순교성지

124위 순교지를 가다 (01) 서소문순교성지

신앙의 꽃 붉게 물든 그곳으로 가다

 

 

‘숨어 있던 꽃’이 드러나고 있다. 오는 8월 시복을 앞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삶과 순교 행적이 시복 절차를 통해 낱낱이 밝혀지면서다. 마치 윤의병(바오로, 1889~1950?) 신부의 「은화」(隱花)를 통해 박해시대 이름 모를 순교자들의 행적이 드러났듯이, 124위의 삶과 믿음살이, 순교 비화도 시복 재판을 통해 우리 교회 공동체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물론 그 행적의 꽃은 ‘순교’다. 순교 현장을 교회 공동체가 순례하게 되는, 순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평화신문은 창간 26주년을 맞아 시복을 앞둔 124위의 순교 현장을 하나하나 돌아본다.

 

 

▲ 늦봄에 화사한 꽃이 피듯 서소문 순교성지도 이제 성역화의 전기를 맞고 있다.

순교자박물관과 경당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 중구 칠패로 5(중구 의주로2가 16-4) 서소문 순교성지는 변함이 없다. 1984년에 세워졌던 서소문 순교 현양탑이 서울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경내 기도동산으로 옮겨지고, 1998~99년에 인천교구 조광호 신부가 제작한 순교 현양탑은 공원 내에서 자리를 옮겨 다시 세워진 것을 제외하곤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서소문 순교성지가 교회 부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와 서울시, 중구 등 국가 부지인 공원이기 때문이다. 수인들 목에 씌우던 칼을 세 개 세우고 부조를 새겨 넣은 순교 현양탑이 세워진 부지 175.21㎡(53평)도 국유지다. 이러니 개발의 여지가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다. 다만 당국의 인ㆍ허가를 받아 공원 내에 순교 현양탑을 세우고 그 앞에 돌 제대를 설치해 미사를 봉헌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을 뿐이다.

 

 

#거룩한 순교의 땅

 

그렇지만 이제 서소문 순교성지는 순교 성인 44위와 시복이 결정된 25위를 배출한 거룩한 순교의 땅답게 성지로서 진면목을 드러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 있다. 6월 23일이면 서울시와 중구 주관으로 서소문 역사공원과 주변의 역사와 문화, 종교적 의미를 드러내는 설계공모 접수가 마무리되고 성지 개발이 그 윤곽을 드러낸다. 현재 국내 285개 설계사와 저명 건축가들이 공모에 참가한 상황이어서 자못 기대가 크다. 일단 2017년 8월까지 3년 4개월간에 걸쳐 5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1만 7344㎡ 부지에 지상공원과 지하 주차장 일부를 활용한 순교자 박물관(3000㎡)과 광장(2000㎡), 경당(120㎡), 공용공간(1500㎡) 등이 들어선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중죄인들, 특히 천주교 신자의 처형장이자 시장으로 기능했던 서소문 역사공원이 명실상부한 순교 성지로 거듭나는 셈이다.

 

124위 중 서소문 밖에서 처형된 순교자는 최창현(요한)ㆍ정약종(아우구스티노)ㆍ정철상(가롤로)ㆍ강완숙(골룸바)ㆍ이경도(가롤로)ㆍ홍익만(안토니오) 등 25위(20.16%)에 이른다. 대부분이 초창기 교회 지도자였다. 관변 기록에 순교지가 서울로만 표기돼 있지만, 경기도 양근의 조숙(베드로)ㆍ권천례(데레사) 동정 부부 또한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교회사학자들의 추정이어서 이들까지 포함하면 27위다. 서소문 순교성지에선 이미 성인이 44위 탄생한 바 있기에 세계적 순교성지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다.

 

 

#순례객 끊이지 않아

 

5월로 접어든 서소문 순교성지는 무척이나 아늑해 보인다. 황금 연휴에 공원을 찾아든 가족 순례자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족끼리 기도와 묵상을 한 뒤 쉼터에서 초여름날을 만끽한다. 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에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눈부시다. 지난해에 7만 2000여 명에 이르는 순례자들이 찾은 서소문 순교성지는 요즘도 여러 교구 본당의 예비신자 교리반은 물론 본당 단체별로, 또는 가족끼리 즐겨찾는 ‘도심 속 순례지’로 떠오르고 있다. 인근 직장인들도 점심 때면 삼삼오오 모여들어 산보를 즐기고 있어 노숙자들로 넘쳐나던 옛 모습은 이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관할 본당인 중림동약현본당(주임 이준성 신부)에서 공원측과 협력해 성지 관리인을 파견해 주변 정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교성지 전시관도 꼭 둘러봐야

 

서소문 순교성지를 이해하는 데 중림동 약현성당에 있는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을 빼놓을 수 없다.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사를 드러내 특화시킨 전시관이어서다. 교회사적 의미와 함께 순교선열들의 빛나는 순교 얼과 발자취도 흠씬 느껴볼 수 있다. 2009년 지상 2층에 건축연면적 562㎡ 크기로 지어진 전시관은 서소문 순교성지의 박해사를 △신유박해(1801) 자료 △기해박해(1839) 자료 △병인박해(1866) 자료 △성모 소제대 △약현성당 발자취 △본당 유물 △본당 화재 유물 △성인 유해 △고 김선영(1898~1974) 신부 유물 등 9개 부분으로 나눠 조명한다.  4대 박해 가운데 병오박해(1846)를 제외한 3대 박해 순교역사가 모두 망라되는 셈이다.

 

이준성 신부는 “오는 8월 시복식을 앞두고 본당 공동체에선 124위 시복을 지향으로 고리기도운동과 성지순례 등을 실시하며 시복을 준비하고 있다”며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면 서소문 순교성지 현양탑 앞에서 성지미사가 봉헌되는 만큼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의 : 02-312-5220, 중림동약현성당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 현재의 서소문 순교현양탑(초가집)에서 바라본 약현성당 전경이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서소문 역사공원 변천 발자취

서울시 중구 의주로2가 16-4 일대 서소문 역사공원과 인근 부지가 조선의 공식 처형지로 등장한 것은 1416년(태종 16년)이다. 개국 초 동대문 밖에서 사형을 집행하던 조정은 ‘사(社, 지신사당)에서 죽인다’는 「서경」 기록을 근거로 서소문 밖을 사형장으로 삼았고, 주로 능지처사나 효수, 사사 등 중죄인들 형장으로 이용됐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는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로서 역사에 등장했다.

 

서소문 밖 순교성지가 도시계획 시설인 공원으로 고시된 것은 1973년 11월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가 고시 제46호를 통해 수산청과시장 일대를 공원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그 수산청과시장이 노량진으로 옮겨가면서 시장 터에 서소문 근린공원이 조성돼 1976년 10월 개장했다. 이 공원에 서소문 순교 현양탑이 세워진 건 1984년 12월로, 순교성인이 44위나 탄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공원에 대규모 재조성사업이 이뤄진 건 1992~1996년인데, 이때 지하 4층 규모 공영주차장과 꽃상가, 부속 기계실 등이 만들어졌다. 또 1996~1999년엔 중구 자원재활용처리장이 추가로 만들어졌고, 최근까지도 몇차례 시설 보강 및 보수공사가 진행됐다. 이어 공원이 지난 1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역사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순교성지로서 위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