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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리 & 영성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영성 산책] <2> 영성 생활의 잘못된 관점

by 파스칼바이런 2016. 3. 2.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영성 산책]

<2> 영성 생활의 잘못된 관점

평화신문 2015. 05. 17발행 [1314호]

 

 

▲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의 공식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한자 표기와 함께 사용된 우리말 ‘영성’(靈性)은 서양말처럼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일반 종교 수행 방법과 혼돈을 피하기 위해 영성 앞에 ‘가톨릭’을 붙여 함께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필자는 금번에 영성 생활과 관련된 글을 준비하면서 ‘가톨릭 영성’이라는 표현을 연재물 제목에 넣어 보았습니다. 여기서 그냥 ‘영성’이라는 단어만 홀로 사용하지 않고 ‘가톨릭’이라는 수식어를 함께 사용했다는 것은 ‘영성’ 앞에 다른 수식어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교를 품고 발전시켰던 서양말 표현보다, 한자 표기와 함께 사용된 우리말 ‘영성’(靈性)이 홀로 사용되었을 때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해서 가톨릭 교회 안에서 공식 용어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서양말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에서 ‘영성’을 뜻하는 ‘Spiritualitas’는 하느님의 영, 즉 성령을 뜻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할 때 표기했던 단어인 ‘Spiritus’와 어근이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말에서는 ‘Spirituality’를 홀로 사용해도 별다른 오해 없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연관이 있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주 최근에는 서양에서도 이 단어를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나 아예 종교적 범위를 넘어서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영성’은 신령 ‘영’(靈)과 성품 ‘성’(性)을 합친 단어로써,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아도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신령하다’라는 말 또한 ‘신기하고 기묘하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므로, 우리말에서 ‘영성’은 서양말처럼 그리스도교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영성’이나 ‘영성 생활’이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이 불과 2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 신앙인은 조금 강제적인 주입식 암기로 그리스도교와 관련 있는 단어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영성’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가톨릭 신앙인은 ‘영성’의 개념을 제대로 알아듣고 ‘영성 생활’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한국인의 심성 바탕에는 무속이 자리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종교이든 자생적으로 발생한 종교이든 아니면 종교와 상관없는 사람이든 무속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비슷한 성향을 나타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통분모를 함께 지니고 있어서인지, 그리스도인도 다른 종교의 수행 방법에 친근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말에서 ‘영성’이라는 단어가 그리스도교적인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데, 그리스도교 영성의 고유한 부분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다른 종교의 수행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쉽사리 받아들이면서 혼합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앙마저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성 생활 안에 다양한 종교의 수행 방법까지 총망라되면서 인간 체험이라는 관점이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인간학과 심리학이 영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으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물론 일부 인간학적인 이해와 심리학적인 해석이 그리스도교 영성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근세 이후 가톨릭 영성가들이 심리학적인 통찰을 영성 생활에 접목하는 데 앞장서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심리학적인 해석의 틀을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그리스도교 영성이 심리학적 결과물의 한 부분으로 축소되어 버리거나 같은 틀을 공유하는 다른 종교와 뒤엉켜 버릴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단어의 개념적인 측면에서나 처한 상황의 분위기 속에서나 우리나라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올바른 영성 생활을 잘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혼돈을 일으키는 요소가 널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필자가 ‘가톨릭’이라는 수식어를 넣은 것은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에 포함되고 개신교와도 구분되는 가톨릭 고유의 영성을 살펴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전영준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1991년 사제 수품(서울대교구)

△2007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 영성신학 박사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