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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리 & 영성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3> 영성 생활의 올바른 관점

by 파스칼바이런 2016. 3. 3.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3> 영성 생활의 올바른 관점

평화신문 2015. 05. 24발행 [1315호]

 

 

▲ ‘신앙 생활’이나 ‘영성 생활’은 모두 영적 여정을 일컫는 말이며 이는 단순한 신비 체험이 아니라 하느님을 굳게 믿는 행위에서 부터 시작돤다. 사진은 묵주를 손에 든 채 기도하는 신자.

 

 

필자는 신앙인들에게 영성을 주제로 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때, 가끔 ‘영성 생활’과 ‘신앙 생활’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높은 차원일 것 같으냐고 질문하곤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수의 신앙인들에게서 ‘영성 생활’이 더 높은 차원일 것이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물론 얼핏 생각해 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 생활이라는 표현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오래전부터 들어오던 말이었고 영성 생활이라는 표현은 최근에 와서야 자주 접하는 말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더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답은 두 용어 모두 다 높고 낮음이 따로 없이 같은 영적 여정을 일컫는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최근에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영성 신학이 폭넓게 알려지게 되면서 덩달아 신앙인들도 영성 생활이라는 표현으로 급속히 바꿔 사용하고 있는 실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용했던 신앙 생활이라는 표현이 영성 생활이라는 표현보다 가톨릭 영성의 영적 여정을 더 잘 드러내 주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말 ‘신앙’(信仰)은 사전에서도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믿고 받드는 일이라고 풀이합니다. 신앙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보더라도 영성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회에서 개신교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교가 신앙 생활이라는 표현을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신앙 생활이라는 표현을 접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보다는 가톨릭 교회에서 더 자주 사용하는 또 다른 표현으로 ‘신심 생활’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간혹 불교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신심’(信心)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종교를 믿는 마음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는 이 용어를 다양한 개념과 합하여 사용하면서 영적 발전을 위한 신앙인의 다양한 노력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예수 성심 신심’ ‘성체 신심’ ‘성모 신심’ ‘성인 공경 신심’ 등의 다양한 표현들을 접해 보셨을 것입니다. 결국, 신앙 생활이나 신심 생활은 믿음의 행위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나타내면서 신앙인의 영적 여정이 단순히 신비스러운 무엇인가를 경험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굳게 믿는 행동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종교적인 실천을 잘 드러내는 용어로는 현재 사용하는 영성 생활보다 차라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즐겨 사용하던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톨릭 신앙인은 하느님의 계시 진리 안에서 삼위일체 신비, 강생의 신비, 성체성사의 신비, 구원의 신비 등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인은 이러한 신비에 참여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초자연적 질서에 머무시는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발전적인 영적 여정을 걷게 됩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을 청하며 하느님께 다가가는 데 장애가 되는 악습은 끊어버리고 도움이 되는 덕행은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면서 역시 영적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이라는 용어가 가톨릭 영성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우리말의 모호함 때문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영성 생활이라는 용어를 우리나라에서만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올바로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가톨릭 교회의 영성 생활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역사와 깊게 관련돼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영적 여정은 여정의 중간 과정이 다소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에 응답하는 데서 출발해 하느님 나라에 참여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데 도착해야만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전영준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1991년 사제 수품(서울대교구)

△2007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 영성신학 박사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