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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리 & 영성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8) 헨리 나웬 신부 ②

by 파스칼바이런 2016. 3. 5.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8) 헨리 나웬 신부 ②

아버지 쏙 빼닮은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보다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6-02-28 [제2983호, 16면]

 

 

비판과 존경 두려움과 사랑…

아버지 대한 이중적 감정들로 갈등

부자 함께 보낸 안식년 은총의 시간

 

 

헨리 나웬 신부

 

‘안식의 여정’을 시작하다

 

헨리 나웬 신부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은 「안식의 여정」(Sabbatical Journey)입니다. 이 책은 후에 보다 넓은 독자층을 위해서 축약본으로 출판돼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 번에 걸쳐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영성을 음미하려 합니다. 이 책은 그와 마찬가지로 라르쉬 새벽 공동체에 속해 있었고 그가 자신의 사후 저작 관리를 생전에 맡길 만큼 신뢰했던 수 모스텔라 수녀에 의해 편집 출간됐습니다. 내용은 그가 안식년 기간 동안 남긴 일기입니다. 물론 그 안식년 기간이 자신이 지상의 삶과 이별을 준비하는 시기가 되리라고 예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심 그는 장수하는 집안 내력을 감안하건데, 아직 긴 날들이 자신에게 남았다고 생각하였고, 그러기에 그는 예순을 넘어 맞이한 이 안식년이 새로운 차원으로 건너가고 자신이 투신하는 소명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그의 마음은 안식년 첫날의 일기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1995년 9월 2일 토요일, 온타리오 주 오크빌: 오늘은 안식년 첫날이다. 흥분되면서도 불안하고, 기대에 부풀면서도 두렵고, 피곤하지만 오만 가지 일을 하려는 의욕이 생긴다. 다가올 한 해가 꽃들이 가득하고 잡초가 무성한 길고 넓은 들판마냥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저 들판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마침내 저 건너편에 도착할 때쯤 나는 무엇을 터득할 것인가?… 자유로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통절하게 느껴 보고, 일찍이 해보지 못했던 기도도 해보는 거다. 지난 아홉 해 동안 마음과 정신 속에 쌓아둔 수많은 체험을 자유로이 글로 써보는 거다. 자유로이 우정을 다지고 사랑하는 참신한 길을 모색하는 거다. 무엇보다 자유로이 하느님의 천사와 드잡이해 보고 새로운 축복을 청하는 거다.”(헨리 나웬, 마지막 일기, 성찬성 옮김, 바오로딸, 2009).

 

그러나 이 안식일 일기를 읽다 보면 그가 그동안 삶의 여러 단계에서 겪은 체험들과 시기별 주요 저작들의 주된 주제들이 안식일에 겪은 체험과 사유들 속에서 잘 종합되고 열매 맺으며 깊은 차원의 화해와 조화를 맺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는 그가 평소에도 죽음과 이별이라는 문제를 늘 대면하며 살려고 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왔지만 신비롭게도 마지막 일기는 가장 완전한 죽음의 준비이자, 그의 벗들과 독자들에게 더없이 사려 깊고 우정에 찬 마지막 이별의 선물이 되고 있습니다.

 

 

▲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는 렘브란트의 작품 ‘돌아온 탕자’ .

 

 

아버지를 이해하기, 아버지가 되어가기

 

헨리 나웬 신부의 안식년 일기 중, 그가 아흔세 번째 생신을 맞는 아버지와 함께하기 위해 유럽에 체류했던 12월 말에서 1월 말까지 한 달간 쓰인 내용은 우리 마음을 뭉클하게 하기도 하고 또한 스스로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12월 21일의 일기에서 나웬은 “아버지는 아버지다”라고 씁니다. 나웬 신부에게 육친의 아버지는 존경스럽지만 버겁기도 하며, 고뇌를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깊은 영적 성숙으로 이끈 도전이 되었던 존재였습니다. 마이클 오래플린은 통찰력과 애정이 가득한 그의 나웬 신부에 대한 영적 전기에서 나웬 신부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엄했던 아버지 로렌트 나웬은 아들의 감수성을 억압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아들에게 수치심을 주입시켰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헨리에게 감탄하거나 그를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변호사이자 법학 교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건설적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좌절과 분노를 심어주었습니다. 1984년에 헨리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당신은 ‘실패자’로 간주한 사람들을 일체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약자는 늘 당신의 관심권 밖이었습니다.” 자신을 그런 실패자들 가운데 하나로 여겼던 헨리는 결코 아버지의 눈에 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마이클 오래플린, 하느님의 연인 헨리 나웬, 서한규 옮김, 분도출판사, 2008).

 

나웬 신부는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 감정을 풍요한 영적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의 명저 「탕자의 귀환」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아버지를 쏙 빼닮은 생김새에 깜짝 놀랐습니다. 내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는데 불현듯 스물일곱 살 때 보았던 한 남자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비판하면서도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이였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내 자신을 찾는데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투자했습니다. 현재의 정체성과 미래의 자아상을 묻는 질문 가운데 상당수는 그의 아들이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그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여태껏 다른 점이 참으로 많은 줄 알고 살았는데 닮은 점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통감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상속자요 후계자였습니다.”(헨리 나웬, 탕자의 귀환, 최종훈 옮김, 포이에마). 아버지와의 내면적 화해와 받아들임은 나웬 신부에게는 죽을 때까지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점점 그러한 목적지에 가까이 가고 있었으며, 이는 그 스스로가 영적 의미에서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그의 안식일 일기 중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확인합니다.

 

“1월 6일: 아버지의 아흔세 번째 생신에 독일에서 함께 지낸 시간은 언제까지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번이 우리가 그동안 함께해 온 시간 가운데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 이런 일은 필경 아버지는 아흔세 살이 되고 나는 예순네 살이 되어야 가능했으리라… 내가 이제 와서 깨닫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를 깊이 존경하면서도 상당히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아버지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사실을 불현듯이 깨달았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늙어가고 방어하는 마음이 한결 줄어들면서, 나는 우리가 얼마나 닮았는지 알게 되었다. 요즈음 거울을 보면 예순네 살때의 아버지를 보게 된다. 내 특이한 성격과 성급함, 사물을 통제하려는 경향, 이야기 방식을 곰곰이 따져 보면 우리 두 사람의 주된 차이는 성품이 아니라 나이라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어른이 된 아들이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드물다. 이번 안식년 동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부여된 특별한 은총이다… 내가 서른두 살이고 아버지가 예순한 살 때, 우리는 세대가 달랐고 그래서 사이가 아주 멀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같은 세대에 속하게 되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서 서로 더욱 가까워진 듯싶다. 나는 아버지를 두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올해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든 나는 우리가 이처럼 다시 없는 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에 늘 고맙게 생각한다.”

 

그의 이런 개인적 소회를 읽으며 그가 「탕자의 귀환」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매개로 묵상의 차원에서 탁월하게 전해주는 영적 지향이, 실제 그의 삶과 인격에도 깊이 뿌리내렸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다음 주에는 「탕자의 귀환」에 나타난 묵상이 마지막 일기 속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