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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서와 함께

창세기 인물 열전 - 김명숙 소피아

by 파스칼바이런 2018. 7. 21.
[창세기 인물 열전] 하와, 최초의 팜 파탈

[창세기 인물 열전] 하와, 최초의 팜 파탈

김명숙 소피아

 

 

창세기 인물 열전의 첫 주인공은 최초의 팜 파탈(femme fatale)이라 할 수 있는 ‘하와’다. 팜 파탈은 남성을 유혹해 치명적 상황으로 몰아가는 운명의 여인을 가리킨다. 아담은 금지된 열매로 유혹하는 아내의 손길에 무기력하게 굴복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2-3장은 태초에 남편을 주도했던 하와가 어떻게 남편에게 종속되는 운명이 되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남자의 창조

 

하느님이 창조하신 첫 피조물은 아담이었다(2,7). 피조물들 가운데 아담에게만 숨을 직접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하셨는데, 이는 아담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시다. 1장도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피조물들 가운데 인간만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진다(1,26-27). 게다가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라는 축복도 받으니(1,28), 아담이 임금의 직분으로 세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담의 육신이 한낱 흙에서 나왔음을 또한 밝혀 겸손을 배우게 한다(2,7). 따라서 아담은 하느님이 주신 임금의 위치를 남용하지 않고, 공정과 정의로 피조물들을 다스려야 한다. 공정과 정의는 ‘타인의 몫을 빼앗지 않는 것’, ‘약자의 몫을 보호하고 착취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곧, 아담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주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

 

여자의 탄생

 

2장에서 눈여겨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자의 탄생과 별도로 여자의 탄생을 언급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가 맨 마지막에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성경에서 마지막은 대개 절정을 상징한다. 1장에서도 인간이 마지막 날 창조되어 짐승보다 우월함을 알렸다. 2장에서는 여자의 탄생이 창조의 절정을 이룬다.

 

하느님이 여인을 창조하신 건 아담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주시기 위해서였다(2,20). 히브리어 ‘알맞다’를 직역하면 ‘동등하게 마주하다’이다. ‘협력자’ 곧 ‘돕는 자’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열등하다는 의미로 비칠 수 있지만, 하느님도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분이시니(시편 121,2 참조) 열등함의 표현이 아니다. 아담은 짐승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어 자신이 지배자임을 알리지만, 아내에게는 “여자라 불리리라”고 말한다(2,23). 물론 하와라고 다시 이름을 붙여 주지만(3,20), 그때는 여자가 벌을 받아 남자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다. 더구나 하느님은 아담의 머리도 발도 아닌, 가운데 뼈로 여인을 만드셨으니(2,22) 태초부터 둘은 동등했다.

 

유혹자 뱀

 

태초의 평화를 깬 것은 간교한 뱀이었다. 히브리어 ‘간교하다’는 기본적으로는 ‘영리하다’, ‘슬기롭다’는 뜻이다. 영리한 뱀이 말을 건넨 이는 하와였다. 아담을 유혹하면 하와도 설득해야 하지만, 하와를 유혹하면 아담은 절로 따라온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와가 선악과에 품은 호기심도 짐작한 듯하다. 하느님은 열매를 ‘먹지 말라’고만 하셨는데(2,17), 하와는 한마디를 더 보태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며 궁금해 죽겠다는 속내를 드러낸다(3,3). 그리고 결국에는 하느님처럼 ‘지혜’로워지리라는 뱀의 말에 마음이 동한다. 아담은 뱀의 예상대로 아내가 내민 열매를 한 마디 반박도 없이 받아먹는다. 뱀은 공격 대상을 제대로 파악했던 것이다. 혹자는 하느님이 왜 선악과를 두어서 원조들을 죄짓게 하셨느냐고 의문을 표하지만, 이는 인간이 스스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허락하시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주입된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유혹도 견딜 줄 아는 존재로 키우려 하셨을 것이다.

 

원죄와 문명의 지혜

 

선악과를 먹은 뒤, 원조들은 난생처음 죄책감과 수치심을 경험한다. 그전에는 나체여도 부끄러운 줄 몰랐는데, 이제는 옷이 필요해졌다. 곧, 인간 문명을 상징하는 옷은 본디 원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조들은 하느님 앞에 있을 권리를 잃고, 생명나무와도 멀어진다. 다시 말해, 원조들은 선악과의 대가로 옷과 농경이라는 문명의 ‘지혜’를 얻지만 노동과 고통, 죽음도 더불어 받아야 했다. 또한 여자는 평생 남편을 갈망하고 남편이 여자의 주인이 되는 운명에 처한다(3,16). 여자의 갈망이 무엇인지 조금 모호하지만, 보통 지배 욕구로 풀이한다. 곧, 태초처럼 ‘여자가 남편을 지배하려 들지만 남편이 주인이 되리라’는 뜻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불완전한 세상에 내던져진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었다.

 

새 하와

 

인류는 원죄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멀어졌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갈 기회를 다시 얻는다. 예수님은 새 아담이고, 교회는 새 하와와 같다(에페 5,22-23 참조).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듯,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옆구리 상처에서 교회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초대 교부들은 특히 성모님을 하와에 비유하고 또 대조했는데, 성모님은 교회의 보호자로서 첫 팜 파탈의 불충을 당신의 순종과 헌신으로 채우셨기 때문이다.

 

* 김명숙 님은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구약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홀리랜드대와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과 수도자 신학원에서 구약학 강의를 하였고,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성서와함께, 2017년 1월호(통권 490호)]

 

 


 

 

[창세기 인물 열전] 라멕

김명숙 소피아

 

 

창세기에는 라멕이라는 인물이 둘 나온다. 하나는(4,19) 세상에 폭력을 더했고, 다른 하나는(5,28)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에 휴식을 가져올 노아를 낳았다. 두 라멕은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전연 다르다. 이번 호에는 두 라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겠다.

 

첫째 라멕은 카인의 후손이며, 아담에게는 7대손이 된다. 살인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인물이다(4,22-23). 둘째 라멕은 셋의 후손으로 아담에게 9대손, 에노스에게 7대손이다. 셋은 카인과 아벨 사건 이후 아담과 하와가 낳은 또 다른 아들인데(5,3), 허망하게 죽은 아벨의 자리를 채우도록 하느님이 주셨다. 카인의 후손 라멕은 세상을 폭력으로 물들이는 데 기여하지만, 셋의 후손 라멕은 원죄 때문에 저주받은 땅(3,17)에서 수고하고 고생하는 인류가 위로 받기를 바랐다(5,29). 두 라멕의 이미지는 까마귀와 백로처럼 상반되지만, 공통점 또한 많다. 그들의 이름뿐 아니라 저마다 7대 조상이 되는 ‘아담’과 ‘에노스’의 이름 뜻도 같다. 둘 다 ‘사람’을 뜻한다. 숫자 7의 모티프도 공통된다. 첫째 라멕이 지은 노래에 7과 77이 나오고(4,24), 둘째 라멕의 경우에는 세상을 산 햇수가 777년이다(5,31).

 

카인의 후손 라멕 그리고 도시 문명

 

원조들이 선악과를 먹은 효과를 반증이라도 하듯, 인류 역사는 태동하자마자 폭력으로 물들었다(4,1-16). 도시 문명은 동생을 살해한 카인에게서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카인이 “성읍”을 세웠다는 4,17에서 추측할 수 있다. 농부로부터 도시 문명이 싹트게 되었다는 성경의 관점은 실제 역사와도 잘 부합된다. 고대 문명을 대표하는 ‘방목 기술’(20절), ‘음악’(21절), ‘금속업’(22절)도 카인의 후손인 “야발”과 “유발” 그리고 “투발 카인”에게서 발전한다. 그런데 이들 셋 모두 라멕의 직계 아들들이니, 라멕은 도시 문명의 선구자들을 낳은 셈이다. 라멕은 아랍어로 ‘강한 젊은이’를 뜻한다. 이름 뜻처럼 실제로 강한 남자였으며, 아무도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 자신감을 표출한다(23-24절). 옛 유다 전승에 따르면 카인을 죽인 이도 라멕이었다고 한다. 라멕은 맹인이었는데, 아들 투발 카인의 인도를 받아 사냥에 나갔다가 카인을 짐승으로 오해하고 쏘아 죽였다는 설화가 내려온다. 라멕은 성경에서 최초로 두 아내를 거느린 인물로도 나온다. 라멕 때부터 일부다처제가 시작된 셈이다. 첫째 아내 ‘아다’는 ‘새벽’을, 둘째 아내 ‘칠라’는 ‘어스름’을 뜻한다. 이는 도시 문명이 새벽빛처럼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주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도 존재함을 암시하는 듯하다.

 

라멕의 맏이 야발은 목축업의 선구자로 소개된다. 고대 근동에서 목축은 농경과 더불어 경제를 지탱하던 기둥이었다. 둘째 아들 유발은 비파와 피리를 만든 음악의 선구자다. 피리는 관악기를 통칭하는 용어로 보인다. 비파는 히브리어로 ‘키노르’라 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유일한 현악기다. 다윗이 이 악기를 즐겨 연주했고(1사무 16,23), 갈릴래아 호수의 히브리어 이름 ‘킨네렛’이 ‘키노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셋째 아들 투발 카인은 금속업을 발전시킨 이로 나온다. 수메르어와 아카드어에 기초하면, 투발은 ‘금속 기술자’를 의미한다. ‘카인’은 ‘획득하다’, ‘짓다’, ‘대장장이’라는 뜻이다. “구리”와 “쇠”가 언급되는 걸로 보아, 당시가 청동기와 철기 문화가 시작된 즈음임을 짐작하게 한다. 투발 카인이라는 이름은 창세 4장에만 나오지만, ‘투발’이라는 민족은 이후에도 성경에 이따금 등장한다. 주로 ‘메섹’과 짝을 지어 나오는데, 금속 용기 제작에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투발과 메섹이 무역하던 상품으로 “구리 연장”을 언급했다(에제 27,13). 투발 카인 시대부터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면 무기도 제작할 수 있었을 테니, 살상과 전쟁도 빈번했을 법하다. 끝내 홍수의 재앙이 닥친 것으로 보아, 음악의 발전 또한 퇴폐적 향락으로 타락한 듯하다.

 

게다가 세 선구자의 아버지인 라멕은 살인까지 자랑스러워한다. 어쩌다 자기한테 상처를 입힌 소년을 그 보복으로 가차 없이 죽였다고 떠벌린다. 더 가관인 건 마치 암흑가의 보스처럼 자기를 건드리면 일흔일곱 곱절로 갚아 주겠다고 복수를 선언한다는 점이다(4,23-24). 하느님은 카인을 해치는 자에게 일곱 곱절로 돌려주시지만, 자기는 그 이상이라고 호언장담한다. 라멕의 이야기는, 도시 문명이 의롭지 못한 자에게서 발전했다는 관점을 드러낸다. 이는 창세 3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원조들이 선악과를 먹고 느낀 죄책감 때문에 문명의 상징인 ‘옷’이 생겼고(7절), 에덴에서 쫓겨난 결과 ‘농경 기술’도 발전하게 되었다(17-19절). 카인이 시작한 도시 문명은 라멕과 그 아들을 거치며 조금씩 타락해, 결국 온 세상을 폭력으로 채우기에 이른다(6,11).

 

노아의 아버지 라멕

 

흥미롭게도, 이렇게 속절없이 추락하던 세상에 희망의 빛을 비춘 이도 라멕이다. 동명이인인 또 다른 라멕이 홍수를 견디고 인류 역사를 이어갈 노아를 낳는다(5,25-31). ‘휴식을 주다’라는 이름 뜻대로, 노아는 땅이 받은 저주에 종지부를 찍는다. 바로 그가 홍수 뒤에 하느님께 제물을 바쳐 인간 세상에 쏟아진 주님의 분노를 풀고,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도 그 위 생물들을 파멸시키지도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던 것이다(8,20-21).

 

[성서와 함께, 2017년 2월호(통권 491호)]

 

 


 

 

[창세기 인물 열전] 노아, 새 문명의 출발점

김명숙 소피아

 

 

인간 세상은 카인과 라멕 그리고 그의 후손들을 거치며 점점 폭력으로 채워지게 되었다(2월 호 참조). 이 때문에 하느님은 사람을 만드신 일을 후회하셨다(6,6). 하느님의 감정이 ‘후회’라는 인간의 언어로 묘사되어 있지만, 이 말은 조물주와 피조물들 사이의 평화가 깨졌음을 극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로 보아야 한다. 망가진 세상을 바로잡으시려고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 이전의 상태, 곧 물로 덮여 있던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셨다. 그리고 도시 문명을 주도했던 카인과 그의 후손들(4,17-24) 대신 셋의 후손이자 또 다른 라멕의 아들 노아(5,28-32)를 택하시어 새 세상의 출발점으로 삼으셨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다

 

한처음의 세상은 본디 물과 암흑이라는 혼돈에 싸여 있었다(1,2). 하느님은 빛을 창조하시어 암흑은 밤에만 나타나게 하시고, 궁창(하늘)을 만드시어 혼돈의 물은 하늘과 땅으로 갈라지게 하셨다(1,6-7). 지상의 물을 한곳으로 모아 바다가 되게 하셨기에,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들은 뭍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았던 세상이 악에 물들자, 주님은 궁창을 열어 혼돈의 물이 세상을 도로 덮게 하셨다(7,6-24).

 

원점으로 되돌아간 세상에서 새 출발점으로 선택받은 이는 노아였다. 노아는 아담의 족보에서 ‘열’ 번째 인물이자 그의 9대손이다. ‘10’은 성경에서 3, 7과 함께 완전수로 여겨지는 숫자다. 게다가 아담이 구백삼십 년을 살고 세상을 떠난 뒤(5,5) 태어난 첫 후손이기에 노아는 ‘새 아담’과 같은 의미를 얻는다. 이는 아담의 죄 때문에 저주받은 땅(3,17)이 노아 시대에 저주에서 풀려나 휴식을 얻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5,29).

 

노아는 어떻게 주님의 선택을 받았을까? 일단 그는 동시대 사람들과 달리 의로운 사람이었다(6,9). 그리고 조상들과 달리, 그에게는 딸이 없었다. 오백 살 넘어 아들 삼 형제만 자식으로 얻었다. 이 때문에라도 노아는 홍수 이후 세상에서 새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6장 초반부에서 하느님의 아들들이 인간의 딸들과 결합해 나필족을 낳기 때문이다. 나필족이 태어난 뒤 세상의 폭력이 심화되므로(6,1-6 참조), 그들이 정의로운 자들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성경은 노아에게 딸이 없었음을 밝혀, 그에게는 타락의 여지가 없었음을 분명히 한다.

 

노아는 의인으로 나오지만(6,9),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유다 전승이 이를 대신 전하고 있다. 일례로, 하느님이 명령하신 방주를 노아가 당장 만든 건 아니었다. 향백나무 씨를 뿌려서 그 씨가 큰 나무로 자랄 때까지 120년을 기다렸다. 인류의 멸망을 근심했기에, 혹시라도 사람들이 그동안 악에서 돌아서지 않을까 지켜보았다는 뜻이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저서 《유다 고대사》에는 노아가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런 전승들에 따르면 노아는 회개를 촉구하고 심판이 닥쳤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으므로, 그리스도의 예형이 된다(루카 17,26-27 참조). 종말적 재앙에서 살아남아 파멸의 위기에서 인류를 구하고,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끌어 낸 인물이기도 하다. 1베드 3,18-21은 노아가 물의 재앙을 극복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물로 받는 세례를 통해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노아의 방주는 세상 속을 항해하는 교회를 상징한다. 물이 말랐는지 살피려고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는 성령을 예표한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도 성령은 비둘기의 모습으로 물 위에 임하셨다.

 

새 문명의 개척자 노아

 

홍수 뒤 노아의 배가 안착한 곳은 아라랏 산이었다(8,4). 아라랏 산은 현재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란과 아르메니아 접경지대에 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은 아라랏 산 근처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포도 경작을 시작했는데(9,20), 아라랏 산 부근은 예부터 포도가 잘 자라던 곳이다. 노아가 경작한 ‘첫’ 작물이 포도였듯, 포도나무는 이후 민족들 가운데 하느님의 ‘맏’아들(탈출 4,22)이 될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징적인 나무가 된다(시편 80,9; 요한 15,1-17 참조). 또 하느님은 ‘포도원/포도나무 주인’에 비유된다(이사 5,1-7; 예레 2,21). 유다 전승은 노아가 쟁기와 낫, 도끼를 최초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이에 따르면 노아는 홍수 이후 문명을 개척한 선구자인 셈이다.

 

하지만 홍수 뒤에도 인간의 악한 본성은 사라지지 않았다(8,21). 노아의 작은 아들 함이 술에 취한 아버지를 추행해 저주받는 사건이 일어난다(9,21-25). 이 때문에 함의 후손 가나안은 셈(이스라엘의 조상)과 야펫(아나톨리아와 에게 문명의 조상)에게 지배당할 운명에 처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다음 가나안족을 쫓아내고 땅을 상속받았으며, 에게 해에서 이주해 들어온 필리스티아인들도 가나안의 남쪽 해안을 차지해 살기 시작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3월호(통권 492호)]

 

 


 

 

[창세기 인물 열전] 니므롯

김명숙 소피아

 

 

니므롯은 대홍수 이후 세상에 처음 등장한 장사(壯士)이자 사냥꾼이다. “니므롯처럼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10,9)이라는 속담까지 생겼을 만큼 상고 시대에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바벨 탑 사건(11,1-9)과도 관련 있다고 추정되므로, 그 심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이번 호에서는 니므롯에 얽힌 전설을 알아보고, 그가 바벨 탑 사건에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겠다.

 

메소포타미아의 시조

 

니므롯은 에티오피아의 아들로 태어났다(10,8). 족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아의 아들 함에 이르므로(함은 아버지를 추행한 죄로 저주받은 바 있다: 9,18-27), 앞으로 묘사될 니므롯의 활동이 그다지 유익한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해 준다. 창세기는 니므롯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임금이 되었다고 전하고(10,10-12 참조), 미카 5,5도 “아시리아”를 “니므롯 땅”이라 칭한다. 다만 에티오피아가 메소포타미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이 아니므로, 에티오피아의 후손이 어떻게 메소포타미아의 조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에티오피아는 히브리어로 ‘쿠쉬’이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전승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메소포타미아에서 왕조가 다시 시작된 장소는 ‘키쉬’라는 성읍이었다. ‘쿠쉬’는 ‘키쉬’와 동형이의어로 볼 수 있다. 둘째, 기원전 16세기부터 4세기 동안 바빌론을 다스렸다는 ‘카사이트’ 왕조를 ‘쿠쉬’의 동형이의어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둘 가운데 어떤 걸 택하든, 니므롯이 메소포타미아의 시조임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준다.

 

니므롯의 정체

 

창세기가 전설적 호걸로 전하는 니므롯은 정확히 누구였을까? 그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 먼저, 아카드 왕국 사르곤 1세의 손자 ‘나람-신’을 꼽는다. 나람-신은 기원전 3000년대 후반 고대 근동에서 많은 영토를 차지했다. 그리고 고대 근동 문헌에서 최초로 ‘세상 끝을 다스리는 임금’이라 일컬어졌으며, ‘강한 남자’라는 칭호가 그를 따라다녔다. 신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고 옛 전승은 전한다. ‘니므롯’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이 ‘반란’을 뜻하므로, 니므롯은 나람-신의 운명을 풍자한 인물로 해석될 수 있다. 둘째로는, 아시리아 임금 ‘투쿨티-니누르타 1세’로 풀이한다. 투쿨티-니누르타 1세는 기원전 13-12세기 임금으로서, 최초로 바빌론을 정복해 아시리아와 통일했다. 마지막으로, 바빌론인들이 창조주로 추앙한 ‘마르둑’ 신을 니므롯의 본으로 풀이한다. 니므롯(Nimrod)의 어근 m, r, d는 마르둑(Marduk)의 이름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위 인물 중 누구라고 한정하기보다, 그들의 특징을 복합적으로 입혀 메소포타미아의 시조를 묘사했다고 보는 게 가장 적합하겠다.

 

바벨 탑, 인류의 반란

 

유다 전승은 니므롯을 인류 최초의 사냥꾼이자 처음으로 육식을 한 자로 보았다(대홍수 이전엔 인류가 채식을 했다: 1,29. 육식을 허락받은 건 홍수 이후다: 9,2-3). 홍수 이후 최초로 전쟁을 일으킨 자로도 풀이했다(미드라쉬 아가다 10,8). 그의 용맹함은 하느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신 가죽옷(3,21)에서 나왔다고 한다. 노아가 그 옷을 방주 안에 보관해 두었는데, 니므롯이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짐승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탈무드 현인들은 니므롯을 반란의 대명사로 보았다(하기가 13a). 이 해석은 그의 이름 뜻(‘반란’)과도 어울린다. 탈무드 전승은 바벨 탑을 지은 자도 니므롯이라고 전한다(아보다 자라 53b). 탈무드 현인들은 니므롯이 우상 숭배 목적으로 쌓았다고 보고 바벨 탑을 ‘니므롯의 신전’이라 칭했다. 창세기도 니므롯의 왕국이 ‘신아르 지방의 바벨, 에렉, 아카드, 칼네에서 시작했다’(10,10)고 소개한 후 바벨 탑 사건(11,1-9)을 기록하고 있다.

 

요세푸스도 니므롯에 대해 비슷한 전승을 전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니므롯은 … 하느님이 또 한 번 땅을 홍수에 잠기게 하시면 복수하겠다고 위협했다. 물이 올라올 수 없을 만큼 높은 탑을 쌓아, 홍수 때 멸망한 조상들에 대해 복수하려 했다. … 그렇게 그들은 탑 건설에 착수했으며 … 그 탑은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유다 고대사》 I, iv, 2-3).

 

창세기가 바벨 탑 건축에 관해 밝히는 인간의 죄는, 세상에 흩어져 온 땅을 채우라 하신 하느님 말씀(1,28; 9,1)에 그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곧, 그들은 강한 요새를 지어 한곳에 모여 살면 흩어짐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11,4). 하느님은 당신 뜻을 거스르는 인류를 보시고, 언어를 뒤섞어 그들을 세상에 흩어 버리셨다(11,8). 이렇듯 니므롯 시대에 노아의 자손 일부가 악한 본성을 누르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곧 아브람이 셈의 열째 후손으로 세상에 등장함으로써(11,10-26),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서막을 올리게 되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4월호(통권 493호)]

 

 


 

 

[창세기 인물 열전] 아브라함의 아들들

김명숙 소피아

 

 

바벨탑 사건 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17,4)로 삼으셨다. 이 운명에 걸맞게 아브라함은 아들을 여럿 두었다. 첫째는 여종 하가르에게서 얻은 이스마엘, 둘째는 사라에게서 얻은 이사악이다. 사라가 죽은 뒤에는 후처 크투라가 지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를 낳았다. 이 중 이스마엘은 아랍인의 조상이, 이사악은 야곱을 거쳐 히브리인(유다인의 뿌리)의 조상이 되니, 아브라함은 그리스도교까지 합쳐 하느님을 섬기는 삼대 유일신교의 성조인 셈이다.

 

이스마엘

 

첫아들 이스마엘은 서출이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던 사라를 대신해 여종이 낳았다. 이는 정실부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면 첩을 들이던 우리의 옛 풍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사라는 자원해서 여종을 남편에게 주었다(16,2). 성경 시대 여인들은 그런 방법을 써서라도 불임의 수치를 없애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가르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서 사라를 업신여긴다. 사라는 그것이 아브라함의 불찰이라며 그를 탓한다(16,4-5).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종의 소유권이 남편에게 넘어갔으니 하가르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인은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가르 소유권을 사라에게 되돌려 주어 사라의 불만을 해소한다. 아브라함 시대에 집성된 함무라비 법전이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종이 아이를 낳아 오만해져서 불임인 본부인과 동등한 위상을 주장할 경우, 그 신분을 종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146항). 도로 사라의 종이 된 하가르는 혹독한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지만, 광야에서 헤매다 천사를 만난 다음 여주인에게 되돌아간다(16,7-9). 그 뒤 아들을 낳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했다. 이는 ‘하느님이 들으시다’라는 뜻인데, 고통에 찬 자신의 소리를 주님이 광야에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천사는 훗날 이스마엘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고 알려 준다(21,18).

 

이사악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십이 년 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얻는다. 이사악은 ‘웃다’라는 뜻이다. 세 천사가 아브라함 내외를 찾아와 수태를 전하자, 늙은 자기가 어떻게 아기를 갖느냐며 사라가 웃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18,12). 그렇지만 이 이름은 하느님이 이미 점지해 두신 것이기도 했다(17,19). 따라서 이사악의 출생으로 웃게 되는 주인공은 사라가 아니라 하느님일 수도 있다. 사라의 웃음은 의심에서 나왔지만, 하느님의 웃음은 사라처럼 믿음이 부족한 인간의 한계를 꼬집는 웃음이다(시편 2,4). 사라의 웃음은 득남한 후 환희로 바뀐다(21,6).

 

두 민족의 조상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계약을 이어받은 아들은 이사악이지만,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동등한 아들로 여긴 것 같다. 이사악을 낳은 사라가 이스마엘을 쫓아내려 하자, 아브라함이 몹시 언짢아 했다(21,11)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이스마엘이 이사악과 동등한 상속권을 가졌다는 사실은 이스마엘이 성장하기 전에 집에서 쫓아내고 싶어 했던 사라의 행동에서도 암시된다(21,10). 이스마엘이 이사악의 상속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면, 사라는 제가 요청해 낳은 이스마엘을 쫓아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종의 자식도 정실의 자식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170-171항). 남편이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종과 그의 소생을 자유인으로 풀어 주어야 했다. 사라가 의도한 것도, 이스마엘이 상속받지 않는 대신 하가르와 함께 자유인으로 풀려나는 것이었다. 유다 전승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아브라함이 너무 오냐오냐한 탓에 이스마엘이 버릇없는 아이로 자랐고, 여인들을 함부로 대하고 우상을 섬기며 이사악까지 죽이려는 것을 사라가 꿰뚫어 보고 내쫓았다고 한다(창세기 라바 53,11). 공정한 전승은 아니지만, 유다인들이 이사악의 후손이기에 이런 편견도 생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집을 나온 이스마엘은 활잡이로 성장했으며(21,20), 전승에 따르면 아랍인의 조상이 되었다. 이 전승이 맞는다면, 그는 성경 예언처럼 진실로 큰 민족의 아버지가 된 셈이다. 실제로 아랍 무슬림은 이사악이나 사라보다 이스마엘과 하가르를 더 높이 평가한다. 이사악 번제 사건(22장)도 이스마엘 번제 사건으로 바꾸어 전한다. 이슬람 축제인 ‘이드 알 아드하’(Eid al-Adha, 희생제)가 바로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대신 번제 양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반면, 이스라엘 민족은 이사악과 야곱을 통해 이어지므로, 어찌 보면 유다인들은 아랍인들과 사촌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형제 갈등으로 멀어진 두 민족이, 지금은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다. 다만 사촌이라는 혈연이 무색하게 서로 땅을 독차지하려고 분쟁하고 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 모습을 하늘에서 본다면, 어느 쪽에 손을 들어 줄까?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져 온 세상에 유일신 사상을 심었지만, 가지가 많아 바람 잘 날 없는 나무처럼 그들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지는 않을지?

 

[성서와 함께, 2017년 5월호(통권 494호)]

 

 


 

 

[창세기 인물 열전] 멜키체덱

김명숙 소피아

 

 

창세기에 등장하는 멜키체덱(14,18-20)은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신학적으로 중요한 인물임에도 그에 대한 정보 - 누구의 자손인지, 어디서 태어나고 죽었는지 - 가 전혀 없다. 다만 아브라함과 동시대 사람이었고, 옛 예루살렘을 다스린 임금이자 하느님을 섬긴 사제라는 점만 밝혀져 있다. 아브라함과 멜키체덱의 만남에서 두 사람이 한 행동도 수수께끼이다. 멜키체덱은 아브라함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며 축복했고, 아브라함은 그런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히브리서 7장은 기이해 보이는 멜키체덱의 존재와 행위 속에 예수님의 모습이 암시되어 있다고 말한다. 멜키체덱의 빵과 포도주는 성찬례의 예형이며, 아브라함이 바친 십일조는 그가 멜키체덱을 사제로 인정하고 존중했다는 것이다. 곧, 멜키체덱이 그리스도의 예형임을 밝힌다. 성체성혈 대축일에 창세 14,18-20을 제1독서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호에서는 창세기의 멜키체덱이 어떻게 예수님의 예형으로 풀이되기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겠다.

 

멜키체덱과 아브라함

 

멜키체덱은 ‘정의로운 임금’을 뜻한다(히브 7,2). 그는 살렘을 다스린 임금이었다(14,18). ‘살렘’은 고대 예루살렘의 이름으로(시편 76,3), 평화를 뜻하는 ‘샬롬’과 어근이 같다.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을 만난 때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납치한 여러 임금과 전쟁(창세 14,1-16)을 치른 뒤였다. 임금들을 물리쳐 ‘평화’를 회복한 다음 ‘살렘’을 방문한 점이 상징적이다.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을 만난 곳은 “임금 골짜기”였다. 예루살렘 동쪽의 ‘키드론 골짜기’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멜키체덱은 아브라함을 환대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었다. 멜키체덱의 축복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12,1-3)을 회고하게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였다. 이에 아브라함은 자기 재산의 십 분의 일을 주며 예를 갖춘다. 멜키체덱이 하느님의 사자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일 터이다. 아브라함의 이 행위는 민수기의 전리품 분배 율법(31,25-41)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전리품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 롯이 빼앗긴 재물을 되찾아 온 것에 불과하지만, 전쟁 후 재물의 일부를 사제에게 주었다는 점이 같다.

 

멜키체덱과 아브라함의 사연이 창세기에 실린 이유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직이 아브라함 시대에도 이미 예루살렘에 존재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예루살렘 임금이었음을 밝힘으로써, 훗날 예루살렘에 확립될 다윗 왕실과 레위 사제직의 정통성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시편 110,4)

 

멜키체덱은 시편에서 다시 언급된다. 시편 110편은 다윗 왕실의 즉위식에 사용되던 의식용 시편으로 보인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1절), 곧 주님 옆에 좌정하라는 말씀이 즉위식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멜키체덱이 영원한 사제이듯 다윗 후손도 그처럼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임금이자 사제임을 천명한다(4절). 즉 이 시편은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옹호하기 위해 그 이전에 예루살렘을 다스린 멜키체덱의 예를 인용한다. 이 시편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 시편을 예로 들며, 메시아는 다윗 후손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임을 역설하신다(마태 22,41-46). 구약 시대에 정치 지도자는 다윗 후손이, 사제직은 레위인들이 맡았다. 그러다 예수님에게서 임금과 사제직이 합쳐진다. 곧, 예수님이 멜키체덱의 본을 온전히 실현한 유일한 예가 되므로, 예수님이 시편 110편을 완성하셨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예형, 멜키체덱

 

히브리서 7장은 멜키체덱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기초가 되는 인물임을 증명한다.

 

먼저 멜키체덱은 ‘아버지, 어머니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다(히브 7,3). 곧, 그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사제로 남을 인물이다. 같은 사제라도, 족보가 분명한 레위인 사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히브리서 7장은 멜키체덱이 예수님의 예형임을, 곧 예수님이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히 사제임을 천명한다.

 

둘째, 멜키체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다. 축복은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이므로, 멜키체덱이 아브라함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셋째,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이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바치던 예물이다(창세 28,22; 말라 3,10; 마태 23,23 등). 따라서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그가 멜키체덱을 사제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곧, 히브리서 7장은 레위인 사제들보다 그리스도가 더 고유한 사제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 멜키체덱이라는 인물을 소환했다. 그를 통해 예수님의 사제직이 율법 규정에 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느님에게서 직접 유래했음을 설명하려 했다.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창세기에 묘사된 아브라함과 멜키체덱의 행위가 훗날 예수님의 사제직을 예표하게 되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6월호(통권 495호)]

 

 


 

 

[창세기 인물 열전] 에돔의 조상 에사우

김명숙 소피아

 

 

에돔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민족이다. 성경에는 자주 나오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아는 바는 많지 않다. 대부분 에사우가 그들의 조상(36,1)이라는 정도에 그친다. 그렇지만 모세의 형 아론이 에돔 땅 경계에 있는 “호르 산”에 묻혔고(민수 20,22-29),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한 헤로데가 부계 혈통으로 에돔인임을 감안하면, 에돔에 얽힌 사연들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에사우와 야곱

 

에돔의 조상 에사우는 창세기 25장에 처음 나온다. 육체적으로는 에사우가 동생 야곱보다 강했지만, 선택받은 아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인생의 무게가 덜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배고픈 형에게 그냥 줘도 됐을 콩죽으로 장자권을 가져가고 형으로 분장해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보다, 야뽁 강에서 재회한 동생을 기탄없이 용서한 에사우의 호방함(33,4)이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에사우는 순간의 배고픔 때문에 맏아들 권리를 경시하는 우를 범하여 아우에게 뒤꿈치를 잡힌다. 실제 역사에서도 에돔은 맏이답게 왕국을 먼저 확립하지만(36,31), 결국 다윗에게 정복당해(2사무 8,14) 야곱의 우월성을 증명해 준다. 사실 우리는 에사우와 야곱의 장자권 쟁탈전에 대해 읽을 때마다, 동생이 콩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부도덕하게 가로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고대 근동 문헌들은 이에 대해 좀 더 색다른 면을 보게 해 준다.

 

맏아들 권리

 

성경은 장자를 중히 여겼다(탈출 13,2; 민수 3,13 참조). 맏아들 권리는 한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통솔권이므로, 우리나라 장남이 누렸던 전통적 위상과 흡사하다. 아버지 재산을 나눌 때는 다른 형제들의 두 몫을 상속받고(신명 21,17),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후계자를 축복하는 권리도 가졌다. 그렇지만 장자권이 반드시 탄생 순에 따라 주어지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야곱이 선택되었다는 창세 25,23에서나, 야곱이 요셉의 차남 에프라임을 장남 므나쎄보다 앞세운 창세 48,13-20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장자권은 양도도 가능했다. 르우벤은 아버지에게 불충을 저지른 죄(35,22)로 장자권을 양보해야 했다(1역대 5,1 참조). 이렇듯 장자권이 고정된 권리가 아님을 알았기에, 야곱이 그것을 탐내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고대 근동 유적지 가운데 ‘누지’나 ‘알라라크’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그곳에서도 아버지가 장자권을 받을 아들을 정할 수 있었던 듯하다. 누지 비문에는 양 세 마리를 ‘즉시’ 받는 조건으로, 자기 형제에게 ‘미래의 상속 재산’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는 에사우가 ‘당장의’ 허기를 해결하려고 장자권을 콩죽과 바꾼 사건을 떠올리게 하므로, 에사우가 콩죽의 대가로 판 것은 미래에 받을 ‘상속 재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야곱이 콩죽으로 장자권을 사들인 행위가 고대 근동에서는 크게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도 추측하게 한다. 그렇지만 “형제들의 지배자”가 되는 장자권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축복을 통해 최종적으로 주어지므로, 그의 부도덕성은 에사우로 분장해 아버지를 속인(27,1-29) 지점에서 부각된다.

 

야곱은 소원대로 맏아들 권리를 쟁취하지만, 형과 아버지를 속인 죄는 정당화되지 못했다. 그가 치른 죗값이 성경 곳곳에 암시된다. 첫째, 아브라함이나 이사악은 평화롭게 살다가 조상들 곁으로 간 반면(25,8; 35,29), 야곱은 이십 년 동안 외숙 집에서 피난살이를 해야 했다. 둘째, 그가 아버지와 형을 속였듯, 자신은 외숙 라반에게 속고 이용당한다(29,25; 31,7). 셋째, 라반에게서 도망친 이후에는 에사우를 대면해야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32,8.12). 넷째, 가장 사랑한 아들 요셉이 제 형들의 기만으로 이집트에 팔려가 오랫동안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야곱의 아들이 또 다른 아들들의 계교에 말려 아버지의 업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야곱은 스스로도 불행했다고 고백하였으며, 끝내는 이집트에서 고향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다(47,9.29; 49,33).

 

에사우는 아우에게 속아 아버지의 축복까지 빼앗긴 뒤, 앙심을 품고 야곱을 죽이려고 했다(27,41). 그래서 증오의 배경과 등장인물의 성격은 다르지만, 동생 살해를 계획한 에사우에게서 우리는 또 다른 카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사악이 야곱에게 해 준 축복대로, 에사우의 후손 에돔은 왕정 시대 내내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다.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이 바빌론의 손에 망했을 때에야 마침내 자기 목에서 이스라엘의 멍에를 떨칠 수 있었다(27,40 참조). 그리고 바빌론 유배 뒤, 곧 제2성전기 동안에는 에돔이 이스라엘의 남부지방으로 침투해 온다. 그래서 본래는 이스라엘 남동쪽이던 그들의 위치가 바뀌게 되었으며, 이름도 ‘이두매아’라 칭해진다(1마카 5,3 참조).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한 헤로데의 아버지가 바로 이두매아 출신이다. 곧, 질곡의 세월 끝에 에사우의 후손이 이스라엘 임금이 되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보면 에사우는 헤로데를 통해 과거의 앙금을 묘하게 설욕한 셈이 아닌가?

 

[성서와 함께, 2017년 7월호(통권 496호)]

 

 


 

 

[창세기 인물 열전] 레베카, 빗나간 모성

김명숙 소피아

 

 

‘어머니는 위대하다’고들 말한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지만, 그 위대함 속에는 상식을 넘어서는 무언가도 함께 존재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편애하는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애정이 덜 가는 자녀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레베카가 야곱을 위해 에사우를 희생시켰듯 말이다.

 

처녀 레베카

 

레베카는 히브리어로 ‘리브카’다. 이름 뜻은 ‘(가축 등을) 단단히 묶다’로 추정된다. 또는 라헬의 뜻이 ‘암양’이고 레아가 ‘암소’이듯, 그들의 고모이자 그들처럼 목축 일을 했을 레베카(Rebekah)도 ‘가축’을 뜻하는 바카르(bakar)와 관련 있는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 보듯, 자음 순서만 바꿔 놓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이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지 않도록(24,3), 고향으로 종을 보내 신부감을 찾아오게 했다. 이 일은 아브라함이 생애 거의 마지막에 한 일이었으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곧 끝이 난다(아브라함의 죽음: 25,7-11 참조). 아브라함이 아들을 보내지 않고 대리인을 보내 혼인을 추진한 건, 이사악이 어렵게 얻은 아들인데다 그를 잃을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22장)으로 보인다. 게다가 당시 아브라함은 사라를 잃은(23장) 뒤라, 아들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더했을 터이다. 이는 훗날 레베카가 야곱을 홀로 타지에 보내는 것과 대조된다. 레베카가 야곱을 떠나보낸 표면적 이유도 신부감을 찾기 위해서였다(27,46; 28,1-2 참조). 물론 레베카도 귀한 아들이 낯선 곳을 가다가 변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겠지만, 에사우의 보복이 두려웠기에(27,41-45)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레베카의 성정은 아브라함의 종이 그를 우물가에서 만났을 때 처음 드러난다. 외모도 아름답지만, 매우 능동적인 여인이었다. 아브라함의 종이 물을 청하자, 그의 낙타들에게까지 물을 주겠다고 제안하기 때문이다(24,16-20). 길손의 갈증을 풀어주려고 ‘급히’ 물을 길어 ‘서둘러’ 마시게 했다는 점에서(18.20절),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소녀였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악과의 혼인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을 때는, 친정 가족에게 미련을 보이지 않는 단호함도 드러낸다(55-58절).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자마자 고향을 떠났듯, 레베카도 머뭇거림 없이 가나안을 향해 떠난 것이다.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쳤으며, 혼인 후에는 남편의 동의 없이 축복받을 아들을 바꾸는 독단성마저 드러낸다.

 

레베카의 모성적 사랑

 

혼인 당시 이사악의 나이는 마흔이었다(25,20). 레베카의 나이는 나오지 않지만, 유다 전승은 13-14세로 추정한다. 레베카는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호르의 손녀이므로, 이사악에게는 육촌 누이다. 아브라함은 이복 누이 사라와 혼인했고(20,12), 다윗의 맏아들 암논과 배다른 누이 타마르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2사무 13,13)에도 근친혼 관습이 암시된다(아직도 중동에는 근친혼의 잔재가 남아, 아랍인들은 사촌을 배우자감으로 선호한다). 당시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레베카에게는 그런 그를 보듬어 줄 만한 모성애가 있었던 것 같다. 이사악이 곧 위로를 받고 레베카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24,67).

 

모성애에 숨은, 아름답지 못한 비밀 ‘편애’

 

이사악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레베카는 이십 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어렵게 에사우와 야곱 쌍둥이를 낳는다. 이로써 친정 가족이 해 준, ‘수천만의 어머니가 되라’는 축복(24,60)이 이루어진다. 에돔과 이스라엘이라는 두 민족의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단호한 성격 때문이었나? 이사악의 슬픔을 보듬어 주던 레베카의 모성애가 야곱에게만 쏠린 것이다. 유다교는 레베카의 편애에 대해 다소 편파적인 해석을 했다. 이사악이 에사우를 축복하려던 계획을 레베카가 일부러 엿들은 게 아니라(27,5 참조), 레베카가 예언자였기에 성령께서 알려 주신 것이라 한다. 이사악이 악한 에사우를 축복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말이다(창세기 라바 67,9; 65,6 참조). 하지만 이런 해석은 유다인들이 야곱의 후손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자신이 택하지도 만들지도 않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말을 했다. 에사우와 야곱도 자기 부모에게 던져진 존재이므로, 그들 관계에 대한 책임은 많은 부분 부모에게 있다. 결국 레베카는 편애한 대가로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성경에 암시된 바에 따르면, 그 뒤 죽을 때까지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한 듯하다. 오점이 없어야 할 성조 역사에 부도덕함이 깃들어 있어 의문을 품게 하지만, 이는 부족한 인생들이 모여 사는 우리 세상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인 듯하다. 성경은 불완전한 인간의 잘못도 선으로 바꾸어 이끄시는(50,20 참조)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해 주기에 경전이다.

 

[성서와 함께, 2017년 8월호(통권 497호),]

 

 


 

 

[창세기 인물 열전] 라헬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

김명숙 소피아

 

 

성경에서 유명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라헬과 야곱을 빼놓을 수 없다. 라헬은 라반의 둘째 딸이자 레아의 동생이다. 라반은 레베카의 오빠이므로, 야곱에게 라헬은 사촌이다. 야곱은 단 한 번 만남으로 라헬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를 아내로 얻으려고 14년을 헌신했다. 비록 장인의 농간으로 레아를 먼저 아내로 맞지만, 끝까지 라헬만 사랑하였다. 남편의 마음을 독차지한 라헬이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라헬의 불임

 

라헬의 이름 뜻은 ‘암양’이다. 야곱을 만나던 날도, 라헬은 이름 뜻에 어울리게 양을 치고 있었다(29,6). 라헬은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낙심하고 먼저 아이를 낳은 언니를 질투했는데, 당시 여자로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건 큰 수치였다. 라헬은 몸종의 몸을 빌려서라도 아이를 보고자 하여, 단과 납탈리라는 아들을 먼저 얻는다(30,1-8).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를 가져왔을 때, 라헬이 그걸 얻으려고 언니와 협상을 한 것(30,14-16)도 불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합환채는 당시 불임 부부들이 수태에 효과가 있다고 믿어 최음제처럼 썼던 식물이다. 그렇지만 라헬은 합환채를 손에 넣고도 아이를 갖지 못했고, 오히려 아들을 넷이나 둔 레아가 이사카르를 낳았다. 레아는 그 뒤에도 즈불룬과 디나를 출산한다(30,16-21). 라헬은 그로부터 삼 년 뒤 하느님이 태를 열어 주신 뒤에야 아이를 얻는다(30,22-24). 그제야 하느님이 자기 수치를 ‘없애 주셨다’고 기뻐하고, 아들 하나를 ‘더 주시기’를 기원하며 이름을 ‘요셉’이라 했다. 요셉의 어근은 ‘아사프’ 또는 ‘야사프’인데, 전자는 ‘없애다’, 후자는 ‘더하다’라는 뜻이다. 소원대로 라헬은 가나안에서 마지막으로 벤야민을 낳는다(35,16-18).

 

가족 수호신 도난 사건

 

남편과 함께 가나안으로 떠나던 날, 라헬은 집안 수호신을 훔쳤다(31,19). 그걸 왜 훔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메소포타미아 누지(Nuzi)에서 발견된 옛 점토판에 따르면 집안 수호신을 소유하는 건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 듯하다. 어쩌면 라헬은 야곱도 라반의 법적 아들로서, 재산의 한몫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보아 가져갔는지 모른다. 수호신을 소유하고 있으면, 야곱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라반의 시도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그렇지만 라반이 야곱을 따라잡았을 때의 상황을 보면(31,22-54), 수호신을 써서 재산권을 주장하려는 시도가 나오지 않으므로 그것이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유다 전승은 아버지가 우상 숭배를 하지 못하도록 라헬이 일부러 훔쳤다고 풀이했다(창세기 라바 74,5). 가장 합당해 보이는 설명은, 아버지의 집에서 도망가는 남편의 앞날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훔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의 소행을 알지 못했으므로, 장인이 수호신을 찾으러 오자 ‘도둑질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며 맹세까지 한다(31,32). 야곱의 맹세 탓이었는지 라헬은 벤야민을 낳다 죽음을 맞는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높여진 라헬

 

라헬이 죽은 곳은 ‘베텔’에서 ‘에프랏’으로 이어진 길목이었는데, 에프랏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다(48,7 참조). 야곱은 라헬을 가족 무덤이 있는 막펠라 동굴(헤브론)에 묻지 않고 ‘베들레헴 가는 길 가’에 묻었다(35,19-20). 그토록 사랑한 라헬을 왜 따로 묻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베들레헴은 장차 메시아가 나올 곳이었기에(미카 5,1 참조) 라헬이 그 입구에 묻힌 건 가히 상징적이다. 라헬의 도움이었을까? 모압 출신 이방인 룻이 베들레헴에서 보아즈와 혼인하게 된다. 베들레헴 주민들은 룻에게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라헬처럼 되라며 축복하는데(룻 4,11), 실제로 룻은 다윗 임금과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이 축복에 라헬이 민족의 어머니로 언급된 이유는, 그가 낳은 요셉 덕에 야곱 집안이 가나안 흉년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이후에도 라헬은 계속 민족의 어머니로 높여진다. 예레 31,15은 라헬을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후손들(기원전 6세기)을 보며 통곡하는 어머니로 그렸다. 라헬이 북 왕국을 세운 에프라임(요셉의 아들) 지파의 조상인데다(1열왕 11,26-40 참조), 남 왕국의 일부를 형성한 벤야민(1열왕 12,20-21 참조)의 어머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태 2,18은 헤로데가 유다의 임금 탄생 소식에 어린 남아들을 살해하자, 예레 31,15을 인용하며 라헬이 통곡한다고 한탄했다. 마태 2,18이 예레미야서를 인용한 것도 상황의 유사성을 고려해 볼 때 적절하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라는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 앞잡이인 헤로데에 의해 아들들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생 남편의 사랑을 받았으나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은 라헬. 그렇지만 그는 어렵게 얻은 아들들 덕분에 영원히 민족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9월호(통권 498호)]

 

 


 

 

[창세기 인물 열전] 유다, 유다인의 기원

김명숙 소피아

 

 

오늘날 존재하는 유다인은 옛 히브리인의 일부다. ‘유다인’이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어원은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뒤, 북 왕국은 아시리아로 유배당하여 흔적이 사라졌지만(기원전 8세기), 남 왕국 백성은 바빌론 유배(기원전 6세기)를 겪고도 히브리 정체성을 지켜 냈다. 이 남 왕국의 이름이 유다였고 남 왕국을 구성한 대표 지파가 바로 유다 지파였기에, ‘유다인’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다. 유다는 요셉과 함께 임종 전 야곱에게서 가장 긴 축복을 받은 아들이다(49,1-28 참조). 둘은 이후 남북 왕국의 조상이 된다.

 

유다와 장자권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다. ‘유다’라는 이름은 ‘찬송하다’라는 어근에서 나왔다. 레아가 그를 낳은 뒤, 기쁨에 넘쳐 주님을 찬송했기 때문이다(29,35). 야곱의 장남은 르우벤인데, 어째서 유다가 형제들의 으뜸이 되어 왕조까지 세운 것일까? 우선적 원인은 르우벤이 아버지의 소실 빌하를 범한 죄(35,22)에 있다. 이 일 때문에 르우벤은 장자권을 잃는다. 르우벤 다음 아들은 시메온과 레위이지만, 이 둘은 누이 디나 사건에 격분한 나머지 스켐인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34,25-31). 그래도 레위 지파는 이집트 탈출 뒤 광야에서 벌어진 금송아지 배교 사건에서 활약한 덕에 성직을 차지하지만(탈출 32,25-29 참조), 시메온은 영영 장자권을 놓친다. 그래서 그다음 아들인 유다가 장자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49,8.10).

 

게다가 유다는 형제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선봉자 역할을 했다. 이 점은 요셉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유다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상인들에게 팔자는 제안을 하여 그의 목숨을 구했고(37,26-27), 벤야민을 이집트로 데려가야 했을 때는 자신이 무사귀환을 책임지겠다며 아버지를 설득했다(43,8-13). 고대 유다 전승은 유다가 지혜로운 사람이었기에, 아버지를 설득할 때 매우 논리적인 방법을 썼다고 한다. 벤야민이 이집트에서 볼모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곡식이 없으면 가족이 다 죽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창세기 라바 91,10). 야곱은 르우벤이 제안했을 때는 거절하지만(42,37-38), 유다의 제안은 받아들여 벤야민을 이집트로 데려가게 했다.

 

이집트에서도 유다는 볼모가 될 뻔한 벤야민을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했다(44,18-34). 이집트 재상 요셉에게 간곡히 호소하여 그가 더 이상 자기 정체를 감출 수 없도록 몰아간 이도 유다였다(45,1-3 참조). 요셉의 생존에 대해 알게 된 야곱이 이집트로 이주할 때도, 야곱은 다른 가족보다 유다를 먼저 내려 보냈다(46,28). 이 일에 대해서도 옛 전승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유다가 고센 땅에 학교를 미리 만들어 두어, 야곱이 도착하면 아들들의 교육을 시작할 수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창세기 라바 95,2 참조). 결국 요셉이 이집트에서 성공하게 되는 이야기에는 유다가 함께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둘이 훗날 남북 왕국의 선조가 되어,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17,6; 35,11)을 성취하게 된다.

 

아들 페레츠

 

유다의 아들들 가운데 다윗 왕실의 조상이 된 이는 페레츠다(38장 참조). 유다가 아내로 맞은 여인은 가나안 출신이었는데, 아들 셋을 낳았다. 며느리로 들어온 타마르도 가나안 여자였다. 그렇지만 타마르와 혼인한 맏아들은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어 버린다. 유다는 수숙혼(嫂叔婚)에 따라 둘째 아들을 타마르와 혼인시키지만, 그 또한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자 유다는 막내마저 잃을까 염려하여, 타마르를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시댁에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타마르는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를 유혹하고 아이를 갖는데, 이때 얻은 쌍둥이의 하나가 페레츠였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가나안에서는 아주 터무니없는 사건은 아니었던 듯하다. 기원전 13-14세기 히타이트 법에 따르면, 과부가 된 여인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하고, 그 형제마저 죽으면 시아버지가 데려가야 했다. 어쩌면 타마르는 자신이 유다의 막내아들에게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고, 가나안 여인들이 하듯 마지막 대안으로 시부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신명 25,5-10은 수숙혼의 범위를 형제로만 엄격하게 제한하게 된다.

 

구세주의 뿌리가 된 유다

 

유다는 기지를 발휘하여 요셉의 목숨을 구하고, 벤야민 대신 볼모가 되겠다고 자원하는 형이었다. 이는 르우벤이 벤야민을 이집트로 데려가는 문제로 아버지를 설득할 때, 자신이 아닌 두 아들의 생명을 담보로 건 일(42,37)과 대조된다. 유다의 행동은 훗날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당신을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일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이런 성품 덕분에 유다가 유다인이라는 한 민족의 기원이 되고 구세주의 계보도 잇게 되지 않았을까?

 

[성서와 함께, 2017년 10월호(통권 499호)]

 

 


 

 

[창세기 인물 열전] 요셉, 야망을 성취한 꿈쟁이

김명숙 소피아

 

 

가나안에 기근이 들면 성조들은 나일 강이 있는 이집트로 피신하곤 했다. 창세 12,10-20에는 아브라함이, 46장에는 야곱이 피신한 사연이 나온다. 그렇지만 야곱의 피신은 요셉 사건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정확히 말하면 그 사연은 37장부터 50장까지 이어진다. 야곱이 이집트로 가게 된 계기는 아브라함과 달리 매우 인간적이었다. 요셉에 대한 편애와 다른 아들들의 질투, 그리고 열일곱이나 먹은 요셉(37,2)의 고자질과 철없는 꿈 자랑이 요셉을 팔려가게 하는 비극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섭리였는지, 야곱의 가족은 그 일 덕분에 기근을 무사히 넘기게 된다.

 

야곱이 사랑한 아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자 라헬의 첫 아들이다. 요셉의 어근은 ‘아사프’ 또는 ‘야사프’로 추정되는데 전자는 ‘없애다’, ‘가져가다’ 후자는 ‘더하다’로 이중 의미를 띤다. 라헬이 불임의 수치를 ‘없애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아들 하나만 ‘더 주시라’고 청하면서 붙인 이름이다(30,22-24). 야곱은 요셉이 샘가에 심긴 나무처럼 번영하리라고 예고했는데, 이 “샘”(49,22)은 형제들이 요셉을 가두었던 “구덩이”(37,24)를 대체하는 것이다. 곧, 마른 구덩이가 샘으로 바뀌어, 형제들이 꾸민 악을 하느님께서 선으로 바꾸어 주심(50,20 참조)을 암시한다. 게다가 요셉은 형들을 제치고 맏아들 권리를 차지한다(1역대 5,1-2). 신명 21,17에 따르면, 맏이는 아버지 재산을 나눌 때 다른 형제들의 두 몫을 받을 권리가 있다(1역대 5,1-2의 맏아들 권리도 이 재산권을 가리키는 듯하다). 요셉의 후손은 이후 에프라임과 므나쎄 지파로 나뉘므로, 실제로 요셉은 상속 재산을 두 몫으로 받은 셈이다. 요셉이 차지한 맏아들 권리에 걸맞게 에프라임 지파는 훗날 북 왕국을 세운다(1열왕 11,26; 12,20 참조).

 

요셉의 꿈에 드러난 야망

 

성경에서 꿈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는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28,12; 요엘 3,1 등 참조). 요셉이 꾼 꿈은 37,7-8에 나온다. 그에게는 형들 위에 군림하고픈 욕망이 있었던 듯하다. 아버지 야곱이 형 에사우를 제치고 장자권을 갈망했듯 말이다. 그런데 두 번째 꿈에서는 부모까지 요셉에게 고개를 숙이니(37,9-10), 이쯤 되면 아버지의 야망을 넘어선 빙한어수(氷寒於水)라 하겠다. 요셉의 꿈에서 동생의 야망을 알아본 형들은 당연히 기분 나빴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마음은, 에사우와의 대면을 앞두고 아버지가 라헬과 요셉만 특별히 보호하려 했던 일(33,2)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야곱은 자기만 싸고 돈 어머니 레베카를 답습했다. 게다가 요셉의 아름다운 겉모습(39,6)은 라헬을 꼭 닮아(29,17), 형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제 어머니들의 처지를 늘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헤브론에서 스켐까지, 방목하는 형들을 찾아 나선 여정에서는 요셉의 근성이 드러난다(37,12-14). 장장 오 일 동안 걸어야 하는 거리를 끈질기게 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기질이 그가 이집트에서 홀로 이십여 년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터이다. 그렇지만 그는 형들의 감정에는 둔감했다. 오죽하면 형들을 감시하러 가면서도(37,2.14 참조), 그들의 질투를 일으킬 “긴 저고리”(37,3)를 입고 나타났을까? 곧, 요셉에게 근성은 있었지만, 자기 꿈에 열중하느라 다른 건 못 보았다. 결국 편애의 상징인 저고리는 벗겨지고, 요셉은 팔려간다(37,23.28). 형들은 염소 피에 적신 옷으로 아우의 죽음을 위장하고 아버지를 기만한다(37,31-32). 그래서 야곱은 자신이 형 에사우의 ‘옷’과 ‘염소’ 고기로 아버지 이사악을 속였듯(27,1-29), 똑같은 방법으로 아들들에게 기만당한다.

 

요셉의 투옥 그리고 변모

 

이집트에서 요셉은 파라오의 내신인 포티파르의 수행원이자 재산을 총 관리하는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39,4). 그렇지만 그에게 반한 포티파르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려다 궁지에 몰리게 되고 투옥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과거의 철없고 자기중심적이던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 성장한 요셉은 마침내 이집트 재상 자리에 올라 꿈을 이루고, 기근에 시달리던 가족도 구할 수 있었다.

 

창세 37-50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한 구절로 응축된다. 야곱의 아들들은 악을 꾀했지만, 하느님께서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이다(50,20). 그 과정에서 요셉과 형제들은 한층 성숙해졌다(42,21-22 참조).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요셉과 유다(44,18-34 참조)는 훗날 북 왕국과 남 왕국을 세운다. 그렇지만 요셉은 이런 활약에도, 성조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하느님이 그에게 직접 계시하셨다는 말도, 그가 주님께 제단을 봉헌했다는 언급도 없다. 곧, 그 스스로도 고백하듯이(45,7-8), 자신은 자기 집안이 기근에서 살아남도록 돕는 도구 역할을 했던 것이다.

 

[성서와 함께, 2017년 11월호(통권 500호),]

 

 


 

 

[창세기 인물 열전] 벤야민과 벤야민의 후손들

김명숙 소피아

 

 

벤야민은 야곱의 막내아들이다. 그렇지만 그 후손인 벤야민 지파는 막둥이 이미지와 조금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맹수처럼 용맹하고 때로 잔인한 면도 보인다. 이를 예견한 야곱은 임종 전 유언에서 벤야민을 이리에 견주었다(49,27). 실제로 이스라엘 판관으로 활동한 에훗이 벤야민의 후손이고(판관 3,15 참조), 판관 19-21장에는 벤야민 지파의 야만성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런 역사를 만회라도 하듯 벤야민 지파는 이후 이스라엘의 첫 임금을 내었고(1사무 10,17-24 참조), 사울에서 바오로로 개명한 신약 시대 사도 역시 벤야민의 후손이다(로마 11,1).

 

어머니의 목숨과 맞바꾼 아들

 

라헬은 벤야민을 낳다 세상을 떠난다. 자신이 겪은 산고 때문에 아들 이름을 ‘벤 오니’라 하려 했지만, 야곱이 벤야민으로 고친다(35,18). ‘벤 오니’는 ‘내 고난의 아들’을 뜻하고 벤야민은 ‘내 오른손의 아들’이므로, 야곱이 막둥이에게 좀 더 상서로운 이름을 붙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오른쪽은 기민함, 힘, 보호력 등을 상징했다. 히브리어 ‘야민’은 ‘남쪽’이라는 뜻도 있는데, 이는 형제들 가운데 벤야민만 남쪽에서 태어났음을 시사한다. 또는 ‘야민’을 ‘야밈’의 변형으로 읽어 ‘세월’, ‘여러 날’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러면 벤야민은 ‘세월의 아들’ 곧 ‘늦둥이’를 뜻하는 이름이 된다(44,20 참조). 벤야민의 이름에 담긴 다양한 뜻 안에 그의 출생에 관한 사연이 다 함축되어 있는 셈이다. 벤야민은 라헬의 아들인데다 막둥이라서 가장 사랑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야곱이 가장 아낀 아들은 요셉이었다. 이는 어쩌면 벤야민이 자신에게서 라헬을 앗아 간 자식이라는 앙금이 야곱에게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대신 죗값을 치르다

 

성경에는 벤야민에 얽힌 이야기가 많지 않다. 그가 주목받는 때는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간 뒤부터다. 가나안에 흉년이 길어지자, 야곱의 아들들은 곡식을 구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때 그곳의 재상이던 요셉이 형제들을 알아보고 벤야민을 억지로 데려오게 한다. 그리고 형제들을 시험하려고 벤야민에게 금잔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운다(44,1-12).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이 이번에도 자기들만 살려고 동생을 희생시키지 않을까 지켜본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일은, 라헬이 아버지에게서 수호신을 훔친 창세 31,19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실제로 수호신을 훔친 라헬은 발각되지 않았고, 금잔을 훔치지 않은 벤야민은 잡힌다. 십계명에는 조상이 죗값을 치르지 않을 경우 후손이 대신 치러야 한다는 규정(31,32)이 나오는데, 이 규정이 벤야민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는 듯하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죗값을 후일 아들이 갚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벤야민의 후손들

 

벤야민은 지파들 가운데 작은 축에 속했지만(1사무 9,21 참조), 이스라엘의 첫 임금은 이 지파에서 나왔다. 사울은 능력을 인정받아 임금이 되었으나(1사무 11장), 아말렉과의 전투(1사무 15장)에서 하느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임금 아각을 사로잡고 전리품까지 일부 챙긴 일로 다윗에게 왕위를 내주어야 했다. 사실 성경에는 다윗이 사울보다 나은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이는 다윗이 도덕적으로 더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일례로, 아내도 많으면서 타인의 아내까지 욕심내 그 남편을 죽게 한 다윗에 비해, 사울은 아내 하나와 첩 하나만 두었다(1사무 14,50; 2사무 21,8 참조). 그렇지만 다윗이 사울보다 강하여 승리자가 되었으므로, 사울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 안에 갇힐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그렇게 사울 가문과 벤야민 지파는 쇠퇴한 것 같았지만 에스테르기에서 극적으로 재기한다. 페르시아 왕후가 되어 유다 민족을 구한 에스테르와 그의 사촌 모르도카이가 벤야민의 후손인 것이다. 에스 2,5은 모르도카이의 증조부 이름을 “키스”로 소개한다. 그런데 키스는 사울 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다(1사무 9,3 참조). 물론 모르도카이가 훨씬 후대 인물이라 사울 아버지에게 증손자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에스테르기는 모르도카이의 조상 가운데 사울에 얽힌 이름이 있음을 암시하여, 모르도카이가 사울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웠음을 보여 주려 한 듯하다. 유다인 몰살 음모를 꾸민 하만은 “아각 사람”(에스 3,1)이다. 아각은 사울의 몰락에 결정적 계기가 된 아말렉의 임금이기에, 하만이 아말렉의 후손임을 암시해 준다. 아각의 후손인 하만을 키스의 후손인 모르도카이가 굴복시킴으로써, 사울 가문의 옛 영광을 회복시켜 준 셈이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베드로와 쌍벽을 이룬 바오로가 벤야민의 후손이므로, 벤야민 지파의 역사는 부침 많은 세월 끝에 제자리를 찾는다.

 

[성서와 함께, 2017년 12월호(통권 500호 감사호)]

 

 


 

 

* 김명숙 님은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구약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홀리랜드대와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과 수도자 신학원에서 구약학 강의를 하였고,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