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성서와 함께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by 파스칼바이런 2018. 7. 16.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신앙의 책 마르코 복음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신앙의 책 마르코 복음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25년 전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정문에서 왼쪽으로 돌아 메소포타미아관과 그리스관을 지나면 왕의 도서관이 나온다. 베토벤의 친필 악보 등 귀한 문서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저 구석 어딘가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 약자 A 02)을 만났다. 이집트 북부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어느 유다교 회당에서 우연히 발견된 책, 5세기경에 작성된 양피지 사본, 가장 권위있는 헬라어 신약성경 필사본. 예상 밖으로 사본은 초라하게 구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 거꾸로 4세기쯤 추적해 가면 마르코 복음이 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복음서가 쓰이게 되었을까? 역사적으로 그럴듯한 추리를 따라가 보자. 우선 시리아 지역 어느 교회에서 기원후 60-70년경 예수님의 전기를 만들어 보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교회는 적절한 사람을 집필자로 선택했고 그는 우선 자료를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학계에서는 집필자를 두고 흔히 ‘복음서 저자 마르코’라 부른다. 마르코 주변의 많은 교우가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과 행적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심지어 30년경 예루살렘에 살았던 이에게서 예수님을 장례 지낸 무덤이 진짜로 비어 있었다는 증언까지 들었다(마르 16,1-8).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마르코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자료들을 모았고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마르코 복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과거 현대그룹을 이끌었던 정주영 회장의 일화를 꺼내 보자. 1992년, 당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이 나왔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왕회장》이라는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요즘 말로 하면 정주영 회장의 온갖 흑역사가 담긴 책이었다. 후일담에 따르면 당시 자서전 대필 작가가 처우에 불만을 품어 따로 보관했던 자료들을 꺼내어 출판한 것이라고 했다. 《왕회장》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왔다 하면 현대그룹에서 싹쓸이하는 바람에 서점에 책이 남아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을 해보자. 대필 작가는 정주영 회장의 자료들을 모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회장과 독대해 과거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들쑥날쑥, 오리무중이라 사건 내용은 생각나지만, 과연 언제 어디서 그 일이 있었는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정 회장 역시 그랬을 것이고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둔 터라 대필 작가는 가능하면 정 회장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며 얼마나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지 알려 주는 일화만 골라 자서전에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노라니 정 회장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화들을 따로 모아 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모인 수치스러운 일화들이 《왕회장》이라는 책으로 나올 거라 정 회장은 상상이나 했을까.

 

마르코 역시 예수님에 관련된 자료를 부지런히 모으기는 했으나 정작 그 자료들의 뿌리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를테면 하혈하는 부인의 치유 기적 사화(5,25-34)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일어났으며,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4,24)는 말씀을 한 대상과 상황을 분명히 알 수 없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최초로 만들어진 연대와 장소, 대상과 상황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마르코는 이들 자료에 적절한 자리를 잡아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마르코는 우선 기적 사화들을 전진 배치했다(1,21-28.29-31.32-34.40-45; 2,1-12). 이를 통해 독자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능력을 지닌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셈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들을 따로 모아 비유 집성문을 만들었는데(4,1-20.21-25.26-29.30-32), 여기서는 하느님 나라의 속성들이 드러난다. 이로써 놀라운 기적 능력의 소유자이자 훌륭한 가르침을 베푸는 교사로서 예수님의 모습이 부각된다. 이제 편집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기적 사화의 시작에 예수님이 회당에서 악령 들린 자를 고친 구마(驅魔) 기적 사화(1,21-28)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친 치유 기적 사화(1,29-31)가 나란히 나온다. 과연 이 두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었을까? 열쇠는 29절에 있다.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21-28절에서 회당에 머물며 귀신을 쫓아낸 예수가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려면(1,30-31) 회당에서 나와 곧바로 시몬의 집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같은 예는 마르코 복음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의 전기적, 공간적 정보는 복음서 저자의 편집 작업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포함한 고대 사본들을 보면 ‘마르코 복음’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지 않다. 그러니 원래 복음서를 집필한 사람이 ‘마르코’라는 이름을 가졌는지도 전혀 모를 일이다. 마르코라는 이름은 4세기에 활동했던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가 쓴 《교회사》와 리옹의 이레네우스 교부가 쓴 《이단 논박》에서 마르코가 베드로의 통역관이라고 한 데서 기인한다. 비록 본인이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말이 나오진 않지만 신약성경에 무려 10회나 등장하는 요한 마르코가 바로 그 사람(사도 12,12.25; 13,5.13; 15,37-39; 필레 24; 콜로 4,10; 2티모 4,11)이라는 게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다. ‘장님 문고리 잡는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때 하는 말이다.

 

비록 복음서 저자의 이름과 전력은 모른다 할지라도 그의 됨됨이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일생을 엮으면서 그리스도교 역사상 처음으로 복음서라는 전기(傳記) 양식을 도입했다. 그는 교회를 통해 내려온 자료들(통틀어 ‘교회 전승’이라 부름)을 수집해 시간, 장소 등의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각각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마르코는 교회 전승들을 동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조종하여 예수님의 일생을 정리했고, 이 작업을 통해 복음서가 탄생했다. 예수님에 관해 그가 갖고 있던 시각이 바로 복음서의 편집 원칙이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흔히 복음서의 역사의식(사관)이라 부르고 마르코 복음의 역사의식은 두말할 나위없이 ‘신앙’이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위대함을 부각시키며 그분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만 드러내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의 이름이나 지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보나 마나 1세기 그리스도교의 저명한 지도자였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1년 동안 마르코 복음을 벗 삼아 신앙 여행을 할 것이다. 더불어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예수님에게 품었던 믿음과 애정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눈먼 이를 보게 하고 귀먹은 이를 듣게 하고 더러운 영을 바다에 빠뜨리고 하느님이 누구인지 알려 주고, 결국에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죽음의 힘을 떨쳐 내고 부활한 분.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전기이자 놀라운 신앙의 교과서이다.

 

* 박태식 신부는 대한성공회 소속으로 월간 <에세이>로 등단, 월간 <춤>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입문했고, 현재 서강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공회대학교에 출강하며, 대한성공회 장애인 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으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1월호(통권 490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요한이 잡히고 난 후에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마태 1-2장; 루카 1,5-2,40)와 어린 시절의 일화(루카 2,41-52)를 다룬 전사(前史)가 나오지 않는다. 전사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라 따로 설명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도 있고, 아예 전사를 가볍게 여겼을 수도 있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중요하지 사생활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지 않은가.

 

복음서 저자로서 마르코는 예수님 사건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고 결국 예수님의 공생활만 집필 범위로 삼았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었고, 무화과나무를 순식간에 말라 죽게 했으며, 어린이를 유난히 사랑했고, 종교 지도자들과는 종종 논쟁을 벌였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이 고향을 떠나 공적인 활동을 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1,1-11). 요한에게 받은 세례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을 알리는 표시였던 것이다. 그에 걸맞게 마르코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에 대한 언급이 제법 나온다.

 

8,27-28: … 그리고 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9,11-12: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1,29-3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이 본문들을 면밀히 살펴볼 때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관계는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했을 것이고,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세례자 요한에 대한 언급이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① 먼저 예수님은 환생한 세례자 요한, 혹은 제2의 세례자 요한으로 불렸다(8,27-28). 이는 예수님의 이미지가 세례자 요한을 연상시켰거나,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 운동을 이어가는 후계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다 고대사》에는 요한이 유다 전역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이스라엘 전역에 세례 운동(혹은 ‘대각성大覺醒 운동’)을 펼치면서 임박한 심판을 앞두고 회개를 요구했다. 요한의 죽음을 다룬 6,14-29에 보면 (항간에 떠돌던 소문을 수집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요한의 정치적 입지가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② 당시 요한의 입지가 상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요한의 아류로 취급 받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예수님이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마르코 복음은 요한을 메시아의 출현을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담당한 인물로 그린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 3,23-24; 참조 집회 48,10-11). 이 구절 때문에,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는 종말이 오기 전에 반드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9,11-12에 나오는 율법 학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은 메시아 출현을 전제로 한 것이다.

 

③ 마르코 복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11,29-30에서 다시 한 번 세례자 요한을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율법 학자들이 던진 28절의 질문이 중요하다. ‘성전을 뒤엎을 수 있고 율법을 자유자재로 해석하고 함부로 구원을 선포하도록 누가 권한을 주었는가?’ 사실, 예수님의 권한은 세례자 요한에게 받은 게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다. 예수님의 반문(30절)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알고 있던 예수님의 입지(세례자 요한의 후계자)를 일거에 뒤집는 통쾌한 발언이다. 생애 마지막 예루살렘에 들어서는 순간, 예수님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앞의 세 가지 근거에 따라 상황을 추측해 볼 수 있겠다. 복음서 저자 마르코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지 정리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니 당연히 요한의 제자였으리라는 편견을 깨뜨려야 했고, 여전히 세례자 요한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그리스도인들(루카 7,18-23; 사도 18,24-19,7 참조)에게 확실한 선택을 요구해야 했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은 처음부터 선포한다.

 

1,7-8: …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이어서 세례를 받고 뭍에 오르자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 등극하고(1,9-11), 광야에서 40일 동안 악마의 유혹을 받은 후에 세상으로 나와 첫 말씀을 터뜨린다. 궁(宮) 안에 있던 코끼리마저 다리가 풀리게 만들었던 사자후(獅子吼)를 던진 것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5). 예수님은 그렇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공생활을 시작했고, 그 시기는 ‘요한이 잡힌 후’이다(14절). 요한의 시대는 지나가고 예수님의 시대가 힘차게 시작되었으니 요한은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야 옳다. 성서학계에서는 세례자 요한을 구약시대의 마지막 예언자로 정의한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구약(舊約)시대는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신약(新約)시대가 열렸다. 마르코는 이렇게 복음서의 시작을 장식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2월호(통권 491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지난 호에서 마르코 복음의 시작이 왜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건이었는지 설명했다. 또한 요한의 투옥(1,14)을 기점 삼아 시대를 구분하려는 마르코의 의도가 있었음도 지적했다. 그렇게 마르코는 예수님을 새 시대를 여는 인물로 간주했고, 그에 걸맞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복음서에 개진했다. 앞으로 한 가지씩 살펴보겠지만 ‘하느님 나라’, ‘십자가의 역설’, ‘사랑의 계명’, ‘하느님의 아들’, ‘고난받는 인자’, ‘복음’ 등, 하나같이 향후 그리스도교 2천년 역사의 이정표가 되는 신학 개념들이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4-15).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제일성(第一聲)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었다. 이곳 외에 하느님 나라를 직접 언급한 곳이 또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9,1).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13,28-30).

 

이 구절들은 모두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의 본격적인 성격은 비유를 통해 드러난다.

 

마르코는 하느님 나라의 비유들만 모아 집중적으로 4장에 배치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4,1-20), 등불의 비유(4,21-25),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4,26-29), 겨자씨의 비유(4,30-32), 깨어 있음에 대한 비유(13,32-37)가 있다. 예수님이 알려 준 하느님 나라의 비유는 사실 너무 평범해서 누군가 그 속뜻을 친절하게 알려 주지 않으면 난감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런 까닭에 라틴 교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De Civitate Dei)을 썼고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을 집필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란다. 그 방대함에 기가 딱 막힐 것이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엄청난 잠재력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비유들의 특징을 꼽아 보겠다. 우선 씨를 뿌리면 수확하는 날이 있고, 큰 나무로 자라고, 열매를 맺고, 등불을 등경에 얹으면 방이 환해진다. 아무리 멀리 갔던 주인이라도 반드시 돌아온다. 말하자면 하느님 나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런데 비유를 자세히 보면 시작은 그저 그렇다 치더라도 끝은 평범하지 않다. 나쁜 땅에 뿌려진 씨앗들은 스스로 죽어 없어지지만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들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수확 때에 낫을 대면 반드시 낟알과 쭉정이는 운명이 갈릴 테고, 큰 나무로 자라지 못하면 도끼로 쳐버려 불쏘시개를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등불이 어둠을 밝히면 몰래 감춰둔 것도 드러나고, 주인이 당도하면 못된 종은 호되게 당하고 만다. 일단 시작된 일에는 끝이 있겠지만, 끝의 양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 조금 뒤로 물러나 보자.

 

예수님 시대에는 종말-묵시 사상이 시대사조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눈에 이 세상이 빗나간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이 세상은 악의 세력이 지배하느라 인간에게 고통만 안겨 줄 뿐이고, 악화 일로를 걸어 언젠가는 멸망하게 되리라고 예견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하느님의 직접 통치가 이뤄지는 새 세상이 오게 된다. 이처럼 종말-묵시 사상 체계에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 두 세상이 들어 있다.

 

여기서 종말론과 묵시 사상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데, 종말론이 일반적으로 세상 역사에는 끝이 있다는 사고방식이라면 묵시 사상은 종말의 모습을 구체화해 가시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묵시 사상이 문학적인 틀을 입었을 때 비로소 ‘묵시문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다니엘서, 요한묵시록 등).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가뭄, 홍수, 기근, 지진, 전염병 등 갖가지 환난이 발생하고, 나라 간에는 전쟁이 터진다. 그리고 천체가 흔들리며 우주적인 파국이 닥쳐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렇게 극도의 절망과 혼란이 세상을 뒤덮고 나면 하느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만민을 단죄하고 선민을 구원하여, ‘이 세상’에서 고통받던 선민이 마침내 ‘오는 세상’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역사란 퇴보로 치닫고 있으며, 장차 극도의 혼란이 발생한 후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게 된다는 뜻이다. 종말-묵시 사상이 유다 땅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하던 시기는 대략 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 정도로 잡을 수 있으며, 예수님도 시대의 인물인지라 이 사상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 나라의 비유뿐 아니라 앞에 언급한 9,1과 13,28-30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특징은 미래성에 있다. 그러나 종말이 언제 올지,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13,32)고 하여 예수님 자신도 지존하신 하느님 앞에서 한껏 자신을 낮추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느님 나라의 미래는 온전히 하느님 손에 달려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종말이 언제 온다느니, 종말이 되면 이러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느니 하는 말은 모두 헛소리에 불과하다.

 

새천년을 앞두고 세상이 온통 들끓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이전인 1992년에 다미선교회가 나타나 우리나라를 혼란에 빠트렸던 적도 있다. 요한묵시록에서 천년왕국이 지나면 7년 동안 사탄과 큰 전쟁이 있으리라고 내다보았던 데 맞춰 1999년에서 7년을 빼 계산한 결과다. 역시 부질없는 예고였다. 어리석은 인간은 거기까지일 뿐이다. 하느님 나라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그 어느 사람, 심지어 아들인 예수님마저도 모르는 일이다. 단지 뿌려진 씨에서 열매를 거두며, 자그마한 씨에서 큰 나무가 되고, 등경에 불을 켜 어둠을 밝히며, 주인이 와서 모든 일을 셈하듯 하느님이 전적으로 주도하실 미래에 우리는 강력한 희망을 둘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다. 마르코 복음은 그렇게 세상의 앞날을 바라보았다.

 

[성서와 함께, 2017년 3월호(통권 492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지난 호에서 하느님 나라의 미래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느님 나라는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장차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 온 기대를 걸고 살아 마땅하다. 온전히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 보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몇 년 전에 자동차 브레이크를 고치러 간 적이 있었다. 정비사는 자동차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른 진단을 내렸다. 그저 닳아 빠진 앞 브레이크 라이닝만 교체하면 될 줄 알았는데 대공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라이닝은 바퀴 바깥쪽에서 브레이크를 잡아 주는 부품인데 반해 드럼이라는 부품은 바퀴 내부에서 잡아 주는 장치로, 그렇게 안팎에서 잡아 줘야 자동차가 멈출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당연히 나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정비사는 급기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바퀴 안쪽 드럼이 원형으로 점점 확장해 가고, 그렇게 확장해 바퀴 내부 안쪽 면에 드럼 판의 원이 완전히 달라붙어, 더 이상 채울 공간이 없어지면 그제야 차가 멈춘다. 말하자면 라이닝만 갈아서는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기능을 다한 드럼 판까지 교체해야 안전한 운행이 가능한 셈이었다. 나는 정비사의 설명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 냈다.

 

예수님은 ‘저절로 자라는 씨’의 비유에서 하느님 나라의 미래성뿐 아니라 현재성을 이야기한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마르 4,26-29).

 

농부가 땅에 씨를 뿌려 놓고 곡식이 익으면 수확을 한다. 앞과 뒤는 그렇게 묶이는데 그 중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고 열매를 맺고 이삭이 나오고 낟알이 영그는 과정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밤과 낮과 계절의 변화와 태양 빛과 땅의 영양소와 적절한 양의 비가 있어야 씨가 자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하느님 나라란 마치 겨자씨 한 알처럼 작지만 매 순간 땅속에서 꾸준히 자라는 것이며(4,30-32), 시간이 지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주인이 돌아오고(13,33-37), 좋은 땅에든 나쁜 땅에든 씨를 뿌리는 작업이 지금, 현재 진행되어야 미래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4,1-20). 그처럼 하느님 나라는 비록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성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비유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는 현재와 미래 사이에 길게 걸쳐 있다. 또한 하느님 나라는 현재에 머무는 게 아니라 꾸준히 움직여 나가는 특성도 있다. 이는 씨가 하루하루 자란다거나, 밀가루 반죽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이미지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즉,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이란 한곳에 멈추어 선 시간대가 아니라 움직이는 현재, 혹은 자라나는 현재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그에 반해 하느님 나라의 미래성은 장래에 닥쳐올 특정 시점을 가리킨다. 그날이 되어 곡식이 익으면 밭의 주인은 추수 때가 된 줄 알고 곧 낫을 댈 것이며, 겨자씨는 어느덧 큰 가지를 뻗을 만큼 자라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정도가 된다. 비유에 따르면 하느님 나라의 미래는 현재가 이어지고 이어져 그 축적된 힘으로 실현되는 미래이다. 요약하면, 하느님 나라는 현재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으며 이런 움직임이 성장으로 이어져 더 이상 커 나갈 여지가 없을 때,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꽉 차는 때에 바야흐로 그 완성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면 당연히 인간의 시간관념으로 도달할 수 없는 시간대, 즉 역사의 끝에 다다른다. 다만 하느님 나라의 미래성과 관련해 한 가지 명심해 둘 점은, 현재 일어나는 시대의 징조를 보아 그때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13,28-29) 특정한 시간을 미리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하느님 나라의 미래성은 그 현재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자동차 정비사는 기계치인 나에게 브레이크와 드럼의 원리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하면 드럼이 원형으로 넓어지고 마침내 차가 멈춘다. 하느님 나라도 그와 같다. 예수님의 언행을 좇아 하느님 나라를 지금 시작하면 그 축적된 힘으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가져올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이 다스리는 곳에 머물면 나는 어디에 있든지 하느님 나라에 있는 셈이니, 하느님이 배타적으로 다스리는 영역이 꼭 역사의 종말 넘어 그 어디인가에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온 우주가 하느님의 창조물이자 하느님이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정신이 박힌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켜 마땅하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한 대로다. 만일 브뤼헬의 그림 [게으름뱅이들의 천국]처럼, 푸른 풀밭에 대자로 누워 맘껏 먹고, 주변에는 포크를 꽂은 돼지가 돌아다니는 ‘천당’을 기대했다면, 그래서 살아생전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 게을렀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매우 잘못 이해한 결과다. 그런 자들은 추수 날 쭉정이처럼 처형불에 던져지리라.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 앞에서 절대 비겁해져서는 안 된다. 상위 1%가 나머지 99%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불의한 곳에 정의를, 무기 경쟁으로 온 나라를 망치려는 집권자들의 폭력이 있는 곳에 평화를 이루고, 국민을 속이고 나라를 좀먹는 부정부패에 용기 있게 도전하고, 어른들의 무관심과 책임 회피로 여전히 바다에 수장되어 있는 어린 생명의 숨통을 틔워 주어야 한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서 이 땅에 뿌리내려 숨쉬기 시작한 ‘하느님 나라’가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읽어 냈다.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 곧 하느님의 통치가 ‘여기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니 형제들이여, 그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신앙의 우등생임을 과시하며 세상을 철저히 외면하는 형제들이여, 당신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시렵니까? “하느님 나라가 오소서”라고 간청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귓전으로 흘리는 겁니까?

 

[성서와 함께, 2017년 4월호(통권 493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본디 십자가형이란 예수님 당시 로마 세계에서 아주 끔찍한 일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십자가 처형이란(단지 생명의 박탈일 뿐 아니라) 눈과 귀와 생각마저도 말살시키는” 것으로 간주했으며, 점잖은 사람이라면 입에 올리기조차 꺼렸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1세기 교회 유랑선교사들의 고민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로 받들어진 그분은 전혀 죄가 없었다고 하는데, 왜 그런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보도를 담은 이른바 ‘빈 무덤 사화’(16,1-8)가 실려있다. 사실 새벽에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예견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장례 풍습에 따라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러 갔다. 사흘쯤 지나면 시신이 썩기 시작해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시신이 있어야 할 무덤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무덤 안에 있던 흰옷을 입은 젊은이가 전해 준 말인즉슨, 예수님이 이곳에 없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험한 꼴을 보고 돌아가신 것이 불과 사흘 전인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창에 찔린 것까지 보았는데, 시신을 돌무덤에 안치하고 큰 돌덩이로 입구까지 튼튼하게 막아 놓았는데, 무덤이 비어 있다니….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습관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만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마르코는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복음서를 끝낼 생각을 하진 않았다. 이는 자신의 신앙을 바르게 반영하지 못할뿐 아니라, 1세기 그리스도 교회의 전반적인 신앙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부활 신앙’을 그럴듯한 형태로 복음서 내에 어떻게 구현시킬 수 있을까? 그는 우선 빈 무덤 사화에 집중했다. 이 사화가 예수님 부활에 대한 원초적인 증언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서였다. 무덤이 비어 있으려면 일단 시신이 사라져야 하고, 시신이 사라졌다면 시신의 행방을 물어야 하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물어야 했다.

 

상황을 좀 더 그럴듯하게 그려 보겠다. 예수님은 기원후 30년경 예루살렘 근교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골고타는 원래 사형 터로 유명한 곳이라 그날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처형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이 처리되는 과정도 더불어 지켜보았다. 어찌 됐든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 전역에서 유명세를 몹시 탔던 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흘이 지나자 갑자기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같은 소문이 있었으리라는 가능성은 마태오 복음에 상세히 나온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마태 28,12-15).

 

복음서 저자 마르코는 예수님의 시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에서 무엇인가 막강한 기운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빈 무덤이란, 설혹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였기 때문이다.

 

마르코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미 갈릴래아로 가셨고 여인들을 통해 제자들에게 자신을 만나러 갈릴래아로 오라는 특명을 내린다. 그렇다면 왜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굳이 갈릴래아로 가셨을까?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마르코 복음의 해석이 그 찬란한 빛을 발한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6-7).

 

갈릴래아가 어떤 곳인가? 바로 ‘요한이 잡힌 후’(마르 1,14)에 예수님이 독자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신 곳이 아닌가? 거기에서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내쫓고 비유를 설파하고 제자들과 생활공동체를 이끌어 갔으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예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을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갈릴래아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갈릴래아행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표시로 볼 수 있다.

 

마르코에게는, 십자가라는 모순 속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진정한 뜻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예수님의 생애는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았으며 구원사적으로 결정적 의미가 있는 삶이었음을 밝혀야 했다. 빈 무덤 사화에 등장하는 흰옷 입은 젊은이의 말 한마디로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해졌으며, 십자가의 처참했던 죽음도 그 무차별적인 권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죽음의 언어가 생명의 언어로 탈바꿈했으며 이로써 예수님의 복음 역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루카 복음과 그 후속편인 사도행전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꼼짝 말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하신다. 성령이 내려와 장차 교회가 탄생할 때를 내다본 포석이다(루카 24,49; 사도 1,4). 그에 비해 마르코가 부활을 바라보는 시각은 무척 다르다. 이를 두고 성경의 모순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제자들이 일단 갈릴래아로 가서 예수님과 하직인사를 한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교회를 창립했다든가,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탄생한 후에 제자들이 갈릴래아 현지 교회 창립을 도우러 몰려갔다든가 하는 식의 주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죄다 부질없는 시도일 뿐이다.

 

성서학을 공부하다 보면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 갑자기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입견이 사라지는 때인데, 내게는 성경에 인간의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그러한 첫 경험이었다. 그러나 빈 무덤 사화를 읽으면서 그 선입견은 다시 한 번 깨졌다. 복음서 저자 마르코의 편집 작업을 통해 예수 사건이 갖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 까닭이다. 이를 통해 마르 16,1-8, 아니 성경 자체가 성령과 인간의 합작품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르코는 십자가 사건의 기존 이미지를 깨뜨리고 그 의미를 전복시켰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예수님의 삶과 그분이 전한 복음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성서와 함께, 2017년 5월호(통권 494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공생활에 나서자 온 이스라엘이 시끄러워졌다(마르 1,28). 여기저기서 그분에 대한 풍설이 오가기 시작했는데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1,27), “이 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2,7),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2,12),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3,22).

 

이뿐만 아니다.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3,22),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4,41),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6,2) 이 정도만 읽어 봐도 충분하다.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이스라엘 전체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분은 누구일까?

 

예수님이 활동했던 당시만 해도 아직 그분의 정체가 오리무중이었다. 예수님의 참 정체 -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 - 를 사람들이 몰랐기에, 각자 자신이 받은 인상대로 예수님의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고 그에 따라 실로 많은 이름이 복음에 등장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자렛 예수’는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이 너무나 흔했기에, 동명의 다른 이들과 구별하기 위해 출신지를 붙인 이름이다. 이외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양하게 불렀다. 예수님의 신기한 기적을 보고서는 ‘놀라운 분’, 예수님의 기적을 마귀의 힘을 빌린 것으로 폄하할 때는 ‘베엘제불이 들린 이’, 율법 해석에 탁월한 모습에는 ‘라삐’, 세례자 요한의 뒤를 잇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는 ‘환생한 요한’, 먹고 마시는 데 거침이 없어 보일 때는 ‘먹보에 술꾼’, 그분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서는 ‘죄인과 세리의 친구’, 종말 심판을 선언한 예언자와 견주는 의미에서 ‘예언자’와 ‘엘리야’, 다윗 시대를 재현하리라는 기대에서 ‘다윗의 후손’과 ‘메시아’ 등.

 

교회 시대로 넘어가면서 그 이름은 더욱 다양해졌다. 하느님의 전권을 물려받은 ‘하느님의 아들’, 여타 인물과 비교 불가능한 오직 하나뿐인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 인류의 죄를 없애 주는 ‘어린양’,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만사형통의 ‘전능자’, 장차 심판자로 재림할 ‘인자(人子)’, 하느님과 동일한 분으로서 ‘말씀’(로고스) 등. 이 중 가장 보편적인 이름이 바로 ‘이에수스 크리스토스’(예수 그리스도)다. 이에수스는 ‘예수(아)’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그리스어 음역이고 그리스토스는 ‘메시아’의 번역이니 역사와 신앙을 관통하는 이름인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예수’가 평범한 이름이라면 ‘메시아’는 특별한 이름이다.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던 그 옛날 다윗 왕처럼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도탄에서 구해 낼 인물과 관련된 호칭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학자들은 이 이름에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라는 두 차원이 들어 있다고 본다. 후대의 시각으로 이름을 분석한 것이다.

 

‘메시아’는 원래 정치적 성격을 지닌 호칭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은 딱히 메시아의 그것이라고만 보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마르코 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려 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마르 12,35-37).

 

마르코가 활동했던 1세기 교회는 전통적인 메시아 상象에 다채로운 변화를 부여했다. 이를테면, 고난받는 메시아, 재림할 인자 메시아, 종교적인 메시아 등등이다. 마르코는 예수님을 메시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권위 있는 분으로 설정해 메시아의 원조 격인 다윗도 섬겨 마땅한 분으로서 예수님을 부각했다. 다윗마저 주님으로 섬긴 존재가 어떻게 다윗의 아류가 되느냐는 말이다. 실제로 마르코는 유독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에 집착했다.

 

‘하느님의 아들’은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대표적인 예수님의 정체로서 복음서 전반에 등장한다(1,1; 9,7; 15,39). 예수님은 1,9-11에서 세례를 받고 뭍에 오르면서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된다. 이 호칭에는 부자간의 돈독한 관계 외에 예수님이 아버지의 전권(全權)을 물려받았으며,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아들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예수님이 궁극적 구원자인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원래 구약성경에서 따온 개념으로 하느님과 가까운 이들, 예를 들어 왕이나 사제,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을 통틀어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렀다(시편 2,7 등등). 그러나 마르코 복음에 사용된 ‘하느님의 아들’은 예수님과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구약성경의 쓰임새와는 매우 다르다.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임은 오히려 더러운 영들이 잘 알아보았다고 한다(마르 3,11).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훑어보면 사람들은 화려한 이름을 붙이는 데 열성을 다 했던 것 같다. 가능한 한 많은 호칭을 지녀야 위대해진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예를 들어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서방 교회 최고의 사제이며, 총대주교이며, 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이며, 바티칸 시국의 원수(元首)이며,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며, 현세 교회를 통괄하는 최고 사목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로 교황을 부르는 ‘파파’(Papa)는 ‘아버지’라는 뜻의 papas에서 유래했다. 실제로는 상당히 긴 이름을 가진 분이 교황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호칭은 그저 편하게 부르는 ‘파파’이다.

 

복음서 저자 마르코는 다음과 같은 말로 복음서를 시작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1). 그는 예수님의 모든 업적을 이 ‘간결한’ 문구로 정리했다. 하지만 이 ‘간결함’이 의미하는 생각의 너비와 깊이는 거대하다. 예수님의 정체를 대변하는 이름 ‘하느님의 아들’은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을 넘어 기나긴 교회의 역사를 좇아오면서 빼어난 가치를 만들어 냈다. 마르코의 혜안이 만들어 낸 결과다. 마르코 복음은 잘라 말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성서와 함께, 2017년 6월호(통권 495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사랑이 최고입니다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다. 아니, 그보다는 세상 어느 종교보다 사랑을 강조한다고 단정해도 좋을 법하다. 그런데 말이 쉬워 사랑이지 이를 실제 삶에 적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에서 기치로 내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한다’는 뜻의 박애(博愛)는 어떠한가? 혁명 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오늘날 이는 허무한 말로 들리기 십상이다. 세계시민을 자처하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면 혹시 가능할까, 일개 시민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박애의 적극적인 표현을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 할 때 말이다.

 

세계시민이 아닌 바엔 이웃부터 사랑하면 될 게 아니냐는 후속 질문이 가능한데, 이 역시 단순하지 않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고부간 갈등이라든가 유산 문제로 원수가 된 형제가 얼마나 많은가. 추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거기에다 나라 사랑, 지구 사랑, 환경 사랑 등으로 개념을 확대시키면 더더욱 사랑이라는 말이 낯설어진다. 그리스도교의 사랑도 자칫하면 추상적인 차원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이런 때는 사랑의 원조 격인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는 게 상책이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은 극적이었다. 나귀를 타고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그분은 곧바로 성전에서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고,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꾸짖었다. 때는 마침 파스카 축제 기간이라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교 베타니아에 기거하면서 매일 아침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그분을 노렸던 종교지도자들은(3,6) 더 이상 사태를 좌시할 수 없었다. 도대체 성전에서조차 난동을 벌이는 자를 어떻게 허용할 수 있겠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14,1).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을 다짜고짜 체포할순 없는 노릇이었다. 명실공히 메시아 칭호를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인물이었으니(11,9). 먼저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예수님의 명성에 흠집을 내야 했다. 확실한 방법은 종교적 · 사회적 ·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듣는 것이었다. 그 대답 중에 틀림없이 약점이 잡힐 테고, 이 상황을 목격한 군중은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 체포, 처단하면 된다.

 

예수님에게 공개적인 질문을 던질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믿고 이렇게 나서는지 그분의 권한을 문제 삼았고(11,27-33),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를 제기했으며(12,13-17),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를 가르는 논쟁의 대척점인 부활 신앙을 빌미 삼았고(12,18-27), 메시아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었으며(12,35-40), 이번 호의 주제이기도 한 율법의 최고 계명을 가려내 보라(12,28-34) 했다. 사실 질문 하나하나가 매우 까다로워 길을 제대로 찾지 않으면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이제 어느 율법 학자가 예수님에게 묻는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12,28)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12,29-31).

 

잘 알려진 사랑의 이중계명이다. 하느님과 사람을 열심히 사랑하면, 모든 율법 조항을 - 예수님 시대에는 613가지로 이를 정리해 놓았는데 - 완벽하게 만족시킨다.

 

여기서 고려할 사실은 예수님이 베푼 가르침에 ‘사랑의 계명’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얼추 생각나는 것만 정리해도 내가 이웃에게 바라는 그대로 이웃에게 해 주라는 ‘황금률’(마태 7,12), 규정보다는 정신이라는 ‘율법 해석’(7,1-23),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본질을 밝힌 ‘행복론’(마태 5,3-12), 장차 다가올 하느님의 심판을 겨냥한 ‘종말론’(13장) 등이 있다. 실로 금쪽같은 가르침들이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마르코 복음에서는 ‘사랑의 계명’을 예수님의 가르침 중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율법학자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사랑의 계명’은 비단 마르코 복음에서 강조된 데 그치지 않고 신약성경 전반에서 널리 발견된다. 시리아 지역에서 집필된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 에페소에서 완성된 요한계 문헌, 소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며 쓴 바오로의 편지들인데, ‘사랑의 계명’이 지중해권 전역에서 거대 담론을 형성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수많은 종교의 각축장이었던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의 존재를 제국 내에 확실히 알리고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거기에 사랑에 대한 의미 추구 과정이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식 표상에서 벗어나 세계화의 길을 걷게 만드는 전기가 됐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하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12,33).

 

유다교는 신앙행위의 중심에 제사를 배치시켰다. 예루살렘 성전 순례와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제단에 바쳐 자신의 변함없는 하느님 공경을 다짐하는 게 유다인의 의무였다. 기원후 70년에 로마군의 성전 파괴로 더 이상 순례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후 지금까지도 유다인들은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언젠가 이 자리에 성전이 다시 세워질 날을 기대하며.

 

‘사랑의 계명’은 그리스도교가 세계화되는 초석이었다. 유다교와 구별되는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의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마르코 복음의 위대한 면은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사랑을 최고의 자리에 놓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신앙으로서 자부심을 느껴 당당하게 세계를 상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상의 도전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을 이렇게 구체화한 셈이다.

 

장미는 스스로 아름다움을 자랑하거나 자기에게서 나는 향기를 맡아 보라 하지 않는다. 구태여 사실을 전달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보수 신앙을 가진 어느 영국 여성이 선교의 필요성을 간디에게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간디는 장미의 넘치는 매력에 빗대어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설명했다.

 

오늘날 교회는 다시 한 번 도전을 받고 있다. 왜 세상이 이 모양으로 흘러가는지, 왜 그리스도교가 세상을 갈라놓는 데 앞장서는 인상을 주는지, 그리고 왜 이 시대가 그리스도교에서 내세우는 복음의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지 답을 달라고….

 

“그리스도인이여, 한 떨기 장미처럼 스스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시오!” 예수님의 명령이 천둥처럼 들려온다.

 

[성서와 함께, 2017년 7월호(통권 496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예수님의 경제관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지난 해 말부터 전 국민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최순실! 처음에는 그저 대통령의 비공식 자문 역할을 하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자세히 내막이 드러났다. 그녀는 대통령의 조용한 자문 역할에 만족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비선 실세였다. 온갖 인사를 마음대로 주물렀고, 딸의 장래를 위해 불법적인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정부가 벌이는 사업에 빠짐없이 참여해 이권을 챙겼고,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쥐고 흔들었다. 언론에 비쳤던 세련된 옷차림과 광택 피부를 가진 대통령은 실은 그녀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최순실은 항변한다. 이 모든 게 대통령을 위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그녀의 말을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최순실은 욕심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혹은 욕심을 통제하는 법을 어디서도 배워 본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게 옳을지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자매나 친구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불행하여라, 욕심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여!

 

어느 날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다가왔다. 당시의 열악한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그가 부자라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옷 입은 모습에서 차이가 났고 체격도 남달랐다. 잘 먹고 잘사는 태가 물씬 풍겼다. 그 청년은 예수님에게 영원한 생명을 구한다. ‘영원한 생명’을 헬라어로 보면 ‘조에 아이오노에’이고, 하느님께서 종말 심판에 사용하실 각 사람의 치부책인 ‘생명(조에)의 책’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구원’이 연상된다. 즉, 부자 청년은 재물과 동시에 자신의 구원까지 챙기려 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자 그는 울상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러보며 말씀한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힘들다”(23절). 제자들이 반문하기를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26절) 부자 청년의 질문이 구원을 겨냥한 것이기에 제자들 역시 ‘구원’을 입에 올린 셈이다.

 

이야기의 절정은 베드로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상황을 지켜본 베드로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28절). 읽기에 따라서는 수제자라는 사람이 품위 없이 나서는 것처럼 들린다. 다들 멀어져 가는 부자 청년의 슬픈 뒷모습을 바라보는 판국에 물색없이 나서서 잘난 체를 하다니. 이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가 놀랍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10,29-31).

 

예수님의 평가에는 다양한 말씀이 모여 있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흔히 ‘단절어 집성문’이라고 하는데 복음서 작가가 여기저기서 모은 전승들을 주제에 맞게 열거하는 편집 방법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베드로의 다짐을 빌미삼아 이와 관련된 예수님의 짧은 말씀들을 한 대목에 몰아넣는 것이다. 실제로 29절은 마르 3,31-35를 연상시키고, 30절은 1세기 그리스도교의 박해 상황을 그 뿌리로 삼으며, 31절은 예수님 당시 유행어였다(마태 19,30; 20,16; 루카 13,30). 그러니 편집 방법(단절어 집성문)을 고려해 볼 때, 마르코가 읽어 낸 예수님의 경제관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제자 공동체에 들어오라고 한다. 복음서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예수님 일행의 살림을 꾸리는 일은 제자단의 몫이었다. 제자들은 음식을 마련해 두어야 할 책임이 있었고(마태 16,5-7; 요한 4,31-33), 최후의 만찬을 할 장소와 음식을 준비할 임무를 맡았으며(14,12-16), 훗날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는 예수 일행의 자금을 관리했다(요한 12,6). 그리고 여성들의 역할도 중요한데 그녀들은 재산을 팔아 예수를 도왔고(루카 8,3), 예수의 시중을 들었으며(15,41),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러 무덤을 찾아갔다(16,1). 그런 제반 상황을 살펴볼 때 제자단은 예수님을 우두머리로 한 일종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공동체 살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은 재산의 전적인 포기를 요구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일단 나누어 주고, 한동안 또 모은 다음 다시 나누어 주는 식이 아니라 아예 사유재산권의 포기를 선언했다. 베드로는 그 점을 분명히 했고 예수님은 포기할 대상에 가족까지 포함시켰다. ‘사유재산권의 포기’는 생활공동체의 경제원칙이었던 것이다. 마르코는 그렇게 부자 청년 이야기에 베드로를 섞어 넣음으로써 역사의 예수님이 갖고 있었던 경제관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다운 삶을 떠받치기 위한 대책 마련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인간은 세끼 밥과 입성과 비바람을 막아 줄 장소를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일단 내일 먹을 빵과 내일 입을 옷이 있어야 밤잠을 잘 수 있는 노릇이었다. 예수님 역시 인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제시한 원칙이 생활공동체였다. 나눌수록 점점 더 커지는 구원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안정된 생활수준이라는 게 간단히 정의 내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로마 시대 말기로 갈수록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생활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마침내 로마 귀족들에게 도덕적 붕괴가 찾아왔고 그들의 부는 제국이 멸망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우리 시대의 부자도 마찬가지다. 단단하고 품위 있는 악어 핸드백 하나를 소유하려면 우선 살아 있는 악어를 죽여야 하고, 뻣뻣한 가죽을 다스리려 독한 화학약품에 담가 두어야 하며, 아프리카 소년소녀의 작은 손으로 무두질을 해야 한다. 생명 파괴와 자연 파괴와 어린 노동력 착취가 이루어지고 만다.

 

간디는 예수님을 두고 위대한 경제학자라 불렀다. 특히, 예수님의 경제관은 시공을 초월해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돈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파고들어가 이권을 챙긴 최순실의 경우, 그 뒤에서 고통을 겪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많은 사람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실망한 채 돌아 간 부자 청년이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넘기고 예수님에게 다시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아마 예수님은 입을 맞추며 환영했을 테고 청년은 예수님의 공동체에서 난생 처음 자유를 맛보았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에서 전하는 예수님 덕분에 세상은 더욱 풍요해졌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역시 예수님은 최고의 경제학자다.

 

[성서와 함께, 2017년 8월호(통권 497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베드로는 어쩌다가 수제자가 되었나?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베드로는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다. 베드로 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수제자였으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한 후 예루살렘 모교회의 수장으로 1세기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갈라2,9), 순방하는 곳곳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으니(1코린 9,5) 그만하면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던 일화들을 떠올리면 수제자의 맘이 마냥 편했을 것 같진 않다.

 

베드로는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예수님 앞에서 돌아가신다는 게 무슨 소리냐며 펄펄 뛰다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는 호된 꾸지람을 들었고(8,32-33), 예수님을 배신한 바 있으며(14,66-72), 지조 없이 갈팡질팡하다가 바오로 사도에게 호되게 당한 전력이 있다(갈라 2,11-14). 특히, 갈라디아서와 마르코 복음이 쓰인 시기가 기원후 50-70년이라는 점과 베드로 전승들은 그보다 훨씬 전에 성립되었으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베드로 자신도 교회 내에서 오가는 자신의 일화를 잘 알고 있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원래 발보다 빠른 게 말이지 않는가. 이른바 수제자라는 사람이 그 정도였으니!

 

지난 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공동체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부자 청년을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던 게 예수님의 공동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쯤이면 공동체에 들어오려고 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일종의 공동체 원칙이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먼저 제자들을 모았는데 제자들의 소명사화가 제법 여러 곳에 나온다(1,16-20; 2,14; 3,13-19).

 

그중 열두 제자의 명단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예수님과 가까운 사람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 이들은 고향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길을 나선 출가(出家)제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재가(在家)제자들도 있었다. 이름이 알려진 몇몇 제자를 꼽아 보면, 회당장 야이로(5,22), 베타니아의 나병 환자 시몬(14,3), 예수님의 무덤을 마련한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15,42-47), 그리고 예수님의 친구로 불린 라자로 등이 있다(요한 11,1-44). 이들에겐 각자 사는 곳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책임이 주어졌다.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5,18-20).

 

출가제자가 되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가족과 생계를 떠나야 했음은 물론 복음을 전하는 과정도 그리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이들에겐 충분한 교육과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수였겠지만 제자들의 모습은 영 시원치 않아 보인다. 아니, 마르코 복음의 제자들은 오히려 한심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는 게 옳을지 모른다.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종종 책망했는데, 그 표현도 다양하다.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8,18),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8,21),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4,13),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40),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7,18)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예수님은 제자들만 불러 모아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교육을 시켰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따로 풀이해 주고(4,13-20), 마음이 무디어진 제자들에게 충격요법을 사용하며(6,45-52), 간단한 말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 부득불 다시금 풀어 설명하고(7,17-23), 마침내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라며 제자들의 무능력을 탓한다(9,19).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면 예수님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다짐도 꼽을 수 있다. 병자들을 고치고 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다짐을 하고(1,34.44; 7,36), 더러운 영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리며(1,25; 3,12), 기적을 목격한 이들에게조차 소문내지 말라고 한다(5,43; 7,36). 그리고 예수님의 변모(變貌)를 체험한 제자들에게도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9,9)고 단단히 당부를 한다.

 

정리하면 ‘몰이해’, ‘특별 교육’, ‘함구령’을 제자들의 대표적인 모티브로 꼽을 수 있다. 독일의 성서학자 브레데(W. Wrede)는 이 세 모티브를 바탕으로 이른바 ‘메시아 비밀 사상’이 마르코 복음의 편집 사상이라는 주장을 폈고, 여기에 십자가 사건이 투영된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세 모티브를 통해 메시아인 예수님의 존재가 공생활 기간에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가 종국에 드러난 것처럼, 십자가 사건도 겉으로는 실패로 보이지만 결국 성공을 거두리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발한 목적은 분명하다. 함께 다니며 하느님 나라에 대해 배우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협력자의 역할을 맡기려는 것이다. 제자들의 입장에선 추종과 파견으로 볼 수 있겠는데, 이것이 같은 사람들을 두고 ‘12 제자’와 ‘12 사도’라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대로 마르코 복음의 제자상은, 제자 선발이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허약하다.

 

제자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 있다. 예루살렘으로 행진해 들어갈 무렵, 거사 성공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있을 때 높은 자리를 미리 부탁하고(10,35-45), 스승은 죽음을 앞두고 공포와 번민에 싸여 밤새워 기도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가하게 잠이나 자고(14,32-41),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되자 일시에 줄행랑을 놓은 것을 보면, ‘메시아 비밀 사상’이 아니더라도 솔직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약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마음은 원하지만 몸이 약한” 자들, 곧 제자들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비록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일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뿌려 놓은 씨앗은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수확을 내게 될 것이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4,8).

 

베드로는 평생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살았을 테고 끊임없는 자성(自省)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했으리라. 뒤만 돌아서면 “저 사람 베드로, 멀쩡해 보이지만 세 번이나 배신했다네 그려” 하는 소리를 주위에서 해 대는 판이었다. 베드로의 삶에 드리워진 멍에가 충분히 짐작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가장 깊은 영성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 선택은 두말할 나위 없이 탁월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9월호(통권 498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여기서 꺼져라! 사탄아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만일 남미 저 시골구석에 사는 어떤 노인이 물 위를 걸었다는 해외뉴스를 접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선 무엇인가 속임수가 있는지 궁금해할 테고 만일 사실이라면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연구할 것이다. 그러면 소금쟁이처럼 표면장력을 이용한다거나 바실리스크 도마뱀처럼 한발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신속하게 옮기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오늘날에는 기적이라는 게 다 그 모양이다. 유행어처럼 ‘아니면 말고’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남미의 어느 해방 신학자가 주장했듯 각자 꽁꽁 숨겨 둔 음식을 다 내놓아 나눠 먹었더니 5천 명이 넉넉히 배를 채우고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고 하는 것도 맘에 와닿지 않는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인간의 이기심을 버린 게 진짜 기적이라는 인간 심리에 의존한 설명인데, 교회의 공식 가르침에 따르면 딴 주소에서나 가능한 소리다. 교회는 실제 초자연적 현상만 기적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기적의 원주소는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예수님에게 있다.

 

예수님은 공생활 내내 곳곳에서 많은 기적을 베풀었다. 네 복음서에 보도된 것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적이 다 똑같은 기적은 아니다. 기적마다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 일일이 따로 분류를 해 주어야 전체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씩 살펴보기 전에 종류부터 개괄해 보면, 치유 기적, 구마 기적, 자연 기적, 음식 기적, 소생 기적, 구원 기적 등이 있다.

 

우선 예수님은 누구든 육체적인 고통에 빠져 있는 이를 볼 때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언제부터 불행을 겪게 되었는지, 그리고 치유받아 건강이 회복되는 과정까지 자세하게 점검했다. 그래서 들것에 실려서야 겨우 움직이는 중풍 병자를 일으켜 세우고(2,1-12), 눈 먼 이에게 손을 얹은 후 무엇이 좀 보이는지 확인했다(8,22-26). 하지만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도 단지 한 사람만 감사를 표하러 왔을 뿐이다(루카 17,11-19). 치유 기적의 동기가 오로지 예수님의 연민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증명해 주는 보도다.

 

길을 가던 예수님 앞에 더러운 영이 들린 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예수님은 더러운 영과 통성명하고(5,9-10), 사람에게서 내쫓아(1,21-26) 결국 파멸시켰다(5,11-13). 이는 예수님이 더러운 영으로 대변되는 악의 세력을 제압하는 막강한 권한을 하느님에게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1,27-28).

 

예수님은 종종 자연물을 대상으로 놀라운 기적을 행했다. 무화과나무를 단숨에 말라죽게 하였고(11,12-14.20-21), 몰아치던 풍랑을 꾸짖어 갈릴래아 호수를 평온하게 만들었으며(4,35-41), 마치 평지를 걷듯 수면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왔다(6,45-50).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한 어떤 기적보다도 자연 기적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 같다. 사실 자연은 하느님의 창조물로 그분의 고유 영역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풍랑과 중력과 생명 등 창조 세계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으니 하느님에 버금가는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수님을 쫓아 나선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래서 예수님께 민생고를 좀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했던 모양인데 마르코 복음에서는 그런 일이 두 번 있었다고 전한다(6,30-44; 8,1-9). 이때도 그 답답한 제자들은 예수님께 반문한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6,37) 하지만 예수님은 군중을 목자 없는 양처럼 가엾게 여겨 빵을 먹였다고 하는데(6,34) 여기 쓰인 동사가 ‘스플랑크니조마이’, 곧 ‘불쌍히 여기다’이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전문용어(technical term)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가진 분이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6,34).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살려 냈다(5,21-43). 어느 날인가 회당장 야이로가 다 죽게 된 딸을 살려 달라며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야이로를 앞장세워 그의 집으로 향하던 예수님 앞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인이 나타났고 시간이 지체되어 그만 딸은 죽고 말았다. 이때 사람들이 와 이미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께서 굳이 집에 오실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야이로는 매우 섭섭했을 것이다. 조금만 서둘렀으면 딸이 살았을텐데…. 하지만 죽음도 예수님의 의지를 막아 내진 못했으니, 야이로의 딸은 살아났고, 이 논리는 그대로 예수님의 부활까지 이어진다. 즉 ‘소생 기적’은 예수님 부활의 암시이다.

 

마지막으로 ‘구원 기적’을 보자. 제자들은 한밤중에 역풍에 휩싸여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었고(6,45-52), 거센 바람이 불어 배가 침몰할 위기에 놓여 떨었다(4,35-41). 또한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은 병든 딸을 위해 예수님의 식사 자리에 염치 불고하고 뛰어들었다(7,24-30). 그러자 예수님은 풍랑을 잠잠케 하고, 물 위를 걸어와 제자들을 구해 주었으며, 구원 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던 이방 여인의 절박함을 풀어 주었다. 예수님을 모시면 어떤 위험에 빠진 사람이라도 구원받으며 여기에는 유다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다.

 

이제까지 여섯 종류의 ‘기적 사화’를 살펴보았고 하나하나마다 의도가 들어 있었음을 확인했다. 원래 ‘기적 사화’의 특징은 인간의 행적 중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야기로 꾸민 데 있다. 그리고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의 기적 사화들은 아예 구성 면에서 공통점이 눈에 띈다. 상황 묘사, 예수님이 행한 기적, 기적이 진짜였음을 증명하는 기적의 실증 등 세 단계 구성이다. 여기에 목격자의 반응이 더해지거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적 사화를 끝맺는 경우도 있지만, 기적 사화의 기본 틀은 변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마르코 복음의 기적 사화에서는 뚜렷한 역사의식, 곧 ‘신앙’이 발견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여 주려는 목적으로 기적 사화를 사용한 것이다.

 

마르코 복음의 기적 보도에서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였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과학 지식이 부족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기적이란 오히려 자연스러운 세상 이치라서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 관점은 문명이 발달할 대로 발달한 오늘의 시각과 큰 간격이 느껴진다. 그러므로 복음서에서는 기적의 규모보다 그 기적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씀의 내용이 매우 중요했다. 마르코에게 예수님의 기적은 그분이 하느님의 전권(全權)을 부여받은 분으로서 악의 세력을 축출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10월호(통권 499호)]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마지막 회)]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박태식 신부(대한성공회 소속)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이전의 대통령과는 다른 몇 가지 점이 언론을 탔다. 새 대통령은 십수 년 된 구두와 안경을 착용할 만큼 검소하고 식당에서 전용차 운전사의 빈 그릇을 대신 치워 줄 정도로 겸손하며 웃옷을 벗고 수석 회의를 주재하는 소탈한 인물이다. 게다가 출근 때는 부인의 배웅을 받으며 약간의 잔소리까지 듣는 서민적인 모습도 있다. 전(前) 대통령은 소통이 안되고 가족도 없는 외톨이로 늘 혼자 지내며 최고급 의상에 전용 화장실까지 필요했다. 그러니 누가 과연 양쪽을 비교하지 않겠는가? 마르코가 전하는 예수님도 전적으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메시아 출현에 대한 기대가 어느 시대보다 높았다고 한다.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으며, 유다교 종교 권력의 압제, 잦은 기근과 재해까지 겹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백성의 살림살이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무엇인가 획기적인 사건이 필요했고 이를 구약성경의 위대했던 시절에 투영했다.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다윗 같은 영웅, 곧 ‘메시아가 다시 나타나 우리를 이끌어 주면 좋으련만!’ 이런 기대를 걸기에 적합한 인물이 바로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탁월한 이야기 솜씨로 백성을 가르치고 수시로 치유 기적을 베풀어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 주었으며, 과단성 있는 행동과 말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벗겨내 억눌린 백성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백성의 추앙을 받던 세례자 요한마저 예수님을 존경했다고 하니 도대체 이런 사람이 아니면 과연 누가 메시아일 수 있을까.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함구령이라든가(1,25.34 등), 제자들의 몰이해라든가(4,13.40 등), 제자 특수교육(4,10-25.34 등)이 그 증거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직전 예리코에 도착했을 때 별난 일이 터졌다.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10,48-50).

 

바르티매오가 외친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와 같은 뜻의 호칭이니 이제까지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겨 왔던 예수님의 행적을 볼 때 예외적인 경우였다. 예수님은 함구령을 내리기는커녕 그를 불러 그의 병을 공개적으로 고쳐 주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일행에 동참시켰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환히 밝히기(11-13장) 직전에 ‘치유 기적’ 한 가지를 먼저 보여 준 것이다. 혹은 바르티매오가 비록 맹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참 정체를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지녔다는 말일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한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12,35-37)

 

이때 예수님은 구약성경 시편을 인용해서 다윗마저 주님으로 섬긴 분을 어찌 다윗의 후손이라 부를 수 있냐고 역질문을 하여, 당신이 결코 ‘다윗의 뒤를 잇는 메시아’, 세상의 기대에 들어맞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바르티매오의 ‘다윗의 자손’과 이곳의 ‘다윗의 자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실제 메시아였던 예수님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다윗은 이스라엘 어느 시대에도 이룩해 내지 못한 업적을 세웠는데, 남북의 열두 지파를 통일했고 국력을 키워 주변 나라들에서 조공까지 받을 정도였다. 막강한 통솔력과 뚜렷한 소신을 가진 예수님 역시 다윗 못지않은 행동으로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부활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무장 혁명을 꿈꾸던 열혈당원들에게는 예수님 같은 인물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백성이여 봉기하라. 나라를 뒤집어엎읍시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총독에게 무력하게 당하고 말았다.

 

‘메시아’라는 호칭을 두고 1세기 교회는 고민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했던 메시아를 훌쩍 뛰어넘는 가치를 가진 분으로 예수님을 부각해야 했던 것이다. 우선 예수님이 온 유다 땅에서 메시아로 추앙받았다는 현실에 눈감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메시아가 기적을 베풀었다’는 기록은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부르는 바르티매오를 통해 메시아 상을 새롭게 정의 내릴 수 있으니, 곧 기적 능력을 가진 메시아인 것이다(10,46-52). 알다시피 마르코 복음에서 기적이란 악의 세력을 제압하는 권위가 예수님에게 주어졌음을 알려 주는 표시이며, 하느님에게만 적용되는 용어(Kyrie elé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를 예수님에게도 적용한 게 그 증거다. 기존의 메시아와 전혀 다른 정체를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예수님은 부정한다. 예수님은 다윗이 섬겼으면 섬겼지 결코 그의 후손이 될 수 없는 ‘다윗의 주님’이다(12,35-37).

 

인류는 이제까지 ‘메시아주의’를 표방하는 사상을 많이 접해 왔다. 최근의 예로 ‘백두혈통’이라는 북한의 시대착오적 발상이나 지난 세기말에 나왔던 [매트릭스]라는 영화도 ‘메시아주의’를 표방한다. 오늘의 교회 역시 예수님을 일컬어 ‘메시아’로 부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메시아가 원래 정치적 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태반이다. 그러니 아무 단서 조항 없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부르는 것은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고민을 외면하는 일이다. 복음서 작가 마르코도 같은 고민을 했고 예수님이 결코 이스라엘식 표상에 맞춘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분은 고난받는 메시아이자, 기적을 베푸는 메시아, 다윗마저 섬겼던 메시아다. 메시아라는 이름을 섣불리 붙여 예수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 주변에서도 정치적인 메시아로 그분을 받들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테다. 성질 급한 베드로나 열혈당원이었던 시몬(3,18)이 그 중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8,33).

 

[성서와 함께, 2017년 11월호(통권 500호)]

 

 


 

박태식 신부는 대한성공회 소속으로 월간 <에세이>로 등단, 월간 <춤>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입문했고, 현재 서강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공회대학교에 출강하며, 대한성공회 장애인 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