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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 시인 / 滴 ―다시 쓰는, ‘자라’를 읽기 위한 세 개의 에스키스
1 저기, 둥글고 납작한 시선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바닥을 수평으로 만들어 주는 시선, 바닥의 홍수에서 방주처럼 건져 줄 시선.
마치 세계의 무게를 겹겹이 껴입은 듯 척추가 무거운 갑피로 변한 등짝에 짓눌린 채
때로는 동굴의 벽화 같은 문양으로 얼룩지면서도, 그것이 슬픔의 무게가 아니라는 듯이
자는 것과 자라는 것을 무슨 자웅동체처럼 지니고 자라는 것과 자라라는 것 사이의, 그 동음이의어 속에서
2 저기, 0이 하나 떨어져 있네 마치 커다란 호수가 떨어트린 물방울처럼
그 0이 숫자 1을 꺼내듯 몸속에서 물갈퀴가 달린 네 개의 발을 꺼내지 않았다면 파이프를 문 모자처럼, 목을 내밀지 않았다면 아마 뒹굴어 다니는 돌처럼 보였을 것이네 보잘 것 없는, 뭉툭한 돌멩이
대체 자는 것인지 자라는 것인지 모를, 자라는
3 자라는 참, 꼭 물의 눈 같다. 수면 아래 물의 눈꺼풀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다가 고요한 때면 드러나는, 저 물의 눈망울
저기, 자라가 물 위로 떠오른다. 저 물의 눈망울에 비치는 것이 선한 구름, 바람 같은 얼굴들이였으면 좋겠다
계간 『포엠포엠』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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