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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용 시인 / 滴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0.

김신용 시인 / 滴

 ―다시 쓰는, ‘자라’를 읽기 위한 세 개의 에스키스

 

 

1

저기, 둥글고 납작한 시선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바닥을 수평으로 만들어 주는

시선, 바닥의

홍수에서 방주처럼 건져 줄

시선.

 

마치 세계의 무게를 겹겹이 껴입은 듯

척추가 무거운 갑피로 변한 등짝에 짓눌린 채

 

때로는 동굴의 벽화 같은 문양으로

얼룩지면서도, 그것이

슬픔의 무게가 아니라는 듯이

 

자는 것과 자라는 것을 무슨 자웅동체처럼 지니고

자라는 것과 자라라는 것 사이의, 그 동음이의어 속에서

 

2

저기, 0이 하나 떨어져 있네

마치 커다란 호수가 떨어트린 물방울처럼

 

그 0이 숫자 1을 꺼내듯 몸속에서 물갈퀴가 달린 네 개의 발을 꺼내지 않았다면

파이프를 문 모자처럼, 목을 내밀지 않았다면

아마 뒹굴어 다니는 돌처럼 보였을 것이네

보잘 것 없는, 뭉툭한 돌멩이

 

대체 자는 것인지

자라는 것인지 모를, 자라는

 

3

자라는 참, 꼭 물의 눈 같다. 수면 아래 물의 눈꺼풀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다가 고요한 때면 드러나는, 저 물의 눈망울

 

저기, 자라가 물 위로 떠오른다. 저 물의 눈망울에 비치는 것이 선한 구름, 바람 같은 얼굴들이였으면 좋겠다

 

계간 『포엠포엠』 2018년 봄호 발표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출생.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1988), 『개 같은 날들의 기록』(1990), 『몽유 속을 걷다』(1998), 『환상통』(2005), 『도장골 시편』 (2007), 『바자울에 기대다』(2011), 『잉어』(2013) 등과 장편소설『달은 어디에 있나 1,2』『기계 앵무새』 (1997), ‘『달은 어디에 있나 1. 2』 <고백을 이 제목으로 재출간> (2003), 『새를 아세요?』(2014)  등이 있음.  2005년 제7회 천상병문학상과 2006년 제6회 노작문학상,  2013년 제6회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좋은시상과 같은 해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웹진 『시인광장』 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