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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시인 / 너의 장례식장에서
너는 검은색. 언제나 변함없는 검은색. 오늘 나는 너와 작별인사를 할 거야. 온 힘을 다해 너를 떠나보낼 거야. 말레비치의 검은색 문을 열고 피에르 술라주의 검은색 커튼을 젖히고 너무나 우아하여 네가 즐겨 입던 가브리엘 샤넬식 리틀 블랙 원피스와 개성적인 발레리오 아다미식 검은색 슈트가 걸려 있는 옷장 문을 닫고 김종삼이 사랑한 묵화 이상의 검은 폐 사랑에 빠질 때마다 광적으로 색칠해대던 너의 검은색 튤립 밭에 아직도 은유의 시공을 유유히 넘나드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정고양이를 남겨두고 바라볼 때마다 섬뜩한 박쥐처럼 고개를 돌리게 하는 검은색 타카꽃 한 송이 사진으로 걸려 있는 복도를 지나 네 마지막 심장처럼 애처로운 검정제비꽃을 머리에 꽂고 나는 오늘 너와 작별인사를 할 거야.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라며 죽음 앞에서도 사각사각 내리는 하얀 눈 위에 기어코 검은색 발자국을 찍고 간 너.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너의 검은색 사랑, 검은색 취향들 그 집요하고 이기적인 검은색 추억들을 지나 나는 오늘 너와 작별인사를 할 거야.
잘 가라, 검은색이여! 불같이 타오르던 태양도 가슴을 치는 절망도 그만큼 낡아버린 희망도 이제는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의 꿈. 이제 그 막다른 기쁨 모두 놓아주고 창밖에 무성한 슬픔에게도 맘껏 울 수 있도록 네 손을 흔들어주렴. 오래오래 기억할게 너무나도 아픈 네 성장 위에 무수히 박혀 있던 검은색 톱날들 그 끝없는 갈망들과 소독 안 된 수수께끼 같은 검은 흔적들 너와 함께 앉았던 우거진 벚나무 아래 행복했던 그늘들과 네가 밟는 곳이면 어디든 나도 따라 밟았던 우정 깊은 그 길들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오래오래 꺼내보고 또 꺼내볼게.
잘 가라, 검은색이여! 그곳에선 아무리 검은색이 사무치게 그리워도 너의 멋진 애인이었던 그녀처럼 이제 다시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지 않았음 좋겠어. 검은 구두, 검은 흥분, 검은 풍경… 검은색이면 무엇이든 모두모두
계간 『문학에스프리』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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