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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백겸 시인 / 기상예보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0.

김백겸 시인 / 기상예보

 

 

  하늘 흐리고 안개 긴 숲에 우울이 내려와 있음

  구름에 갇힌 빛살들

  허공에 날개 자국을 긋고 가는 멧새

  모두 표정을 남기고 있지 아니함

  길 잃은 고아처럼 서서 플라타너스는 적막을 날리고

  풀씨로 흩어진 슬픔은 北北東에서 北北西로 방향을 바꿈

  폐부로 흘러드는 저기압의 음모

  백마일 밖 한랭전선은 풀잎들의 잠 뿌리뽑을

  폭풍을 몰고 오는 중임

 

  지금은 모든 사랑이 위험함

  외투를 걸친 우리의 꿈

  방독면을 쓴 채 큰길로만 다님

  골목마다 비수를 품고 매복한 어둠

  시간들의 휘파람이 대꼬챙이로 눈 찔러 오는 저녁

  지금은 모든 생각이 위험함

  문 닫고 굳게 빗장을 지른 거리의 불빛들

  창 틈을 엿보는 소문과 함께

  얼굴 까맣게 죽는 지금은

  모든 그리움이 위험함

 

 

  찬비가 내림

  우산을 들고 사람들은 사람을 비껴감

  낯선 총을 맨 겨울의 척후병이 요소요소 서 있고

  바이칼 호수를 지나 시베리아 삼림을 막 빠져나온

  러시아의 절망도 보임

  공중엔 바람의 채찍 가득해

  두려움에 야윈 裸木들의 어깨 더욱 가늘고

  겨울잠에 젖어 봄날을 꿈꾸는 개나리 새 눈만이

  소롯이 숨결에 싸여 있는

  한 개피 성냥으로 남겨논 최후의 불꽃임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김백겸 시인

1953년 대전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 『기호의 고고학』  등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主幹 역임. 현재 시힘, 화요문학  동인. 대전시인협회상, 충남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