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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시인 / 밤의 프랑스어 수업
스물한 살이거나 하다못해 서른네 살도 아닌데 돌은 썩고 물은 굳는데
기차는 낭비를 싣고 어제도 오늘도 달리네. 금잔화보다 시끄러운 이빨을 드러내거나 구멍 난 검정타이어처럼 질질 끌거나 바닥없는 슬리퍼가 되거나 원장이 달아난 병원이 되고 소방차들 물 뿌리고 간 전소(全燒)가 되어 달리네.
아무리 낭비해도 종착역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 껌 종이를 열거나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가르듯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무엇입니다, 까지만 수월하리라는 것. 혀를 잡아당기고 놓치고 다시 잡아당기다 또 놓쳐 얼굴에 고무줄 맞는 낭비나 반복되리라는 것. 벚꽃이나 수박처럼 한 계절도 채 못 넘기리라는 것. 입안에 숨어든 혀가 오늘도 내일도 계속 감추리라는 것. 오 분은 고사하고 삼 분도 안 되어 대화가 끊기리라는 것.
그래도 기차는 또 다른 낭비를 싣고 다시 출발하겠지. 밤의 강의실은 밤바다처럼 넓고 청춘남녀들에게선 복숭아 냄새가 나는데 어둔 창밖으로는 밤비가 내리는데 밤비답지 않게 세찬데 낭비는 더 세차고 그 이유와 원리를 모르겠으나 아무튼 복숭아털인지 스웨터 보푸라기인지 자꾸 입가에 들러붙고 프랑스로 출발도 하기 전에 낭비만 더 늘고 고무줄만 더 늘어나리라는 것. 얼굴만 아프리라는 것.
오늘은 하필 얼룩말 무늬의 옷까지 입었으니 저 비를 맞으면 가짜 줄무늬가 금세 얼기설기 번지거나 흐려지겠지 맨몸이 드러나겠지. 밤비는 더욱 세지고 우산도 없고 다음 기차로 곧 따라갈 테니 먼저 가 기다리라고 괜히 손을 한번 흔들어보겠지만 곧 만날 듯하겠지만 점점 더 어이가 없고 점점 밤만 깊어지고 시간 낭비만 거세지고 우산 나눠 쓸 사람도 없고
이 모든 게 프랑스어가 아닌 한국어와의 일.
계간 『시산맥』 2017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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