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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종규 시인 / 그것은 나비의 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3.

송종규 시인 / 그것은 나비의 일

 

 

배추흰나비가 한 우주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

아주 잠깐 해일이 일었다

날개와 더듬이와 잘디 잔 나비의 비늘들이 별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사월이 왔다라고 당신이 말했지만

멈추지 않는 별빛 그리고 사월

어떤 격정 위에서 해일이 일었다면

그 것은 나비의 일

막무가내 별빛이 쏟아진다 해도

사월과 당신은 완성되지 않는다

내 문장이 당신을 완성한다는 건 한 생애를 담보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끔씩 비켜가도 좋은 것

나비의 일에는 너무 많은 사건들과 목록들이 포괄되어 있다

햇빛과 솜털 구름과 편서풍, 그리고 당신

은종소리가 빗발치는 창가에서 우리는 미완인 채로

공중 높이 날아오를 수 없지만

 

나비는 한 우주, 커다란 공중

 

계간 『모: 든시』 2018년 겨울호 발표

 

 


 

 

송종규 시인 / 내가 사랑한 수수꽃다리

 

 

꽃의 냄새를 맡고 나서 네가 온 줄 알았다

 

너의 얼굴을 만지듯 골똘한 문장들이 책 속에 코를 박았다

 

꽃은, 아주 오래 전에

입김처럼 가벼운 엽서를 호수공원에 흩뿌렸다

고요한 마음의 수심水深 깊이 나는 그것들을 봉인한 적 있다

 

쇠락한 왕조의 뜰처럼 휑한 밤

 

먼발치에서 누군가 나부끼지만

두 시가 한 번도 눈을 맞추지 않고 별자리까지 올라갔다

 

숲을 이룬 사람들의 근심 밖으로 네가 떠나간 줄 이제 알겠다

흔적하나 남기지 않고, 그 봄날처럼

 

별빛이, 세상의 모든 꽃 진 자리에 분홍 물을 떨군다

 

계간 『애지』 2018년 겨울호 발표

 

 

 


 

송종규 시인

경북 안동에서 출생. 효성여대 약학과 졸업. 1989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둥지, 1990), 『고요한 입술』(민음사, 1997),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시와반시사, 2003), 『녹슨 방』(민음사, 2006),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민음사, 2015)이 있음. 2005년 대구문학상 과 2011년 제31회 대구시 문화상(문학부문), 2013년 제3회 웹진『시인광장』 시작품상, 2015년 제13회 애지문학상, 2017년 제10회 시인광장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