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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시인 / 나무 유골
책은 모두 굶어죽은 나무귀신이다.
책이 나무 유골이라고 여기고 난 다음부터 서가는 거대한 묘지가 된다. 반듯한 봉분으로 장식한 묘지 앞에 크고 작은 비석이 가지런히 모여 있거나 여기저기 쌓여있다.
펼치면, 귀신들이 입속말로 생시를 음독한다. 귀신은 사연이 많은 허상들 타이핑을 빌려 서재를 떠돌고 있다.
오래된 서재에선 습습한 습의(襲衣)의 냄새가 난다. 울긋불긋 만장(輓章)들이 사방으로 빼곡하다. 향을 피우듯 등을 밝혀가며 날마다 지루한 유언에 밑줄 치거나 자서전 모서리를 접어가며 필사하는 독자들은 모두 상주일까.
사람 입술을 빌려 독송하는 귀신들의 수업시간.
나무귀신들이 떼 지어 떠도는 책장. 그 중 절반은 이승에 있는 저자들이다. 뼈대 없는 지식들이 생과 사를 구분 없이 떠돌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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