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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금진 시인 / 각자의 애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6.

최금진 시인 / 각자의 애인

 

 

      죽음도 때론 삶과 연애를 하느라 종일 두근거린다.

      죽음이 이토록 화창하다면

      비는 늑골에서 내리고 창문은 제 얼굴을 잊을 것이다.

       

      도무지 해답을 모를 때

      우리는 각자의 애인을 부장품처럼 몰래 만져본다.

       

      개들도 사람의 탈을 쓰고 외로움에 골몰하고

      나무들도 땅속에 얼굴을 묻고 길을 구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갔기 때문에 화창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풍속도 풍향도 알 길이 없다.

      애인의 손가락에 걸린 반지가

      입을 모아 우리의 텅 빈 척추를 칭송한다.

       

      먹구름은 어떤 과오도 지우지 못하는 걸레 같고

      나는 미납된 고지서처럼 열 번도 넘게 이사를 했다.

      이사할 때마다 구인광고를 냈다.

      애인 구함, 묻기 전엔 말하지 말 것, 물어도 답하지 말 것.

      책임과 연민으로도 이 중증의 쓸쓸함을 부양했다.

       

      빗방울이 화분에 대고 독촉한다.

      꽃 피우지 말 것, 희망을 구걸하지 말 것.

       

      각자의 죽음을 각자가 돌본다는 것이 눈부시다.

       

      곧 와 줄 것만 같은 내일의 애인을 기다리며

      연서의 마침표를 찍는다, 아아, 애인아 가엾어라.

 

월간 『월간문학』 2017년 9월호 발표

 

 


 

최금진  시인

충북 제천에서 출생. 1997년《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2001년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 수상. 시집으로 『새들의 역사』(창비, 2007), 『황금을 찾아서』(창비, 2011),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창비, 2014)과 산문집 『나무 위에 새긴 이름』(쳔년의시작, 2014)이 있음. 2008년 제1회 오장환문학상, 2019년 제 12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 수상 등 수상. 동국대, 한양대 등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