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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연숙 시인 / 팔을 베고 잠들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5.

송연숙 시인 / 팔을 베고 잠들다

 

 

내 팔을 내가 베고 자는 잠

손 없는 잠,

손을 쓰지 않는 잠을 다녀오겠다는 뜻이다

 

기승전결도 없다

미나리꽝 속으로 스며드는 뱀처럼

차갑고 눅눅하다

주차한 곳이 생각나지 않아

종착과 출발을 동시에 잃어버리고

찾아 헤매는 꿈, 이 꿈을 밟으며

누군가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떠나간다면

내 얼굴에 꽃잎이 뭉개지기라도 한다면

모로 누운 등은 또 얼마나

쓸쓸한 바깥이 될까

 

헛꿈을 휘젓던 두 손

가위눌림이 가득 들어 있던 그 팔

머리카락이 팔목을 휘감고

눌린 귀의 말을 귓속말로 듣는 팔목

팔의 정맥을 따라

귓속의 말은 파랗게, 파랗게 돈다

가까운 화단에서 흰 모란이 피는 소리

손등으로 듣는다

비유와 상징만으로 구성된

시간과 공간, 사물과 인물들이

투덜투덜 빗소리를 타고 창문에 튀어 오른다

 

어둠 속에서만 살아 발바닥이 없는 꿈

어디에 안착할지 모르는

꿈의 뒤꿈치, 거칠거칠 하다

 

머리맡에 걸어 둔

빗방울 같은 하루를 조심스레 디뎌본다

 

격월간 『시와 표현』 2019년 1~2월호 발표

 

 


 

송연숙 시인

2016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201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