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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문자 시인 / 비누들의 페이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5.

최문자 시인 / 비누들의 페이지

 

 

      눈물이 나는 건

      슬픈 시를 쓰는 건

      모두 비누 때문이지.

      소량의 물에도 사라지는 거품이 그리는 그림

      불행한 불확실성 때문이지.

       

      어째서 거품이 일어나지 않나?

      그 해

      논문 두 편에 대해서도

      두 번째 아이를 지우는 것에 대해서도

      가능하지도 결코 불가능하지도 않았던

      빡빡한 영혼으로 누구를 사랑한 적 있다.

      끊어진 계단

      위험한 끝

      무릎을 다치며

      귀뚜라미 두 마리처럼

      유리문에 숨을 불고 작은 소리를 내다 죽는 일이었다.

      나를 모르는 자와

      그를 모르는 내가

      비누의 페이지로 가서

      거품으로 말을 나누고

      장롱 깊은 곳에 그 말들을 넣어 두었지만

      말 조차 깊은 비누였던 것.

       

      깊은 서랍을 열고

      쓸데 없이 남은 것들 사이에서 분홍 비누 한 조각을 찾아냈다.

      지금은 어떤 거품을 만들지 고민하지 않는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떤 후회스러운 청춘이 지나간 미끄러운 길로

      한 불확실한 거품이 일어날 때

      겨울이 오고

      끝 없이 폭설이 내리고

      거짓말처럼 나의 모든 비누들은 눈 속에 잠들었다.

 

월간 『현대시』 2019년 2월호 발표

 

 


 

 

최문자 시인 / 밤의 경험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했다.

 

나만 어머니가 맞춰온 생나무 의자에 앉았다. 크고 단단한 나 보다 밝은 내가 푹푹 빠지던 의자, 나만 다르다는 다발성의 고독과 날마다 나오는 이상한 자세를 고치며 반듯한 것이 나의 의자가 될 때까지 나와 의자는 어머니가 가고 싶었던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반듯한 책상 앞에 앉으려고 사라지고 만나고 결국은 어두웠다.

의자에서 깨어날수록 더 어두웠다.

나는 얼마만큼의 어둠이 더 필요했을가?

금속성 지퍼가 주욱 잠기며 만드는 안 쪽의 어둠처럼

불편함의 목록을 써서 벽에 붙여 놓아도 아무렇지 않은

어둠의 얼굴들이 필요했다.

사람이 자기 의자로부터 사라지는데 드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가?

다리뼈가 부러지는 생각을 견디는 의자들.

숨이 멎어도 산 척 하는 의자들.

뒤 따라오는 모르는 자들의 의자와 섞이는 데

밤 산책 길, 한 줌 죽음을 견디는 풀잎처럼 작은 힘으로 오래 걸렸다.

 

그 때의 의자.

 

나무들의 눈물로 만들고 울지도 못하게 하던

파고 파고 또 파도 내놓지 않던 어머니의 숨은 흙.

 

죽음은 의자도 없이 굳건해지고

나는 의자에서 자꾸 흙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월간 『현대문학』 2019년 2월호 발표

 


 

최문자 시인

1947년 서울에서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대문학 박사. 저서로는 시집으로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 등과 그밖의 저서로는 『시창작 이론과 실제』『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사상의 상징적 해석』등 다수가 있음. 협성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및 제6대 협성대학교 총장 역임. 2008년 제3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2009년 제1회 한송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