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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순섭 시인 / 살색 스웨터 뜨는 여자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5.

최순섭 시인 / 살색 스웨터 뜨는 여자

 

 

   옷을 벗은 그녀가

   색 다른 색을 끼워보고 뜨개질에 푹 빠져 있다

 

   알 수 없는 깊이와 크기를 잴 때 터지는 보조개는 햇살

   우울한 아픔도 슬픔도 통증을 재우고 날아가지

   곁에 없는 그 사람 품은 몇 코더라 재고 또 재고

 

   어느 날 잠 못 이루고 창을 열었다

   밤하늘 촘촘히 박혀 있는

   색들이 색을 데리고 갔어

 

   무슨 색을 좋아해

   길에서 얼핏 본

   어둡지 않고 눈에 뜨이지 않는 색

 

   청계를 돌아다니다 조용히 흐느끼는 물소리를 들었어

   물소리엔 눈물이 섞여 있어 살 냄새가 나지

   물속에 비치는 얼굴

   두 손으로 뜨면 주르륵 흘러내리는 그 사람

 

   심장이 먼저 뛰어가 고동쳤어

   오랜만에 맡아보는 살색 향기

   쿵쿵거리며 몇 년 아니 수십 번의 겨울이 지나가야 겨우 떠질까

 

   푹신 거리는 소파에 앉아

   구름 깊숙이 스미는 어둔 방에서 혹은 멀리 떠나

   초록이 보이는 바다 베란다 문 활짝 열고

   그 사람 목은 몇 코더라 재고 또 재고

 

   바람으로 짜는 색다른 뜨개질에 연방 터지는 보조개가

   햇살 번지는 스웨터를 골똘히 뜨고 있다

   아직도 체온이 만져지는 살색 스웨터

 

웹진 『시인광장』 2018년 6월호 발표

 

 


 

최순섭 시인

대전에서 출생. 1978년『시밭』 동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말똥,말똥』등이 있음. 현재 에코데일리 문화부장,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