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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진 시인 / 파란 달
기억을 허문다.
내가 온갖 죄를 지은 저 아름다운 시절과 돌림병 같던 청춘을 헐어서 기억으로도 돌아갈 곳이 없어졌으면 하고
어느 날 내가 당신을 처음 알던 백일홍 나무 아래 서 있을 때 갓 핀 꽃송이가 먼저 알고 반겨도 나는 처음인 듯 슬펐으면
가장 어두운 눈 속에서 가장 밝은 당신이 사라질 때 한 날에서 다른 날로 옮겨가듯 무심히 아팠으면
얼굴이 없는 나를 만났을 때도 밤보다 깊은 문장을 잃었을 때도 눈만 가만히 감았다 뜬 채,
지나간 시간을 허무는 그런 밤에는 눈물이 울다 간 자리에 파란 달이 뜬다.
계간 『실천문학』 2017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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