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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인식 시인 / 집 나간 시(詩)를 기다리며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2.

전인식 시인 / 집 나간 시(詩)를 기다리며

 

 

  평생 함께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단칸방에서는 서로 의지하며 함께 했는데

  아랫배 기름기 차고 먹고 살만하니 딴 생각이 났나 봅니다

  지가 가면 어딜 가겠나 곧 돌아 오겠지

  대수롭잖던 하루 이틀이 이십 년이나 흘러가버렸습니다

 

  세월 흐를수록 그리운 것이 조강지처라 했던가요

  산으로 들로 강으로

  사람 많은 도시기슭 뒷골목으로

  이제사 겨우 찾아 나서기로 마음 고쳐 먹었습니다

 

  제가 찾는 사람은 있잖아요

  얼굴이 두 개

  다리는 네 개

  꼬리가 아홉 개

  심장은 서너개

  몸에서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주로 그늘이나 습한 곳을 좋아 해서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기를 좋아합니다

  마음 약한 가슴에 빌붙기를 좋아하며

  특히 혼자 있는 사람을 좋아해서

  메뚜기처럼 등에 올라타기를 좋아합니다

  솔직히 외로운 사람을 만나면 잠자리처럼

  엉덩이를 맞대고 있기를 더 좋아합니다

 

  주로 낮보다는 밤에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서

  달빛 밝거나 별빛 맑은 날이면

  우우우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내기도 합니다

  나방처럼 남의 집 안방이나 침실 엿보기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 때도 있고

  물에 빠져 죽었는지 오래도록 소식 없을 때도 있습니다

  여자 아니랄까봐 하루에도 몇 번씩 옷 갈아입기를 좋아하며

  변덕이 장난이 아닙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더러 사기를 치기도 해서

  간혹 사람들 마음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7년 2월호 발표

 

 


 

전인식(全仁植) 시인

1995년 선사문학상 시 당선. 1995년 신라문학 시부문 대상. 1996년 통일문학상공모 시부문 대상. 1997년 《대구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98년 불교문예 신인상 수상.  현재 불교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