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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채인숙 시인 / 디엥고원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2.

채인숙 시인 / 디엥고원

 

 

  1

 

  열대에도 찬 바람이 분다.

 

  가장 단순한 기도를 바치기 위해

  맨발의 여자들이 회색의 화산재를 밟으며

  사라진 사원을 오른다.

 

  한 여자가 산꼭대기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태양이 한 개씩 태어난다.

 

  2

 

  무릎이 없는 영혼들이  

  사라진 사원 옆에서 에델바이스로 핀다.

  몇 생을 거쳐 기척도 없이 피어난다.

 

  땅의 뜨거움과

  하늘의 차가움을 견디며

  천 년을 끓어 오르는 화산 속으로

  여자들이 꽃을 던진다.

 

  3

 

  어둠의 고원을 거니는 것은

  만삭의 바람

 

  여자들의 맨발을 어루만지던

  안개의 진흙이

  제 몸을 돋우어 사원을 짓는다.

 

  4

 

  똑같은 계절이 오고 또 간다.

  모두가 신은 없다는데

  나는 오늘도 기도가 남았다.

 

 *디엥고원: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의 복합 분화구 지역. 자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유적지로 서기 950년 경 400여 개 이상의 힌두사원이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8개만 남아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6월호 발표

 

 


 

채인숙 시인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 1999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