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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 속눈썹에 잠들다
첫째 날,
속눈썹에 잠들었다. 치사량의 빗물이 잠 속으로 고였다. 나를 그린 한 올의 밑그림 속으로 착지한다. 나는 이제 목탄으로 그린 배역, 개들이 달을 끌고 달린다. 허공이 검은 뿔을 당긴다. 깃털이 빠지듯 속눈썹이 빠지고 있다.
처음으로 모욕을 배운 것 같은, 자기도 모르게 발가락과 술병 사이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비닐우산이 늦은 저녁을 기다리고 있던 곳.
눈을 비빌 때마다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속눈썹의 일생이란 빛의 속도로 성간과 성간 사이를 지나가는 비유 같은 것, 오르골 속으로 뼈들이 감기고 있다.
둘째 날,
검은 활자를 닮아가는 예행(豫行)의 시간, 무심결에 암흑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시간을 비운 방들이 생겼다. 실오라기만큼 공중이 벌어진다. 한 생이 흑백의 수은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몸이 둥글어지지 않는다. 눈썹 뼈 아래 수런수런 가정법들이 늘어나도 중간자는 오지 않았다. 손이 가벼워질 수 있도록 태양선과 생명선 사이에 속눈썹을 놓아준다. 여행가방 위에 오래된 꽃말이 가만히 앉는다.
셋째 날,
익사체들이 사인(死因)을 햇빛에 말리고 있다. 눈(目)이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 위의 미래가 한 사람을 저버리고 도처에 매복한 방향들이 금식 중인 금요일을 가리킨다. 연고자를 찾을 수 없다.
사순절에는 백묵으로 살점을 그리곤 했다. 입술을 접어 그늘에 맡기고 잔해는 찬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수사학을 익힌 속눈썹은 죽음으로부터 빌린 심장, 눈썹달을 따라 몸이 기울고 있다.
넷째 날,
결국 속눈썹에 갇히고 만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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