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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홍일표 시인 / 나프탈렌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5.

홍일표 시인 / 나프탈렌

 

 

휘발하는 당신

아니 내 안의 봄

내 안의 아침

 

혈관 속에서 쿵쾅거리던 지난밤의 목소리

늘 그렇듯

돌아보면

햇살이 없는 백야

 

점점 말라가는 공기의 근육

 

당신을 떠나는

무수한 실금들을 본다.

미세한 속삭임들을 본다.

몸을 지우고 스러지는 적멸 앞에서

손에 가득 모래알 같은 당신을 쥐고

여덟 번을 부인해도

아침은 오고

누군가 남기고 간 입술만 튤립 봉오리로 남아 있다.

 

허공의 덩어리

잘게 썰어 흩뿌리는 안개비처럼

숨죽이고 몸을 허무는 순백의 제사

이만치 떨어져서

스러지는 낮달을 읽는 동안 가루 한 점 남김없이 날아가는 휘파람소리를 듣는다.

 

희미해지면서 투명해지는

모른 척할수록 더욱 명료해지는

 

계간 『서정시학』 2017년 겨울호 발표

 

 


 

홍일표시인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 『매혹의 지도』, 『밀서』와 평설집『홀림의 풍경들』 등을 펴냄. 지리산문학상, 『시인광장』 시작품상 등을 수상.